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데뷔하는 무술감독 정두홍

“한국식 서정 깃든 액션영화 만들 겁니다”

그게 가장 궁금했다. 왜 죽음을 무릅쓰면서 액션에 매달리는지, 인간적 욕망을 참고 극한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이 길을 왜 굳이 택했는지.

“저도 가끔 물어봐요. 참기 힘든 육체적 고통이 올 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스로 답을 못 내리겠어요. 너무 깊은 골수분자가 돼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것 같아요. 하나 분명한 건 무술감독으로서 결실을 맺어보고 싶다는 겁니다.”
영화 〈짝패〉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무사〉 〈피도 눈물도 없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등 현란한 액션물 뒤에는 이 남자가 있다. 무술감독 정두홍(41세). 1989년 〈장군의 아들〉 대역으로 데뷔, 1992년 〈시라소니〉에서 무술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대한민국 액션 영화 발전을 이끈 주역이다.

최근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짝패〉에서 류승완 감독과 나란히 주연을 맡으면서 사람들은 이제 그를 ‘무술감독’보다 ‘액션 배우’로 더 많이 떠올린다. 스턴트맨에서 무술감독, 단역배우에서 주연배우로 끝없이 도전과 변화를 시도하던 그가 또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올해 말부터 촬영하는 액션 영화 시리즈물 〈짠〉의 감독을 맡게 된 것. ‘무술감독’이 아닌 ‘영화감독’이란 새로운 수식어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에서 만난 그에게 “축하한다”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축하는요, 에잇…. 저는 무술감독으로 죽을 거예요. 연출을 해보고 싶은 것도 무술감독을 더 잘하기 위한 겁니다. 전체를 해봐야 부분을 더 잘할 수 있잖아요. 액션 한 장면을 찍더라도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관객들의 시각도 읽어야 하고, 감정선도 깔아야 하는데 무술감독만 하다보니 한계가 있었거든요.”

12m 높이에서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자동차 속으로 뛰어들고, 30개가 넘는 계단을 굴러야 하는 위험천만한 액션. 19년째 액션영화계에 몸담으면서 최고의 무술감독이 됐지만 그는 아직 스턴트맨이든 대역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성룡이나 원표, 이연걸 등 홍콩 최고의 액션 스타처럼 스턴트맨과 액션 배우, 무술감독, 영화 연출을 두루 소화해 내야 한국 액션 영화가 도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화〈짝패〉에서.
정두홍의 몸짓에는 ‘처절한 슬픔’이 배어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싸우고, 달리고, 뛰어든다. 그는 자신의 몸짓을 ‘울부짖음’이라고 표현했다.

“가진 게 몸밖에 없잖아요.(웃음)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다른 재능도 없고. 우리는 홍콩이나 할리우드처럼 특수 장비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액션에는 한국인 특유의 한과 슬픔이 배어 있어요. 그걸 어떻게 끄집어내느냐에 한국 액션 영화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6년에 방한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그가 무술 감독한 영화 〈무사〉를 칭찬하면서 “제대로 된 액션 영화를 보고 싶으면 〈무사〉를 보라”고 말했다. 정두홍이 액션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열일곱 살, 그의 고향인 충남 부여에 태권도장이 생기면서다. 운동만 하면 밥을 안 먹어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던 소년은 한 달 5000원 회비가 없어서 도장을 그만둬야 했다. 고깃배 선장인 아버지의 7남매 중 막내였던 그에게 학원은 사치였다. 정두홍의 몸놀림을 눈여겨봐 온 관장은 그가 무료로 도장을 계속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죽어라 운동을 계속해 인천체육전문대 무도과에 들어갔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인간적 욕망을 이겨내고 훈련에만 매진한 긴 시간이 있었다.


“무술 위해 인간적 욕망은 버렸죠”

“스물아홉까지 술, 담배, 여자를 모르고 살았어요. 술을 마시면 운동해 온 게 헛것이 되거든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하루 열 시간씩 죽어라 운동만 했어요. 저와 함께 운동한 친구들은 저더러 완벽한 인간인 줄 알았대요.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워, 여자도 몰라, 오로지 ‘운동하자’ 한마디밖에 모르니까.”

