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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최초 한국인 메인 앵커에서 미디어 회사 사장으로 변신한 메이 리 ‘로터스 미디어하우스’ 대표

“저, 욕심 많아요”

“저는 미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요.”
긴 생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빗어 넘겨 하나로 묶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녀는 당당하고 활기차 보였다. ‘아시아의 오프라 윈프리’로 불리며 CNN, ABC, CNBC 등 미국 간판 방송사의 메인 앵커 및 특파원으로 활약하던 메이 리 씨(41세)가 9월 12~14일 서울 쉐라톤워커힐에서 열린 세계여성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올해 초 싱가포르에서 TV프로덕션인 ‘로터스 미디어하우스’를 설립, 사업가로 변신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 <메이 리 쇼>를 직접 연출해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사회, 패션, 생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메이 리 쇼>는 홍콩 스타TV의 영어채널 ‘스타월드’를 통해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15개국에서 방영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는 10월부터 CJ미디어의 라이프스타일채널 ‘올리브’를 통해 매주 목요일 방영하고 있다. 중국 출신 여배우 조안 첸, 호주 출신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 전 홍콩 총리 안손챈 등이 등장했고, 한국의 영화배우 김태희, 다니엘 헤니, 디자이너 정구호 씨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첫눈에도 그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였다. 똑 부러지는 말투, 세련된 매너, 자신감 넘치는 태도 등 험한 미국 방송계에서 ‘살아남은’ 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미국이 아무리 기회와 평등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아시아계 여성이 방송 분야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뉴스채널인 CNN에서 일하며 차별을 느낀 적은 없냐고 묻자, 그녀는 “일단 CNN에 들어간 후에는 열심히 일하면 다른 문제는 해결됐다. 오히려 방송계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61번 도전 끝에 방송 입문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밀스 칼리지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그녀는 그저 방송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수많은 방송국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한 1990년 전후는 일본의 자동차 덤핑으로 미국 내 ‘안티 재팬’ 바람이 거세던 시기. 그녀는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방송국으로부터 수없이 거절당했다. 무려 60개의 데모 테이프를 보낸 끝에 61번째 이력서를 낸 캘리포니아 주의 한 작은 지역 방송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이자 작가, PD 겸 카메라맨을 겸하는 고된 자리였다.

이후 점차 큰 방송국으로 옮겨 다니다 26세 때 일본 NHK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아시아 여성을 구한다’는 광고를 우연히 보고 다시 한 번 이직했는데, 이것이 성공의 사다리가 됐다. CNN의 한 고위 간부가 그녀가 리포트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CNN 동경특파원 스카우트 제의를 해온 것.

동경특파원으로 CNN 화면에 첫 신고를 한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정식 부임에 앞서 샌프란시스코 남동생 집에서 잠시 휴가를 즐기고 있었는데, 상사로부터 긴급 호출이 왔다. “일본에 큰 지진이 났어.”

다니엘 헤니, 김태희 등 한국 스타들도 인터뷰했다.
그 길로 비행기표를 구해 일본으로 날아갔고, 도착 4시간 만에 먼데일 주일 미국대사 인터뷰와 함께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 세계에 전달했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소식을 신속하고 차분하게 전함으로써 그녀는 까다로운 CNN의 첫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

이후 CNN 홍콩지사에서 첫 한국인 메인 앵커를 지냈고, 주말 매거진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아시아>의 앵커로 활약하면서 홍콩 반환, 아시아 경제 위기 등 주요 사건을 전했다. 1999년에는 오프라 윈프리가 설립한 ‘옥시전 미디어’로 옮겨 2시간짜리 토크쇼 <퓨어 옥시전>을 진행했다.

“삶의 전환점이 됐어요. 늘 심각한 시사 문제만을 엄숙하게 다루다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죠. 그러나 차츰 감정을 어느 정도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고,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동경하던 오프라 윈프리를 가까이서 지켜본 것도 그녀에게는 많은 자극이 됐다. 오프라는 이따금 그녀의 촬영현장에 와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방송에서는 의도가 중요하다. 시청자가 이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얻으려 할까를 항상 생각하며 방송하라”는 충고가 인상적이었다고.

그녀는 한국인 1.5세다. 그녀가 나고 자란 오하이오 주는 백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어렸을 때 그녀는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주눅이 들었고, 수줍은 성격이 됐다. 기숙사가 있는 여고에 들어가면서 ‘남들과 소통해야겠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사회적인 성격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가 설립한 프로덕션에서 제작하는 <메이 리 쇼>. 위는 헨리 키신저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와, 비록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던 어머니는 여느 한국인 이민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아이비리그에 입학해 ‘사’자가 붙은 직업을 갖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학과 과학을 못해서 아이비리그 입학은 멀어졌고, 대신 내가 잘하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방송기자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부모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자신의 꿈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방송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너는 아시아계 여성이고, 키도 작은데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니냐’고 걱정하셨지만 제가 계속 간절히 원하자 결국 지지해 주셨어요. 저는 그 점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실제로 그녀는 키가 겨우 150cm가 넘을 것 같은 아담한 체구다. 메이 리의 어머니는 항상 한국의 속담을 인용해 가르침을 줬는데 그중 ‘한 우물을 파라’도 즐겨 인용한 속담이었다. 어머니의 충고대로 그녀는 20년 넘게 미디어라는 한 우물을 줄기차게 파왔다. 그 세월을 지탱해 준 것은 그녀의 이른바 ‘4p’ 원칙이다. 즉, 열정(Passion), 인내(Perseverance), 끈질김(Persistence), 부지런함(Patient)이다. 이 4가지 덕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따라 커리어의 성공 여부가 달라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지금 그녀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방송기자에서 한발 나아가 ‘로터스 미디어하우스’의 CEO로 변신 중이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고 재미도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저는 미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요.”

메이 리는 로커스 미디어하우스를 장차 TV 프로그램뿐 아니라 책, 모바일, 인터넷 사업을 총망라한 오프라 윈프리의 ‘하포 그룹’ 같은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키워 나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저, 욕심 많아요” 하면서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사진 : 김영준
  •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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