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원 시계수리명장 1호

40년 가까이 명품 시계 수리 이젠 직접 만들어요

“아직까지는요.”

“고치지 못한 시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시계수리명장 장성원 씨(56세)의 답변은 겸손하면서도 단호했다. 1997년 시계수리명장 1호로 선정된 장성원 씨. 19세에 입문해 37년째 외길을 걷고 있다. 작년 가짜 명품시계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빈센트 앤 코’의 감정도 그가 맡았다. 국내 유일의 시계주얼리과가 있는 동서울대에서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장 씨가 근무하는 청담동의 명품 중고 숍 캐시캐시를 찾았다. 현관에 들어서자 장성원 씨의 명장증서와 명장훈장이 눈에 들어온다. 시계 수리 코너에는 그의 사진이 기둥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계명장 1호 장성원.’ 그의 이름과 얼굴이 곧 브랜드인 셈이다. 이곳에서 장 씨는 중고 시계 매입과 시계 수리를 하고 있다. 쓰다가 싫증나 이곳에 팔려온 중고 시계들은 장 씨의 손에서 새것처럼 손질돼 새 주인을 만난다. 육안으로는 새것과 다름없지만 백화점 숍보다 5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그는 척 보기만 해도 명품과 가짜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진품은 첫눈에 보기에도 완성도가 다릅니다. 가짜는 제작비를 충분히 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마무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지요.”

‘진품’과 ‘짝퉁’의 감정은 육안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까르띠에, 롤렉스, 피아제 등 대중적인 명품 외에 듣도 보도 못한 명품들이 숱하게 많기 때문. 육안으로 판별이 어려울 경우 뚜껑을 열고 문자판, 인덱스, 시계바늘, 유리 등 하나하나 부품의 완성도와 기술력을 관찰한다. 시계바늘은 일반 기계로 찍어서 도금을 한 건지, 금을 깎아서 다듬은 건지, 또 유리의 투명도와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꼼꼼히 살핀다. 부품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진품과 짝퉁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감정이 끝나면 자신의 이름을 단 감정서를 써준다.

장성원 씨가 직접 만든 시계 ‘제우스’
초정밀 부품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작동하는 작은 손목시계의 세계. 그는 이 안에서 소우주를 발견한다. 먼지 같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고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잊는다. 시계 부품들이 만들어 내는 소우주가 세상의 전부가 된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말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고 며칠씩 시계 수리에 몰두한 적도 있단다.

“끙끙거리며 시계를 만지다 드디어 바늘들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의 기쁨. 그 행복감과 성취감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으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지요?”

얼마 전에는 탤런트 유인촌 씨의 시계를 수리해 줬다. 선물 받은 지 10년이 넘은 헤리윈스턴 시계로, 한정판이 있는 귀한 시계였다. 다른 수리점에 맡겼다가 못 고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문을 듣고 부부가 함께 찾아온 것. 수리가 쉽지 않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구하기 힘든 부품들이었다. 장 씨는 결국 부품을 직접 손으로 깎았는데, 두께나 크기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7개월 후, 시계바늘은 다시 돌기 시작했다.


가출 청소년들을 시계수리공으로 양성

청담동 캐시캐시 매장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시계를 좋아했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시계방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당시는 시계가 엄청 귀했거든요. 전교에 달랑 두 명만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그중 한 명이 걔였어요. 그 작은 시계 안의 세상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거예요. 친구의 시계를 빌려 뚜껑을 열었죠. 순간 부품 하나가 도로롱 굴러 마룻바닥 틈새로 들어가 버렸고, 친구는 울면서 집에 갔죠.”

장성원 씨는 초년 고생이 심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일찌감치 소년 가장 노릇을 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 철공소, 신문 배달, 식당 음식 배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시계 수리에 발을 들여놓은 건 그의 나이 19세 때,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부산상고 옆에 중고 시곗줄을 손질해서 파는 매장의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모터로 광을 내지만 당시는 사포로 문질러 광을 냈어요. 손에 쥐고 하도 문질러 대서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지요. 손가락 아래쪽이 벗겨져 피가 몽글몽글 솟기도 했습니다.”

시키는 일마다 척척 해내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장 씨를 눈여겨본 주인은 그에게 매장을 물려줬다. 그때부터 온갖 명품 시계를 만지면서 본격적으로 시계의 좁고도 넓은 세계에 눈을 떴다. 그는 타고난 손재주에 관련 서적을 독파하면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실력가가 됐다. 그의 이름은 수리공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일반 고객보다 수리공 고객이 더 많을 정도가 됐다. 말하자면 ‘시계 수리공의 수리공’이 된 셈이다. 그가 대한민국 시계수리명장 1호가 된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후진 양성을 열심히 해온 점도 점수를 땄다.

매장에 걸린 명장증서
“가출 청소년 두 명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한 명은 중국집 배달원이었고, 또 한 명은 부모가 없는 아이였어요. 우리 집에 데리고 와 같이 살면서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집 애들이 ‘삼촌, 삼촌’ 하면서 잘 따랐어요. 지금은 두 명 다 이 분야 전문가가 돼 있습니다. 한 명은 동경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상을 탔고, 다른 한 명은 역삼동 롤렉스 매장에 있어요.”

장 씨의 두 아들 중 맏아들 준석 씨(27세)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동서울대에서 아버지의 수업을 들은 준석 씨는 졸업 후 스위스 시계회사 센추리에서 1년간 근무하면서 스위스의 장인 정신을 배워 왔다. 준석 씨는 센추리의 한국 판권을 따내 한국 매장 오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나에 2억~3억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들을 숱하게 만지면서 장 씨가 느낀 건 “명품 시계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다”는 것. 아무리 브랜드 값이라지만 재료비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안타까울 때가 많단다. 그래서 그는 직접 시계를 제작하기로 했다. ‘제우스’라는 브랜드로 ‘품질은 명품이지만 가격은 싼’ 시계를 내놓았다. 순금 30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묵직한 시계. 시중가 400만 원 정도로, 1년에 10개 정도만 만든단다. “내 세대에서는 이름을 못 알려도 자식 세대에서는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장성원 씨는 시계 기술 아카데미 건립을 준비 중이다. 자질 있는 소수의 학생을 뽑아서 1년 코스로 ‘시계 장인’을 배출해 내는 학원. 그래서 요즘 그는 스위스와 일본의 유사 교육기관을 다니며 벤치마킹 하느라 바쁘다. 고장난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고, 대가 없이 후학을 시계 장인으로 길러내는 장성원 씨. 만약 인간에게도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허용된다면 장 씨야말로 명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 이창재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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