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인터뷰 | 일본 최고의 장인 (16) 후루카와 시로

수제 나이프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나이프는 인류와 함께 발전해 온 인류 최대의 오락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도구를 만드는 종족은 인간이 유일했고, 그 도구의 시초가 바로 나이프였지요.”

커스텀 나이프 장인 후루카와 시로 씨(古川四ㆍ57세). ‘수제 나이프의 신’이라 불리는 전설의 나이프 장인 ‘밥 러브리스’는 일찌감치 그를 ‘세계 최고의 장인’이라고 칭송했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그는 일본인 최초로 미국 나이프 메이커 ‘길드 베스트 홀딩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전 세계 유서 깊은 나이프를 소장하고 있는 ‘랜돌 나이프 박물관’에도 그의 작품이 10개 이상 전시돼 있다. 랜돌 나이프 박물관은 ‘미국 모던 나이프의 아버지’로 불리는 보 랜돌이 설립한 것. 세계적인 명품만을 엄선해 온 랜돌이 후루카와가 30세에 만든 작품에 매료돼 직접 주문해 진열한 것이라고 한다. 후루카와의 이니셜 SF MADE KNIVES도 랜돌이 디자인해 준 것이다.

그의 나이프는 한 자루에 7만 엔에서 400만 엔. 컬렉터 사이에서는 1000만 엔을 호가하기도 한다. 주문한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의 나이프를 구하려는 사람의 주문이 끊이질 않는다.

도쿄에서 한 시간 반가량. 사가미(相模)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조그만 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탈모를 감추기 위해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머리가 금발이어서 장인 같지 않지요. 헤헤” 하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이 마치 소년 같다.

그가 만들었다는 접이식 나이프 두 자루를 내놓는다. 길이 8cm, 날을 활짝 펴니 13cm정도 된다. 그 칼 속에서 핀셋, 가위 등 5개나 되는 소도구가 나온다. 철로 만들어진 나이프인데도 만지고 있노라니 섬세함을 더해 묘한 따스함과 관능미마저 느껴진다.

“나이프는 쇠를 깎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닦아 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나이프에 장인의 내면이 투영되는 것이지요.”


그의 작업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먼저 주문하는 고객과의 미팅. 두 번째는 고객에 맞는 이미지를 구상하고 이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 세 번째는 재료를 자르고 각 부위를 깎고 다듬는 공정. 이 공정에서는 고객의 용도에 맞게 톱, 핀셋, 드라이버, 송곳, 가위, 이쑤시개 등을 하나씩 만들어 장착한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을 혼자서 다 해야 한다. 갈고닦는 단위는 1/1000밀리마이크론 정도.

가장 주의하는 작업은 칼날의 강도를 유지하고 잘 잘리는 날을 만드는 공정. 일정 온도 이상의 열을 가해 날을 구워 버리면 날이 무뎌지거나 강도가 약해진다. 그래서 그 열을 손가락으로 느끼면서 정도와 예리함을 창출해야 한다. 장인의 오랜 수련과 감각이 빛나는 순간이다.

“손가락이 무척 뜨겁지요. 그렇지만 이 공정을 중간에 멈추면 감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뜨거움을 참는 인내가 필요해요.”

다섯 종류의 벨트를 바꾸어 가면서 힘과 시간을 안배하며 깎아 간다. 깎는 작업을 마치면, 다음은 굽기다. 굽기의 포인트는 색깔의 변화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다. 그래서 이 공정은 주로 오후나 저녁에 작업이 이루어진다. 순간순간 변하는 불빛과 칼날의 색깔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마지막 단계는 날이 얼마나 잘 드는가를 확인하는 작업. 완성된 칼날이 팔뚝의 부드러운 잔털을 바람처럼 가르면 합격이다. 이 마지막 칼날 확인 작업 때문에 그의 양 팔뚝에는 털이 거의 없다.

“나이프의 기본은 무엇보다 잘 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능성과 디자인이 가미되어야 하는데, 실용성 이상의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가 이 네 가지 공정 중 가장 중요시하는 과정은 고객과의 미팅이다.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를 알아차릴 수 없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고객의 직업, 성품, 말씨, 자태를 느끼고 고객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그린다.

그가 고객과의 일치를 강조하는 부분은 두 가지. 외관을 포함한 전체적인 이미지와 기능성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와인 소믈리에라면, 와인 이야기가 담긴 신화나 포도나무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코르크를 딸 수 있도록 부속품을 장착한다. 고객이 대만에서 해운업을 하는 실업가였다면 마도로스를 이미지화해서 조각했고, 손잡이는 진주로 만드는 식이다.


1950년, 그는 악기점을 4개나 경영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아버지의 사이드카를 타고 통학할 정도로 부유한 가정의 도련님으로 자란 그는 일찍부터 어른들의 놀이 문화를 탐닉했다. 슬롯머신을 하다가 근신을 당하기도 했고, 각종 스포츠를 두루 섭렵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여자들과 노는 것이었다 한다.

“쉬운 표현으로 악동에 불량배였지요. 이때만 해도 후루카와 악기의 도련님이 공장 직공에 나이프 장인이 되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하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피아노 조율사 양성학교에서 피아노 조율을 배웠다. 졸업 후 도쿄의 피아노 가게에 취직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피아노 조율도 손가락의 감각이 중요하잖아요. 손가락의 감각과 감성으로 조율을 하기 때문에 손에 전달되는 느낌, 손잡이, 잘리는 느낌이 나이프와 다를 게 없어요. 훗날 나이프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이때 기억된 감각이 아닐까도 싶어요.”

3개월 만에 그만둔 그는 아버지 보기 민망해 공장 직공으로 취직했다. 그는 그곳에서 나이프의 스승을 만난다. 바로 일본 커스텀 나이프의 선구자 구잔 오다(久山小田) 씨. 도장(刀匠:일본도 진검을 제작할 수 있는 국가 공인 자격)으로 자신이 만든 진검과 총알의 대결에서 총알을 두 동강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에게 공구 연마에서부터 칼 가는 법 등 기초를 배웠지요. 공장 일을 마치고도 조수로서 저녁 늦게까지 공장의 기기를 이용해 칼을 만들었어요.”

그 후 베어링 공장 등을 전전하던 그는 나이프 유학을 위해 1978년 28세 때 미국행을 결심했다. 러브리스 등 일류 나이프 장인들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그의 나이프 수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년 전 영국을 방문한 후 유럽의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프는 미국식 스타일이지만, 영국 셰필드 지역에서 전승되는 제법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후에도 선진 나이프는 기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그는 “400년이 넘는 나이프 제조 역사를 지닌 영국에서는 고대와 중세 유럽의 기법을 배웠다”고 회상한다.

미국에 후루카와라는 이름을 각인하고 온 그가 일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주간 <플레이보이>에 나이프 특집을 연재하면서부터. 그의 글은 세간의 화제가 됐고, 이례적으로 150만 부가 팔리기도 했다. <플레이보이>지 설문조사에서 누드사진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기사는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전설의 나이프 장인으로 부르지만 그는 아직도 수업 중이라고 말한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수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바라보면 예술품이 되고, 사용하면 필수품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NHK 국제방송국, 닛케이 라디오 캐스터로 활동 중이며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일본서적·편저)을 썼다.
  • 200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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