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놀라게 한 서울대 약대의 힘

차세대 진통제 개발 이지우 교수팀, ‘젊은 과학자상’수상자 배출 서영준 교수팀

열둘이나 되는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생기는 일들을 다룬 영화 <열두 명의 웬수들>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황우석 교수가 분(扮)한 <죽은 과학자의 사회>도 아니다. 복잡한 화학 방정식을 주문 삼아 외우며, 좁은 실험실에서 집요하게 인간 생명을 탐구하는 약대 연구원들의 이야기다.

서울대 약대 이지우 교수 연구팀과 서영준 교수 연구팀. 이지우 교수 연구팀은 외국에서 수백억 원에 기술이전을 해 간 신약을 개발했고, 서영준 교수팀은 세계적 권위의 암학회(AACR)가 주는 ‘젊은 과학자상’수상자를 7년 연속 배출했다. 두 사람을 통해 서울대 약대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서울대 약대 77학번인 서영준 교수와 79학번인 이지우 교수는 대학 시절 약대 그룹사운드 ‘APEX’를 같이 했었다. 서 교수는 베이스, 이 교수는 기타를 연주했다. 단과대 쌍쌍파티에 초청받아 연주를 다녔고, 비록 본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대학 가요제에도 나갔다. 이제 각자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됐지만, 재기발랄하고 끼 많은 두 사람인지라 가끔 몸이 근질근질할 때도 많다고 한다.

7년 연속 ‘젊은 과학자상’ 수상자 배출로 화제가 된 서영준 교수팀에 이어 최근엔 이지우 교수팀이 대박을 터뜨렸다. (주)디지탈바이오텍 연구소와 함께 차세대 진통제를 개발해 그 특허권을 독일 그루넨탈사(社)에 이전, 상용화를 위한 공동 연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번 계약으로 이 교수팀은 그루넨탈사로부터 최대 4,000만 유로(480억 원)의 기술 이전료는 물론 상용화할 때까지 매년 7억 원의 별도 연구개발 자금을 받게 됐다. 고작 10여 명의 연구 인력만으로 480억 원대의 대박을 낳은 셈이다.

이지우 교수팀이 개발한 차세대 진통제는 중독성이 없어 학계에서 ‘모르핀을 대체할 진통제’로 주목받고 있다. 중증 통증의 경우 모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쓰였는데, 중독성이 높다고 지적받아 왔다. 특히 신경이 손상돼 생기는 통증인 신경병증 통증, 예를 들어 대사성 질환이나 대상포진겳÷訣?암 등의 질환에 수반되는 통증은 기존 진통제로 사실상 대처하기 어려웠다. 이지우 교수는 차세대 진통제에 대해 “통증 전달의 통합 역할을 하는 TRPV1(바닐로이드) 수용체를 막아 중증 통증에 효과를 발휘한다”며 그러면서도 “비(非)마약성이라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신약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시간과 돈을 쏟아 부어야 되고 위험천만한 임상실험도 거쳐야 한다. 평균 15년의 세월과 5억 달러의 돈을 들여 5,000개 정도의 화합물을 만들면 그중 1개 정도가 신약으로 개발될까 말까라고 한다. 이 교수는 “국내 신약 대부분이 이미 나와 있는 의약품을 개량한 제품인 데 비해 이번에 개발한 차세대 진통제는 화합물 골격까지 새로운, 그야말로 신약”이라며 “상용화되면 시장성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학원생과 (주)디지탈바이오텍에서 파견 나온 연구원을 합쳐 11명으로 구성된 이지우 교수 연구팀은 4년 가까운 연구개발 끝에 이 신약을 개발했다. 아직 임상시험 단계가 남아 있지만, 외국 제약회사로부터 먼저 기술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서영준 교수는 암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식물의 성분을 연구하고 있다.
강동욱(35세·박사 과정 4년차), 유형철(33세·박사 과정 2년차) 연구원은 사실상 연구팀의 좌장. 일요일만 빼고 거의 연구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이 교수의 지휘를 받으며 연구를 주도한다. 두 사람 모두 제약회사의 전도양양한 연구원으로 있다 다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강동욱 씨는 “연구 아이디어를 어떻게 내고 실행하느냐에 글로벌 경쟁력이 달려 있습니다. 연구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기투합한 결과 좋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실험이 벽에 부딪히면 교수님과 자유롭게 브레인 스토밍 토론을 벌였고, 각자 저널과 논문을 찾아 읽으며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했지요”라고 연구과정을 설명했다.

유형철 씨는 전 직장이었던 CJ종합기술원에서 관절염 치료제 연구를 한 경험이 이번 신약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서울대 가족생활관에서 생활하는 그는 집이 학교와 붙어 있다 보니 휴일도 없이 1주일 내내 실험실에서 살았다. 그러다 아무래도 체력이 달리는 것 같아 저녁에는 헬스를 하며 체력을 단련했다.

스물다섯 막내인 서세진 연구원(25세·석사1년차) 은 실험실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박사 과정 8학기째인 진미경 연구원(30세·박사4년차)은 실험실의 큰언니이자 왕고참. 그만큼 실험에 대해 축적된 노하우가 많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파 박사’로 불리는 인도 출신 파한 룰라 박사(32세)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항생제 연구만큼은 이 교수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서 교수팀 젊은 과학자상 18차례 수상

서영준 교수 실험실인 ‘발암 기전 및 분자암 예방 연구실’은 무려 7년째 미국 암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젊은 과학자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학계에서는 서 교수팀을 ‘과학자 사관학교’로 부를 정도다. 현재 22명 연구원 중 18명이 여성.