요즘은 가끔 술자리에 어울리지만 운동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는 “한 평 정도 공간만 있어도 운동할 수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뛰기 시범을 보였다. 20년 전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배가 나올까 봐 기름기 있는 음식은 입에 안 댄다.

정두홍의 오른쪽 눈 위에는 꿰맨 상처가 있다. 싸우는 신을 찍다가 발로 맞아 찢어졌다. 그런데도 실감나는 장면을 찍기 위해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촬영을 감행했다. 쇄골이 부러진 채로 촬영을 계속한 적도 있단다. 지금 그는 왼쪽 쇄골에 12개의 볼트를 박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허리 통증 때문에 자세를 연신 바꾸었다. 6~7년 전 퇴행성 협착증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인공 척추로 교체하고 일체의 운동을 금하라고 했지만 그에게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의사 말 무시하고 그냥 이렇게 살아요. 고통이요? 많죠. 똑바로 앉기 힘들어서 옆으로 틀어서 앉고,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 무릎 통증 때문에 잘 일어나질 못해요. 아침에도 허리와 다리 통증 때문에 일어날 때 고통스럽죠.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려고요. 이 길을 포기할 순 없으니깐. 사람들이 저더러 ‘오기덩어리’래요. 하하.”

프로 복싱 경기 중인 정두홍 씨.
2년 전 그는 또 한 번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태권도, 합기도, 유도, 해동검도 등 ‘싸움의 기술’을 두루 섭렵하더니 38세에 프로 복서 데뷔 선언을 한 것이다. 첫 번째 시합에서 코뼈가 부러졌고, 사흘 만에 8㎏을 빼며 체중조절을 하느라 위염을 얻었다. 최고령으로 데뷔하는 그를 주위에서는 심하게 말렸지만 정두홍은 두 번째 시합에서 1회전에 상대를 보기 좋게 KO시켰다. 매순간 ‘죽을 각오’로 연기를 한다는 정두홍. 예나 지금이나 위험한 연기를 앞두고 무섭고 겁나는 건 똑같단다. “이제까지 가장 위험한 장면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

“항상 두려워요. 저를 가장 공포스럽게 하는 건 상상이에요.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 전엔 맨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 물에 뛰어들 땐 물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나, 차에 뛰어들 땐 사고가 나 기절해 있는 나. 위험한 연기를 앞두고 매일 악몽을 꾼 적도 많아요.”

파주 헤이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 건물.
〈머나먼 쏭바강〉 촬영 때에는 낙하 신에서 실수로 머리와 등으로 떨어지면서 잠시 동안이었지만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게 가장 궁금했다. 왜 죽음을 무릅쓰면서 액션에 매달리는지, 인간적 욕망을 참고 극한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이 길을 왜 굳이 택했는지.

“저도 가끔 물어봐요. 참기 힘든 육체적 고통이 올 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스로 답을 못 내리겠어요. 너무 깊은 골수분자가 돼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것 같아요. 하나 분명한 건 무술감독으로서 결실을 맺어보고 싶다는 겁니다.”

스턴트맨 초기 시절, 그는 전철 요금이 없어서 울타리를 타 넘어 도주한 적도 있단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액션 배우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지만 한국 액션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후진 양성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서울액션스쿨’은 재능과 열정은 있지만 경제력이 없는 액션 배우 지망생들에게 꿈의 공간이다. 이 학원은 수강료가 없다. 강우석 감독의 지원으로 지어졌고, 정두홍을 위시한 무술감독들과 선배들의 출연료로 운영된다.

인터뷰가 끝난 후 악수를 청했다. 액션과 함께한 19년 세월이 굵고 거친 손마디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가 한국식 서정이 깃든 액션 영화의 새 지평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사진 : 이창재
  • 2007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7

201907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7

event
event 신청하기
영월에서 한달살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