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퍼포먼스로 세계를 사로잡다

글로벌 히트작 ‘점프’ 만든 김경훈·최철기 씨

글 조동진월간조선 기자 | 사진 지호영
태권도, 태껸 등 동양무술에 고난도 아크로바틱(곡예)이 결합한 논 버벌(Non-Verbal) 퍼포먼스 〈점프〉가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해 호평을 받은 후 세계 각국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는 것이다.

4월 30일까지 서울 세실극장에서 펼쳐지는 〈점프〉 공연. 무대 위에서 영화 <와호장룡>의 화려한 무술과 성룡의 코믹한 액션이 어우러진다. 배우들이 현란한 몸짓으로 벽을 차고 공중을 날아오르자 객석에서 감탄과 환호가 뒤섞여 나온다. 대사가 없는 ‘논 버벌’인데도 지루할 새가 없다. 무술 실력이 도합 117단인 별난 가족과 어리숙한 도둑 두 명이 펼치는 코믹 연기는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글로벌 히트작 〈점프〉를 만든 사람은 서른넷 동갑내기 김경훈과 최철기 씨다. 김경훈 씨는 ‘점프’를 조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든 법인 ‘예술적 감성’(예감)의 대표를 맡아 살림을 책임지고, 최철기 씨는 총감독으로 공연을 지휘한다. 이들은 17년 지기로 용문고와 서울예대를 함께 다닌 동기동창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나중에 사고 한번 같이 쳐 보자’고 했잖아? 그 약속이 지금에야 지켜졌네”라며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는다.

최철기 〈점프〉 총감독과 김경훈 ‘예감’ 대표.
문학 소년이었던 두 사람은 그때도 의기투합해 <사랑한다는 것으로>(思路)라는 문집을 만든 후 11집까지 냈었다. 1998년 서울예대를 졸업한 후 김경훈 씨는 공연 기획자이자 예술 경영자로, 최철기 씨는 연극인으로 제각각 길을 갔다.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버는 무명 연극인으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던 최철기 씨는 1999년 ‘난타’팀에 합류했다. 〈난타〉의 성공은 그에게 논 버벌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새로운 퍼포먼스를 만들자’고 마음먹은 최철기 씨는 한국 문화 중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우연히 미국인과 한국인이 태권도 대결을 벌이는 다큐멘터리를 보던 그는 “이거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태권도에 태껸, 합기도, 검술과 봉술 등 갖가지 무술과 아크로바틱을 결합한 공연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는 ‘TGH 컨설팅’ 대표로 있던 동창생 김경훈 씨를 찾았다. 김경훈 씨가 문화겳뭡?경영 컨설턴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라 ‘경영’ 쪽은 친구의 힘을 빌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태권도와 아크로바틱을 섞어 무술 퍼포먼스를 만들어 보자는 제의에 김 씨는 “공연 기획 정도만 도와주겠다”고 했다. 잘나가던 사업을 접고 올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최철기 씨의 끈질긴 구애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들은 일단 배우 모집에 나섰다.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아야 하기에 무술과 아크로바틱만 잘해선 소용이 없었다. 연기가 필요했다. 서울예대 후배들을 찾아다니며 “6개월만 연습하면 성룡이나 이소룡 같은 무술을 하면서 하늘을 날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자신 없어 하는 후배들에게는 “운동 삼아 한번 해 보자”고 꼬드겼다. 그리고 전문가를 모셔 와 배우들에게 무술과 아크로바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구나무서기만 4개월, 덤블링 기술도 4개월을 가르쳐야 했다. 후배들은 조금씩 무술을 익혀 나갔지만, 공연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1년이 흘렀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닥쳤다. 김경훈 씨는 “‘1년 정도 투자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시작했는데, 가진 돈이 바닥나면서 집도 팔고, 차도 팔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았다”고 한다. 결국 노트북 하나 달랑 남았을 때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

2002년 9월 김경훈 씨는 결국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최철기 씨에게 “포기하자”고 통보했다. 최철기 씨도 더 이상 친구와 후배들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점프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흩어진 지 사흘 만에 다시 모였다. 2년 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 무엇보다 열정이 억울했다.


“해외시장부터 공략하자” 전략 맞아떨어져

김경훈 씨가 선배를 졸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빌리고, 크리스마스 때 공연하기로 했다. 김 씨는 그 일을 “인생 최대의 행운”이라고 말한다. 2002년 12월, ‘점프’는 〈별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이때 처음 월급 20만 원을 받아 갈 수 있었다. 공연을 하자마자 ‘제2의 난타’로 주목받으면서 점프 팀도 힘이 났다. 공연이 끝나자 남양주에 연습실을 만들어 합숙에 들어갔다. 2003년 3월에는 ‘예감’이라는 법인도 만들었다. 그러나 공연장 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명도가 낮다며 장기로 빌려 주는 곳이 없었다.

고민 끝에 김경훈과 최철기 두 사람은 세계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 연극과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에서 승부를 걸기로 한 것이다. 2004년 세계 최대 공연축제인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에 참가하기로 했다가 마지막에 포기했다. 아직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후 세계로 나가자고 마음먹었다. 한껏 꿈에 부풀어 있던 배우들은 실망했지만, 두 사람은 이들을 다독이며 다시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공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스페인 코미디 연출의 대가 데이비드 오톤 씨도 영입했다. 그의 조언으로 〈점프〉의 해외 판이 완성됐다.

점프〉 공연 장면(위)과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당시 포스터(아래).
2005년 5월 드디어 세계 무대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스라엘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공연했는데, 연일 매진이었다.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해 8월에는 오랜 목표였던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로 향했다. 대성공이었다. 페스티벌의 주인공이 돼 1,800여 공연 중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휙휙 공중을 나는 다이내믹한 공연에 배우들의 변화무쌍한 표정과 코믹한 연기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제 〈점프〉는 세계 상품이 되었다. 영국뿐 아니라 중국, 두바이, 독일, 홍콩, 마카오,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김경훈과 최철기 두 사람은 그러나 이번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제 첫 단계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단계는 코미디적 요소에 ‘마술’까지 가미하겠다고 한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날아오르다 갑자기 사라진 배우가 관중석 한가운데에서 나타나는 환상적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에도 영화처럼 판타지를 접목시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 ■
  • 200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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