이지우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신약이 상용화되면 시장성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경수 박사(현 미국 국립환경보건원·NIEHS 박사후 연구원)가 2000년 처음으로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이래 매년 수상자를 내 누적 수상 횟수가 18차례나 된다. 올해도 나혜경 책임연구원과 대학원생 김은희·김현수·조이뎁 쿤두 연구원 등이 이 상을 받았다. 매년 1만여 편 정도에 달하는 논문이 발표되는 미국 암학회에서 우수 논문을 제출한 100여 명 정도를 가려서 수상하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혜경 책임연구원(38세)은 2003년부터 4번 연속 수상했고, 김은희 연구원(29세)과 쿤두 연구원(37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 연속 상을 탔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천경수 박사가 세운 5회 연속 수상 경력이다. 천 박사의 기록이 깨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게 서 교수의 설명이다.

나혜경 책임연구원은 마늘의 유황화합물이 유방암 세포를 없앨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으로, 쿤두 연구원은 포도의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이 피부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으로 수상자가 됐다. 박사 과정 김은희 연구원은 ‘콕스-2’ 성분이 유방암 증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으로 각각 상을 받았다. 석사 과정을 갓 마친 김현수 연구원(26세)은 카레에 들어 있는 ‘커큐민’ 성분이 대장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이 밖에도 이정상(2002, 2005년), 정명훈(2002년), 김도희(2004년) 연구원 등이 이 팀에서 연구하면서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서 교수는 “현재 암 예방 효과를 갖는 것으로 확인된 식품은 마늘, 콩, 생강, 양배추, 브로콜리, 녹차, 토마토 등 40여 종에 이르고 많은 연구를 통해 섬유소나 비타민, 미네랄 등이 암의 발생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만큼 성과를 올린 데는 아무래도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서 교수의 역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지우 교수가 신약 개발과 특허 획득에 관심을 쏟아 왔다면 서 교수는 보다 이론적인 연구에 중점을 둬 왔다. 그는 암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낸 고추의 ‘캅사이신’, 생강의 ‘진저롤’, 마늘의 ‘아릴설파이드’ 등 한국에 풍부한 천연식물을 주로 연구해 <네이처>지(誌)에 논문을 실어 왔는데, 그의 연구는 2006년판 〈암 생물학〉 교과서에까지 소개될 정도다.

두 사람은 서울대 약대 선후배 사이로 대학 시절에는 그룹사운드에서 베이스와 기타 주자로 활동했다.
그는 “우리가 식탁에서 쉽게 접하는 고추, 마늘, 생강 등에서 암을 이기는 물질들을 찾아내 증명하는 것에 세계가 놀라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암 기전 및 분자암 예방 연구실’은 아무래도 한국인이 즐겨 먹는 향신료에 대한 연구가 초점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한국 음식의 재료들을 연구하지만, 실제로 요리에 취미를 붙이기는 어렵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는 것. 밤 10시쯤 연구실 문을 나서면 다행이고, 새벽 2~3시까지 연구실을 지키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혜경 책임연구원과 쿤두 연구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결혼을 하지 못했다. 쿤두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모국인 방글라데시로 돌아가 결혼한 뒤 새댁 주티카 씨(27세)와 함께 서울에 왔는데, 주티카 씨는 남편이 있는 연구실 다른 공간에서 병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나혜경 박사는 전남대에서 박사,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친 다음 2000년 3월 서울대로 왔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 부족해 마음 한켠이 무겁단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이라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실 ‘방장’ 김도희 연구원(27세·박사 2년차)은 이 팀의 글로벌 경쟁력 비결이 ‘자율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특별히 어떤 실험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지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각자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영역을 꾸준히 파고든 게 성과를 높인 비결”이라고 지적했다. 쿤두 연구원은 “한국에 유학 와 좋아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데다 큰 상까지 받아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
서영준·이지우 교수 연구팀이 말하는 글로벌 경쟁력 비결

◎ 직관력, 창의성을 가져라 끙끙 머리 싸매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뜩이는 직관력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 실패하는 연구를 하라 실험이 벽에 부딪히면 관련 논문이나 저널을 읽어 보고 왜 실패했나를 찾아야 한다. 실패는 성공으로 나가는 과정이다. 실패에서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라 목표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쉽다. 짧게는 하루 목표에서 일주일 목표, 한 달 목표를 세워라. 목표가 세워지면 쉬지 않고 그 길을 가라. 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온다.
◎ 자부심을 가져라 자기 분야에 자부심을 갖고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노력해서 남 주는 법은 없다.
◎ 자율성이 최고 덕목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 스스로 길을 찾아라. 그리고 자율성에 걸맞게 최고가 되라.
◎ 손뼉은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팀 플레이가 생명이다.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하되 주위를 돌아보라. 돕다 보면 도움을 받게 마련이다.
◎ 우물 안 개구리는 금물 외국 학회에서 많이 보고 배워라.
  • 200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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