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훈비네김 대표

김구이 노점을 연매출 30억 기업으로

윤기가 잘잘 흐르는 갓 지은 쌀밥을 보면 맛있는 김이 생각난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들기름 발라 화롯불에 구운 김의 감칠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훈비네김의 이정숙 대표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워 주던 김 맛을 살려 내 사업으로 성공시킨 주부다. 그는 철판 하나 놓고 김을 구워 팔던 작은 노점을 6년여 만에 연매출 30억여 원의 기업으로 키워 냈다. 광고 한 번 없이,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그가 세운 훈비네김은 현재 전국에 250여 개의 가맹점을 두고, 일본과 몽골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조만간 미국에도 진출할 예정. 김구이 전문점을 프랜차이즈화한다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이정숙 대표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있는 훈비네김 본사 겸 공장에서 만났다. 3층 건물 1층에 마련된 그의 사무실은 깨 볶는 냄새로 진동했다.

“들기름을 직접 짜서 김에 바릅니다. 하루 평균 일곱 가마니의 들깨를 볶아 순도 100%의 기름을 짜죠. 우리 들기름도 인기가 높아 병에 담아 판매합니다.”

푸근하고 후덕해 보이는 인상만 보면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지만 비즈니스 감각은 프로급이었다. 대기업들이 내놓은 기존 상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굽는 과정은 철저히 수작업을 고집하면서도 맛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 기름 바르는 과정은 기계화를 도입했다고 한다. 고객 관리를 위해 가맹점주를 엄선한다는 원칙도 확고했다.

“가맹점이 많아지면 회사 매출이 오르니까 당장이야 좋겠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돼 한 군데라도 문제가 생기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프로 근성이 없는 분들에게는 가맹점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훈비네김은 들기름에 잰 김을 현장에서 바로바로 구워내는 게 특징이다. 김은 양식장에 주문 생산하고, 훈비네만의 비법으로 기름을 발라 가맹점에 공급하면, 가맹점이 그때그때 철판에 구워 파는 방식.

“직접 맛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 김은 중독성이 있어요. 한번 맛본 분은 계속 찾게 되죠. 밥 뜸 들이는 사이 생각나서 사러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될 수 있으면 휴일 없이 가게 문을 열어 놓아야 해요. 먹고 싶어 왔는데 문 닫았거나 주인이 없으면 얼마나 화나겠어요.”

맛에 관한 한 자신감이 넘쳐났다. 이 대표가 방금 구운 김 한 장을 맛보라며 내밀었다.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김을 베어 문 순간 입 안 가득 고소한 향이 퍼지며 사르르 녹는 듯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김과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그에게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느냐”고 물으니 “그건 우리 회사 생명이니 공개할 수 없죠”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저희 어머니가 전라도 분인데,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에요. 김치든 나물이든 저희 어머니 손을 거치면 예술이 되죠.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 맛을 내봐야지, 하고 혼자서 연구하다 보니 그 맛이 나오더라고요.”

음식 솜씨가 좋다면 식당을 하거나 반찬가게를 하면 될 텐데, 왜 하필 김구이 노점상이었을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다 싶어 물었더니 결혼 후 힘겹게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김에 바를 들기름은 들깨를 볶아 직접 짠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그는 청량리에 있는 한 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지금의 남편 여운택 씨(45세)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결혼해서도 한 2년 동안 유치원 교사로 일했어요. 그때 제 꿈은 열심히 돈을 모아 직접 유치원을 경영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시누이까지 전공을 유아교육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1989년 첫아이 임신과 함께 그는 유치원을 그만두었고, 구리시에 있는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을 인근 아파트 전세로 옮길 만큼 알뜰살뜰 살았다. 둘째를 가지면서는 아파트 상가에서 화장품 할인코너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럭저럭 살 만했던 형편이 급속도로 어려워진 것은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였다.

“다섯 달이나 밀린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외환위기로 취업도 어려울 때였죠. 식당을 시작했지만 권리금도 건지지 못한 채 문을 닫는 바람에 억대가 넘는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한 달에 갚아야 할 이자만 300여만 원이었다. 그는 친정오빠의 도움으로 트럭을 구해 충주장, 영월장 등 시골 5일장을 쫓아다니며 야채를 팔기 시작했다. 고맙고 미안하게도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이던 두 아이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밥을 챙겨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별 보고 나가 달 보며 들어오는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그런데도 기름 값 빼고 재고 정리하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돈이 없더군요. 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재고 걱정도 없는 장사가 없을까, 생각하다 떠올린 아이템이 김이었어요. 옛날 우리 어머니가 구워 주던 손맛을 낼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니가 구워 주던 김 맛 찾아내

장사 시작 혼자서 수백 장이 넘는 김을 구워본 후 “이 맛이면 되겠다” 싶어 들기름에 잰 김을 들고 새로 생긴 백화점 옆 노점으로 나갔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붙잡아 무조건 시식부터 하게 했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손님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서더니 서로 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밤 10시에 장사를 끝내고 돌아와 새벽 6시까지 김을 재도 양이 모자랐다.

“6개월 정도 하니 혼자서는 도저히 양을 당해 낼 수가 없더군요. 김 재는 일은 이웃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것으로도 부족해 지하상가를 하나 분양받아 사람을 고용하게 됐지요.”

12장에 2000원 하는 김을 팔아 벌어들인 한 달 수입이 7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었다. 덕분에 1년여 만에 억대가 넘던 빚을 모두 갚았다. 김 하나를 놓고 손님끼리 싸움이 붙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자 옆에서 떡볶이를 팔고 우동을 팔던 노점상들이 “우리도 김을 팔게 해달라”며 체인점을 내라고 졸랐다. 이번에는 훈비네김을 팔면 돈을 번다는 소문이 나 체인점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루가 다르게 체인점이 늘었지만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손맛을 보러 오는 고객들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체인점이 30개 정도 생겼을 때 브랜드화 작업을 했어요. ‘훈비’는 제 큰아들 이름인데, 그 아이를 가졌을 때 꿈이 생각나 브랜드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커다란 조개를 주워 요리하려고 열었더니 눈부신 진주가 나오는 꿈이었지요.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운명이 아닌가 싶어 그렇게 정한 겁니다. 사업이 커지고도 2년 동안 저는 같은 장소에 나가 김을 구웠어요.”

김을 구워 팔며 그는 “같은 이름인데 우리 동네에서 파는 건 여기만 못한 것 같다”는 고객들의 불만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 바로바로 시정했다. 김의 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목포에 있는 김 양식장과 주문생산 계약을 맺었고, 기름과 소금의 양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계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는 “우리 집 김은 여러 종류의 물김을 배합해 만들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김과는 원료부터 다르다”고 자랑했다.

“저희 맛은 고객과 함께 만든 겁니다. 사실 해외시장 진출도 고객들 덕분에 이뤄진 거예요. 몽골의 경우 몽골 대통령 부인이 이곳에서 가까운 몽골촌에 방문했다가 우리 김을 선물로 받고 너무 맛있다며 입소문을 내준 덕분에 진출하게 됐죠. 울란바토르에만 체인점이 여덟 군데인데, 조만간 한 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가와사키에 문을 연 일본 진출 1호점 역시 맛에 매료된 교포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정숙 대표는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진 브랜드를 고급화하고 명품화하는 일이 앞으로 할 일”이라며 “김뿐만 아니라 김치 시장에도 뛰어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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