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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윤ㆍ박윤진 오피스박김 대표

세계의 정원을 디자인하는 부부

뉴욕 브롱스의 뉴욕 보태니컬 가든, 코넬대의 생태 습지원과 MIT공대의 기숙사, 대만 치치의 지진 추모관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국인이 조경 설계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조경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정윤 오피스박김 대표. 그는 국내외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목받는 조경 디자이너다. 올해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차세대 디자인 리더, 선도 디자이너’에 뽑힌 그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 부근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주택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무실은 조용하고 아담했다.

“20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옮겨 온 후 내내 이곳에서 일했어요. 거점만 유럽에서 서울로 바뀌었을 뿐 저희가 하는 일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남편과 함께 세계 곳곳의 조경 일을 하고 있지요.”

그와 남편 박윤진 대표의 성을 따 이름을 만든 ‘오피스박김’은 20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출범한 조경 디자인 회사. 같은 해 9월 서울로 옮긴 후 이 회사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93기 추모관, 중국 닝보시의 동칭 호반 도시,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의 WBC(국제비즈니스센터) 주거타워 지상부, 카자흐스탄의 알마타 휴양소 등이 있다.

이들 부부가 짧은 경력에도 이처럼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쌓은 국제 경험 덕분이다. 하버드 대학원에서 만나 결혼한 두 사람은 각각 미국의 수잔 차일드어소시에이트(김정윤)와 사사키어소시에이트(박윤진)에서 경력을 쌓은 후 네덜란드의 ‘West8’에서 디자이너와 아시아 프로젝트 담당 매니저로 4년 동안 일했다. 이 기간 두 사람은 네덜란드 국립 바에니넨 대학(Wageningen University)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두 명의 인턴 직원과 함께 공모한 ‘대만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오픈 설계 경기’에서 대상을 수상,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치치 지진 메모리얼’은 1999년 대만의 치치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사망한 2455명의 치치 시민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추모관. 부부는 100×100m의 단 위에 빽빽한 대나무 숲을 만들고, 숲 가운데 공간을 과감하게 비운 ‘천정(天井)’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전쟁이나 테러가 아닌 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곳이고, 서양의 추모관과는 달라야한다는 점을 고려했지요. 그래서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와 중국의 전통적인 사찰 양식을 형상화했습니다.”


대만의 설계경기에서 당선되면서 세계적 명성 얻어

청계천 광장 디자인 모형.
중국 사찰의 특징은 향을 피워 놓고 기도하는 곳의 천장이 한옥의 중정처럼 뚫려 있다는 것. 부부는 중국 사찰 중 비어 있는 공간을 도입, 대나무 숲 중앙을 비워 놓음으로써 사람들이 빽빽한 대숲을 거닐다 어느 순간 하늘이 뻥 뚫린 지점에 이르러 극적인 공간을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이 작품에 대한 동ㆍ서양 심사위원들의 엇갈린 평가는 이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서양 심사위원들은 “동양의 전통적 공간언어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고 평했고, 대만 심사위원들은 “동양의 정서를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전 세계에서 300여 팀이 참가한 국제 오픈 설계경기라서 솔직히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응모했습니다. 그런데 덜컥 당선이 됐죠. 아직 내공이 충분히 쌓이기 전이라 겁도 났지만 독립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유럽인에게 취업비자를 안 주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9년 동안의 해외 생활을 통해 저희가 깨달은 것은 미국이나 유럽 회사에서 아시아 출신은 매니저급 이상으로 올라가기 힘들다는 한계였습니다.”

부부는 “고생은 되겠지만 우리 힘으로 해보자”며 의기투합해 오피스박김을 열었고, 활동 거점을 고국으로 이전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축가나 조경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환경이 좋지 않은 고국행을 꺼린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대만‘치치 지진 추모관’진입로.
“2004년 귀국 무렵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의 광장 설계 공모에 응모해 당선됐지만 저희 디자인으로 광장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디자인이 실험적인데다 예산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다른 해외 팀에 비해 저희가 인지도가 낮았다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고요.”

이들의 디자인은 보행자가 올라가 거닐면서 청계천과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200m 길이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 조형물은 청계 고가도로의 축소판으로, “한국 근대의 상징이었던 청계고가를 추억할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오피스박김은 현재 컨소시엄 형태의 국내 PF(프로젝트 파이낸싱)나 턴키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타 휴양소 조형물.
부부이자 동업자인 두 사람은 업무를 철저히 분담한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 박 대표는 중국, 중동 등 해외시장을 겨냥해 열심히 뛰고 있고, 김 대표는 사무실에서 디자인 기획과 살림을 맡는다. 이날도 박 대표는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인터뷰가 끝날 즈음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중국은 조경 디자인을 건축 디자인의 부속물이 아닌 전문 분야로 인정해 줘 한국보다 일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건축과 조경의 차이가 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치치 지진 추모관’을 200분의 1로 축소한 모형.
“마스터플랜부터 함께 작업해야 하는 협업구조여서 갈수록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뛰어들기 힘든 분야가 조경입니다. 토착문화라든가 사회 특징 등 지역성을 충분히 담아내야 하는 게 조경이에요.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그 지역 특유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은 짧은 시간에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김 대표는 “서울은 서양의 근대 도시 구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공원은 부족하면서도 아파트와 빌딩 곳곳에 나무와 벤치가 있는 것이 서울의 특징이라는 것. 그는 싱가포르의 조경학자 윌리엄 림이 오는 12월 말 엮어낼 예정인 책 《아시안 에이 스토리》에 한국 도시 집필자로 참가, 서울 이야기를 썼다. 모교인 서울대에서 조경 스튜디오 과정을 열고 있는 그는 요즘 철로변, 다리 아래, 인터체인지 등 자투리 공간들을 어떻게 공원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다. 그는 “크고 멋있는 프로젝트도 좋지만 작은 공간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연구하는 것도 퍽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세계의 공원을 디자인하는 부부의 푸른 미소가 아름다워 보였다.

사진 : 신규철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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