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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인터뷰 | 일본 최고의 장인 (19) 후지와라 히로코(藤原弘子) - 일본을 대표하는 직물 니시진오리의 장인

꾸준함이 최고의 장인을 만듭니다

2005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일본 왕궁에 초대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직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니시진오리(西陣織) 데바타(手機)의 장인으로 훈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니시진오리 전통공예사 후지와라 히로코(藤原弘子, 72세) 씨. 니시진오리 분야에서 여성 장인이 훈장을 서훈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호화찬란하고 섬세한 문양이 돋보이는 견직물 니시진오리의 역사는 5세기경 교토에 정착한 도래인이 양잠과 견직물 기술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헤이안 시대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화려한 궁중문화의 중심이 됐다.

교토에 자리한 니시진오리 회관 2층. 1t에 가까운 직기 앞에서 작은 체구의 그녀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현란하리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놀림이 눈부시다. 양손과 양발, 그리고 눈을 동시에 움직여 네 가지 동작이 한번에 이루어진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리 속으로 도안을 그리고, 작업 중인 문양 아래 놓인 거울을 보며 작업 상태를 확인한다. 양손은 번갈아 가며 20여 종류의 실을 갈아 끼우고, 오른손으로는 각 단계를 제어하는 키를 당긴다. 그녀의 손동작은 보통사람이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그렇게 빨리 움직여도 하루에 고작 30cm 정도 짤 수 있다고 한다. 50년 경력 남자 장인에 비해 거의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라 한다.

“실이 느슨하거나 완성된 문양이 맘에 안 들면 짧게는 3cm, 길게는 10cm까지 풀어서 다시 해야 해요. 인간의 오감을 모두 동원해 리듬을 타면서 작업을 하죠. 기계에 의존하면 결국 기계에 지고 마니까 기계는 어디까지나 보조도구로서 장난감처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해요.”

그녀의 탁월한 능력은 작업 속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고도로 숙련된 기술로 정밀하고 섬세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화려함 속에도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우러나는 게 그녀만의 특징이다.

“헤이안 시대 때 왕실은 디자인과 직조 능력이 뛰어난 당대 최고의 장인들을 교토로 불러 모았고, 장인들은 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수도라 불리는 교토의 자연미에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양식과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에 장인의 기술을 융화시켰지요.”

이 모든 게 농축되어 나온 게 바로 니시진오리. 데바타는 니시진오리 가운데서도 최고의 장인 기술이 살아 숨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작품에 짧게는 일주일에서 한 달, 길게는 석 달이 넘게 걸린다. 그러다 보니 가격도 만만치 않다. 싼값에 팔아도 장당 30만 엔을 가볍게 넘는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나 품격을 살릴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실 한 올 한 올을 소홀히 다룰 수가 없어요.”

‘다품종 소량생산’이 원칙인 니시진오리는 염색한 실로 모양을 짜간다. 많게는 서른 색이 넘는 실을 사용해 화려한 광택의 무늬를 정밀하고 섬세하게 자아내는 것이 그 특징이다.

“화려하면서도 질기며 구겨지지 않는 게 특징인데요. 다른 직물과 다른 점이라면 창조적 디자인에 직물의 표현력을 담아낸다는 점이지요.”

니시진오리를 단순한 직물산업이 아니라 지식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시진오리를 대표하는 장인들은 10대에 입문해 50여 년을 활약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나 단순히 작업공정을 익히고 오랫동안 그 일에 종사해 기술을 터득한다고 해서 일류 장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야 한다. 그렇기에 니시진오리를 대표하는 장인으로 정점에 달했다고 평가받는 그도 탐구정신을 멈출 줄 모른다.

그가 니시진오리 장인의 길을 택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5남매의 차녀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꽃다운 열여섯 살 처녀로 장인의 길로 들어선 후 60년 가까이 외길을 걸어온 것이다.


日王의 칭찬 듣고 새로운 작품 개발 위해 연구를 거듭

헤이안 시대 소설《겐지모노가타리》의 내용을 수놓은 니시진오리.
그에게는 스승이 없다. 생계를 위해 열심히 짜다 보니 어느새 정점에 달해 있었다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가난이 스승이었던 것이지요. 그때는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고 알아서 하라는 공장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힘든 시절이었지요.”

무조건 정밀하게만 짜면 된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커다란 전기가 찾아온 것은 1990년 4월.

“일본 왕이 니시진오리 회관을 방문한다고 해서 전속 전통공예사의 작품으로서 벚꽃과 소나무를 수놓은 ‘모모야마 병풍’을 선보였지요. 그런데 왕이 유심히 바라보더니 소나무에서 아주 부드러운 느낌이 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상품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처음으로 작품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됐지요.”

그의 진정한 니시진오리 장인수업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디자인 집을 두루 섭렵하고 고문서 속에 나타난 과거의 작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독학이 시작됐다.

“공부가 얕아 깊이 있게 연구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의 감각과 느낌을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눈에 담은 것이 뇌를 자극하고 그게 손끝 감각, 오감으로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19세에 결혼해 1남1녀를 낳고 한평생을 같이해 온 이해심 깊은 남편조차 “다 늙어가지고 바람난 거야”라며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아마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후 그는 각종 전시회와 작품전에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겐지모노가타리 1000년 기념전에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녀가 모두 출가해 귀여운 손자를 다섯이나 둔 행복한 할머니 장인. 그는 지금 원로 장인으로서 니시진오리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니시진오리는 원사 제조단계에서부터 완성까지 20단계 이상 공정을 거친다. 각 공정마다 고도의 기술과 풍부한 지식을 지닌 전문가에 의해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 이렇게 각자의 기술이 모여 제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인 니시진오리의 매출액이 줄어들고 있어요. 전성기에는 2800억 엔에 달하던 것이 지난해는 약 700억 엔으로 떨어졌어요.” 현재 570여 중소기업에서 4600여 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해를 더해 갈수록 폐업하는 기업이 늘고 장인 수도 줄어들고 있다.

“넥타이 등 새로운 제품 개발로 젊은 층을 많이 흡수했지만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저변을 지탱해 줄 강한 지지층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화려하고 고급스런 이미지가 강해 서민층에 침투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컴퓨터 등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미래의 융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그의 나이 72세, 60년 가까운 직장생활에서 단 한번도 결근한 일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아침 8시50분이면 정확히 출근해 직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고 오후 5시면 퇴근을 한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7시간 직기 앞에 앉아 오감을 활용하며 아름다운 문양을 수놓는 데 혼신을 기울인다.

“장인이란 곧 꾸준함이지요. 일본 속담에 ‘바위 위에도 3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이든 최소한 3년을 참고 해봐야 한다는 뜻이지요. 죽을 각오로 하다 보면 길이 보여요. 그러고 나서 포기해도 늦지 않거든요.”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NHK 국제방송국, 닛케이 라디오 캐스터로 활동 중이며《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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