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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봉 성진지오텍 대표

화학 플랜트용 정유탑으로 세계 정상 오른 울산의 향토기업

“마, 니 댕기는 회사는 뭐 하는 데고?”

윤영봉 성진지오텍 대표(56세)는 친지나 지인들로부터 이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수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설명을 해도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분야를 취급하는 회사이기 때문. 성진지오텍은 석유화학 플랜트와 발전 설비, 해양 모듈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다. 특히 화학 플랜트용 정유탑 제조 부문은 세계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2006년에는 1000t급 초대형 플랜트 장비를 세계 최단기간에 제조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미국의 백텔과 엑슨모빌, 영국의 KBR, 일본의 지요다, 프랑스의 시뎀 등 세계 21개국 123개 사 우량 고객을 확보해 주문이 밀려 있는 상황. 산유국들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국에서 석유를 정제하면서 정유탑 주문이 늘어나 급성장했다. 그 덕에 2005년 1817여억 원이었던 연매출이 2006년 2148여억 원으로 뛰었고, 2007년에는 3500여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7년 수출 2억 달러를 훌쩍 넘긴 성진지오텍을 찾았다.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에 위치한 본사를 중심으로 총 다섯 군데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이 회사의 규모는 웬만한 조선소를 방불케 했다. 연면적만 50만㎡에 이르는 데다 생산 기지 세 곳이 바다와 부두를 끼고 있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윤영봉 대표는 “선진화된 제조 공법과 바다와 부두를 끼고 있는 천혜의 생산기지가 성진지오텍의 경쟁력”이라고 자랑했다. 작업복 차림인 그의 오른쪽 가슴에 ‘더블 2007’이라는 배지가 붙어 있었다.

“올해 매출을 지난해의 두 배로 끌어올리자는 전 사원들의 의지이자 각오를 새긴 배지입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직원들의 열정을 담은 것이죠. 2011년 매출 1조 원 달성이 저희 회사의 목표입니다.”

성진지오텍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불가능한 목표 같지 않았다. 25년 전만 해도 이 회사는 볼트와 너트를 만들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 납품하는 부품회사였다. 성진지오텍의 역사는 1982년 전정도 회장(48세)이 직원 서너 명과 함께 설립한 유영기공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정도 회장님은 기계공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분으로 타고난 사업 감각을 지닌 분입니다. 선박용 볼트와 너트를 만들다 뱃머리와 꼬리 부분 제작 등 영역을 넓혀 갔고, 시추선과 정유탑 등 에너지 설비로 회사를 키우셨죠.”

1000t이 넘는 석유화학 플랜트용 정유탑. 체중 70kg의 성인 2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외환위기로 원화가치가 떨어지자 조선업이 호황을 맞으며 성진지오텍의 연매출 규모도 300억 원대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부채 또한 만만치 않아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해야 했다. 이 위기를 전정도 회장은 대규모 투자자금을 유치하고, 1200만 달러의 폐열회수처리설비를 수주하는 것으로 극복했다.

한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긴 성진지오텍의 매출은 2001년 처음 1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한 업체에서 클레임을 제기했다. 이전에 납품한 정유탑에 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유탑 설계는 다른 곳에서 맡아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지만 전 회장은 손해청구금액의 절반인 150억 원을 보상해 주었다고 한다. 회사 자금이 달리는 상황에서 과감한 결정이었다.


잃는 게 얻는 것 : 먼저 책임지는 자세로 세계시장에서 신뢰도 상승

창업주인 전정도 회장. 언론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그는 기자가 찾아갔을 때 자리를 피하고 없었다.
“한국의 중소업체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나서자 이 소식은 삽시간에 업계에 퍼졌지요. 그 덕분에 저희 회사의 신뢰도가 급상승했고, 거래선이 더욱 넓어졌습니다. 15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 것이죠.”

삼성중공업 창원1공장 공장장이었던 윤영봉 대표가 성진지오텍 부사장으로 취임한 것이 2001년. 그는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후 무려 24년 동안 삼성중공업에서 일했다. 그가 지금의 회사를 택한 것은 순전히 전정도 회장에 대한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옮기기 전 나름대로 몇 가지 기준을 정해 이 회사를 분석했습니다. 회장에게 사업가 마인드가 있는가 하는 것과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했죠. 전부터 알고 지내온 분이라 사업가로서의 기질은 익히 알고 있었고, 회사의 비전 부분은 향후 주력사업이 에너지 관련 플랜트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윤 대표는 전 회장에 대해 “최소한 5년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분”이라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몇 년 전 전 회장은 울산에 24만여㎡의 땅이 매물로 나오자 덥석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를 포함한 임원들이 그 넓은 땅을 사서 뭐에 쓰려고 하느냐고 극구 말려 그중 4분의 1만 매입했는데, 그 후 주문이 밀려들어 공장 부지가 모자라게 됐다는 것.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회장께서 구입하고자 했던 땅을 모두 매입했어야 합니다. 저희 같은 업종은 공장 부지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플랜트 산업이 호황기를 맞을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공장 부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참 놀라운 분입니다. 그런 사업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지 공부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전정도 회장은 누구든 만나면 금세 형님, 동생으로 만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유명하다. 따지고 보면 윤 대표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전 회장이 “형님, 형님” 하며 따르는 친화력에 끌려 여생을 성진지오텍에 걸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전 회장이 그런 식으로 영입한 임원이 한둘이 아니다. 신언수 영업총괄 사장도 그렇고, 이영원 플랜트 총괄 부사장도 그런 식으로 대기업에서 영입한 해양 전문가들이다.

“저희 회사에는 회장님을 친형처럼 따르는 직원들이 많아요. 회장님 특유의 인간미 때문이죠. 회장님께서는 450여 명의 직원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불러요. 다른 직원과 똑같이 작업복을 입은 채 함께 식사하고, 농담도 건네며 가족처럼 지내죠. 그런 끈끈한 유대 관계 때문에 회사가 어려울 때도 이탈하는 직원이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자신들의 주머니까지 털어 회사에 내놓으려 했습니다.”


매년 1월 1일, 이 회사 전 직원은 해발 1100m인 울산의 가지산 정상에 오른다. 가족 동반해 가지산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새벽 2~3시에 등정해 오전 9시쯤 하산하는 코스라고 한다.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회사와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고 내려와 아침을 함께 먹습니다. 그러곤 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 짓죠. 직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 사이에도 동지애가 생기는 행사여서 다들 좋아합니다.”

윤영봉 대표는 끝까지 자신보다 회장이 한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회장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했다. 가족 같은 유대감으로 똘똘 뭉쳐 서로 믿고 따르는, 어떻게 보면 전근대적인 분위기가 울산의 향토기업 성진지오텍이 세계 정상에 선 비결 같았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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