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인터뷰 | 일본 최고의 장인 (20) 이토 료스케(伊藤瞭介) 제퍼주식회사 사장

소형 풍력발전기로 새로운 에너지 시대 열다

“음!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군.”

웹 카메라를 통해 컴퓨터로 전해지는 풍차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69세의 제퍼주식회사 이토 료스케 사장.

그의 집 지붕에는 작은 미풍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초경량 풍차 ‘에어돌핀’이 설치돼 있다. ‘에어돌핀’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풍력발전기로 제퍼의 주력제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 모양이 물고기같이 귀여워 어린이들에게 더욱 인기다. 날개 직경 1.8m,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는 장난감 같은 풍차이지만 직경 4~5m의 풍차에 버금가는 발전력을 자랑한다. 높은 산이나 바닷가 언덕에서나 볼 수 있던 풍차가 도쿄 도심의 빌딩 숲 이곳저곳에 등장한 것은 2~3년 전. 해발 2000m가 넘는 산정에서부터 빌딩, 산장, 학교, 일반가정에 이르기까지, 일본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이 에어돌핀이 설치되어 있다.

풍속 2.5m/s의 미풍에서부터 발전이 시작돼 풍속 50m/s의 날개가 멈추는 순간까지 발전을 멈추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제어시스템이 탑제된 풍력발전기. 이제까지 풍력발전기는 미풍에 날개가 회전하지 않아 발전이 불가능해 도심부에서는 설치하기 어렵다고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미풍이나 태풍이나 모두 반응하는 에어돌핀이 개발되면서 도심부와 일반가정용으로도 풍력발전이 가능해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평균풍속 6m/s의 환경에서 180kWh라는 뛰어난 발전능력을 실현한,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에 근접시킨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바라기 같은 풍차로 도심의 모습을 바꿔 가고 있는 이토 료스케 사장. 그가 대형풍차의 성능을 능가하는 소형풍차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무지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10년 전, 그의 나이 59세 때였다. 그리고 창업 10년 만에 소형풍차 업계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섰다. 예순을 앞둔 나이에 풍차를 만들겠다고 동분서주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환갑 창업’이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기도 했다. 퇴직해 여생을 즐길 나이에 어디에서 그런 정열이 나온 것일까? 사람들은 그를 ‘제조업을 사랑하는 사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경영자’라고 부른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물건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무전기를 조립하며 놀았고, 고등학교 때는 직접 만든 스테레오를 친구들에게 팔아 용돈을 벌 정도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도 음악과 음향기기에 심취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1961년, 고급 음향기기 업체인 일본의 명문 산스이전기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그는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의 원형인 4채널 스테레오방식 등 수많은 히트상품을 내놓았다. 히트 기술 메이커라는 별명이 붙어 다닐 정도로 그가 개발한 신제품은 시대를 앞서 나갔다. 그러한 실적을 인정받아 1986년 47세에 사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이때 회사는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1990년 1월 회사는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갔다.

이듬해 그는 모든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지만, 제조업에 대한 정열은 식지 않았다. 컨설팅회사를 설립했던 그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조사’를 의뢰 받은 게 풍력발전에 몰입하는 단초가 되었다.

“당시 유럽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미국은 서쪽 해안에만 2만5000기가로 발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풍력발전은 전무한 상태였지요. 조사를 거듭하던 중 풍력발전이 친환경적인 미래의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59세에 소형 풍력발전기 개발 위해 창업

산스이전기에서 좌절한 그의 제조업에 대한 열정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 6월, 동료 세 명과 함께 제퍼를 설립했다. 목표는 오로지 세계에 통하는 소형풍력발전기 개발. 먼저 풍차에서 가장 중요한 날개가 필요했다. 미국 벤처기업으로부터 항공역학을 응용한 날개를 OEM방식으로 공급받기로 했다.

“꿈을 향한 첫발이었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제품의 포장을 풀었어요.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실물을 본 그는 아연실색했다.

“제품 자체가 너무나 조악했어요. 도저히 일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지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은 계절풍 등의 영향으로 바람이 일정하지 않고 태풍이 많다. 기존 풍차는 강풍을 받으면 날개가 지나치게 회전하면서 부러졌다.

“강한 날개와 함께 강풍이 불 때 날개의 회전수를 줄일 수 있는 제어기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최초로 풍력제어 시스템을 갖춘 풍차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풍차는 완벽하지 않았다. 소음이 크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끄럽다고 항의도 받고, 해안에 설치된 풍차의 페인트가 벗겨져 바닷바람에 녹이 슬기도 했지요. 강풍에 날아간 날개를 회수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이리저리 들판과 해변을 찾아 헤맨 적도 수없이 많았어요.”

몇 명 되지 않은 사원이 총동원되어 전국을 말 그대로 바람처럼 날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자연을 상대로 하는 사업의 어려움을 통감한 그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제품을 개량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고,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나날이 계속됐지만 그래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기회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긍정적, 적극적 사고 덕에 드디어 2003년 1월, 풍력이 약할 때도 자력으로 날개를 회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신제품 ‘Z-500XP’ 개발에 성공했다. 풍속변동이 심한 시가지에서도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는 소형풍차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의 연구개발 노력은 지칠 줄 몰랐다.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한계를 느낀 그는 2002년 산업체와 학계, 그리고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Z’를 출범시키고 일본 각지의 기업과 연구자를 찾아 참가를 호소했다. 그 결과 대기업, 중소기업, 정부연구소, 대학 연구자 등 30여 명이 참가했다.

날개 성형, 베어링, 전자회로기반, 진동흡수소재 등 각 분야를 민간기업이 각각 담당하면서 정부 연구소는 날개의 기본설계, 학계는 날개의 기본해석과 설계를 맡았다. 조그만 벤처기업 사장이 이렇게 커다란 프로젝트를 출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제일의 풍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도전정신과 꿈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는 “마음으로 사람을 모으면 곧 강한 힘이 됩니다”라고 역설한다.

4년 반에 걸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2006년 선보인 초경량 풍력발전기 ‘에어돌핀’과 그 시스템이다.

“이 제품에는 일본의 모든 기술과 아이디어가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날개는 일본 섬유업체가 개발한 탄소섬유를 채용해 날개 한 장당 무게를 기존의 5분의 1인 350g으로 줄였다. 꼬리는 강물을 타고 올라가는 물고기의 꼬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유체역학 연구자의 도움으로 바람의 방향을 향해 날개의 방향이 움직이도록 설계해 발전 성능을 높였다. 부엉이의 습성과 날개에서 힌트를 얻은 사원의 아이디어를 채용해 날개 표면을 가공한 결과, 소음을 종래 제품의 50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 일본의 전통 목공기술도 활용했다. 왕궁을 지을 때 쓰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활용해 내구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기술을 총동원해 세계 최고의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낸 것.

전체 직원이 14명에 불과한 그의 회사 사무실에는 원탁회의를 하는 둥그런 책상이 놓여 있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마주 보고 일하는 구조. 그는 “사원들의 자율적인 사고와 주인의식이 없었다면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NHK 국제방송국, 닛케이 라디오 캐스터로 활동 중이며《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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