현지 인터뷰 | 일본 최고의 장인 (21) 고지마 사다오 닛스이콘 기술고문

세계 최고의 물박사

“아이디어는 모두 3상에서 얻었어요. 그 3이란 ‘변상’ ‘안상’ ‘침상’인데요, 변상은 화장실 변기 위이고, 안상은 말안장인데 저의 경우는 교통수단인 전철이지요. 침상은 아시다시피 침대 위를 말하지요. 특이한 건 화장실에서 물 내릴 때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하하하”
사람들은 그를 ‘물 박사’라 부른다. 93세의 고지마 사다오(小鳥貞男)닛스이콘 기술고문. 그에게는 ‘오수(汚水) 박사’ ‘물벌레 박사’ ‘하수도 박사’ ‘수돗물 박사’ 등의 호칭이 따라다닌다. 심지어 업계에서는 그를 ‘물의 신’이라 부른다. 그는 어설픈 ‘물 박사’가 아니라 도쿄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진짜 농학박사다. 세계 최초로 미생물을 이용한 정화법을 확립했고 1960년대, 전문가들로부터 질병의 원인이라는 질타를 받을 정도로 마시기 힘들었던 도쿄의 수돗물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수돗물로 바꾼 이도 바로 그다.

그는 과학의 힘을 이용해 수질을 개선하는 데 평생을 바쳐 왔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40여 개국을 직접 방문해 ‘물 정화기술’을 전수해 온 그는 수도관리기술의 선구자이자 수질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 받는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88서울올림픽에 앞서 심하게 오염돼 있던 금강, 낙동강, 전주천을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물로 정화했으며, 1986년 팔당댐에 대량으로 조개가 서식해 파이프가 막히거나 냄새가 발생하는 현상을 해결한 사람도 바로 그다.

닛스이콘의 중앙연구소 3층에 자리한 그의 연구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쌓인 자료더미 속에 파묻혀 각국에서 보내온 물 상담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첫인사는 “수돗물 드세요. 맛있어요!”였다. “지금이야 ‘맛있는 수돗물의 아버지’라고들 불러 주지만 저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맛없는 물을 만든 남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에요”라며 웃는다.

겉으로 보기엔 손주 어리광에 즐거워하는, 웃음 많고 마음 너그러운 할아버지다. 그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물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 질문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정확하고 거침없는 언변에 단어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어디서 그런 정열적인 힘이 나오는 것일까. 청력이 조금 약해 보청기를 쓰는 것 외에는 90세가 넘은 나이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일본에서 자신 있게 수돗물 마시기를 권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도쿄도가 직접 나서서 ‘도쿄의 물’이라는 브랜드로 판매에 나선 것도 최근의 일. 불신으로 가득했던 수돗물을 브랜드화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개발한 기기와 기술 덕택이다. ‘수질시험법’에 채용한 ‘여과사층주장채취기’를 비롯한 수많은 기구 및 시스템과 ‘2007년 물대상’을 수상한 ‘하나컴 생물막처리법’, ‘락간접촉생물막처리법’ 등의 신생기술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1960년대 도쿄의 수돗물은 냄새가 심해 입에 댈 수도 없을 정도였고, 하천과 상수원은 오수로 냄새가 진동했다. 시민들의 불평은 밤낮없이 쏟아졌다. 이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당시 국립공중위생원 소속이었던 그를 도쿄도의 수질책임자로 파견하기에 이르렀던 것.

그의 오수와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정화기술이라곤 전무하던 당시, 대장균과 암모니아가 득실거리는 상수원에 소독용 염소를 늘려서 투여하는 게 대책의 전부였다.

“평상시보다 100배나 더 많이 넣었더니 악취가 겨우 줄었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약물 냄새가 심해 구역질이 날 정도였어요. 아무리 연구해도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어요. 출근 전철 안에서 저를 알아보고 질타하는 사람까지 있었지요. 아침밥이 소화가 안 될 정도였다니까요.”


하수 처리한 물 마셔 배탈 나며 연구 거듭

그래서 그는 자칭 ‘가장 맛 없은 물을 만든 남자’다. 그때의 약물 냄새 가득한 수돗물을 만든 이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쓰라림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수질관리 전문가가 없던 당시 일본인의 식수는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하수 처리수’를 마셔가며 밤낮없이 연구했다. 거의 매일 배탈이 났다. 배탈 없는 날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격무 탓인지 33세에 결핵, 35세에 담석증으로 두 번이나 사경을 헤맸다. 그럼에도 그는 퇴원하자마자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정수장으로 달려가 실험복을 입었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32세에 결혼한 그는 신혼 때도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갔다. 먹을 게 바닥나고 빨랫감이 쌓이면 그제야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이 10여 년간 계속됐다.

하수처리장의 여과기, 연못 등의 녹화현상 제거기 등 그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 슈퍼할아버지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

“아이디어는 모두 3상에서 얻었어요. 그 3이란 ‘변상’ ‘안상’ ‘침상’인데요, 변상은 화장실 변기 위이고, 안상은 말안장인데 저의 경우는 교통수단인 전철이지요. 침상은 아시다시피 침대 위를 말하지요. 특이한 건 화장실에서 물 내릴 때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하하하”

‘변상’ 아이디어의 대표적인 것이 미생물을 사용해 암모니아를 제거하는 방법과 벌집 형태의 여과기 ‘하니컴’ 개발이다. 이 ‘하니컴’은 미생물을 이용한 정화장치로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것으로 꼽힌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물 생각밖에 안 한다는 그는 항상 메모장과 볼펜을 옆에 둔다.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전철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하려고 볼펜을 찾다 손에 든 가방을 떨어뜨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억에도 없는 도면과 메모가 가득 적힌 메모지가 침대 옆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잠결에 적어 둔 것이다. 그는 “생각하는 게 취미”라고 말한다.

그는 일본 군마현 아라카와 강 인근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강에서 놀기를 좋아해 다른 아이들이 야구를 할 때에도 그는 강가 돌 밑에 숨어 있는 물벌레며 물고기를 찾아내고 놀았다. 그런 그를 아이들은 ‘물벌레 박사’라 불렀다. 그에게 붙여진 최초의 ‘박사’ 칭호였다.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지금도 그는 왕성한 현역이다. 관직을 그만두고 옮겨 온 일본 최대 물 컨설팅회사 ‘닛스이콘’의 기술고문으로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9시30분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한다. 그의 주요 교통수단은 발과 버스. 하루에 만 보를 걷고, 매주 토요일에는 수영을 한다. 그의 주요 업무는 국내외에서 보내 온 물 상담에 응하는 것. 후세에 자신의 연구 성과와 임상경험을 남기기 위해 물 상담 내용을 책으로 엮는 중이다. 거기에 해외협력사업단의 강사에 강연까지 맡아 쉴 틈이 없다.

“사회가 나를 쉬라고 할 때까지 일할 생각”이라는 그. 2년 후면 정유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정년퇴임을 한다는데 아직도 그는 그만둘 생각이 없다. 사람들이 가만 놔두질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어디든 갈 생각”이라는 그에게 장인철학을 물었다. “끊임없는 탐구심이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욕이 일류 연구자, 장인을 만들지요.”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NHK 국제방송국, 닛케이 라디오 캐스터로 활동 중이며《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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