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륙 꼭대기에 모두 오른 여성 산악인 오은선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유럽 엘부르스(5,642m), 북미 매킨리(6,194m), 남미 아콩카과(6,959m), 호주 코지어스코(2,228m), 남극 빈슨매시프(4,897m)…. 지구 상에 존재하는 7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오른 대한민국 여성은 단 한 명, 오은선 씨(40세)다.

그는 아시아 여성으로 세 번째, 한국인으로는 허영호, 박영석에 이어 세 번째로 7대륙 최고봉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세계에서 열세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여성이기도 하다. 2004년 5월 에베레스트에 오른 그는 찬탄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함께 등정에 나선 대원 3명이 사망겱프악求?사건을 겪고도 결국 정상까지 올랐던 것. 박무택 계명대 등반대장 등 먼저 정상을 밟았던 두 사람이 조난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마지막 베이스캠프에서였다. 그는 구조에 나서는 대원에게 자신의 짐을 지고 가던 셰르파와 산소통 하나를 넘긴 후 혼자 정상 정복에 나섰다.

‘죽음의 지대’라 불리는 해발 8,750m 지점을 오를 때 그는 암벽 위 로프에 매달린 채 숨져 있는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박무택 대장은 두 살 위 오은선을 평소 깍듯이 선배로 모시며 따랐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느냐”고 눈물로 따졌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었다. 베이스캠프에 사고 소식을 전한 그는 계속 정상을 향했다. ‘그래도 산사람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도리’라고 믿었다.

“그래도 얼굴은 편안해 보였어요. 에베레스트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곳으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고 왜소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는 곳이지요. 에베레스트에 다녀오고 나서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상을 밟은 그는 탈진한 몸으로 정신이 혼미한 채 산을 내려왔다.

“산소가 부족하니까 손도 저리고, 몸도 둔해지더라고요. 등정 후에 어떻게 내려왔는지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너무 지쳐서 눈밭에 잠깐 누웠는데 그 느낌이 아주 포근했어요. 그렇게 누워 잠들면 얼어 죽는 거죠. 그러다 갑자기 섬광이 번쩍였어요. 잠깐 잠에 빠졌다 깨어난 거지요.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몸을 일으켰어요. 멀리서 랜턴 불빛이 움직이는 게 보였어요.”

사투 끝에 단독 등정에 성공했지만, 그에게는 ‘정상에 태극기만 꽂으면 다냐’, ‘동료가 죽었는데도 정상 정복이 우선이냐’는 비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었다. 산악인에게 죽음이란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 역시 파키스탄의 K2봉을 오르다 50m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등 여러 번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며 오히려 죽음에 대해 담담해졌다.

그와 에베레스트의 인연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 서울시교육위원회 전산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에베레스트 한국 여성 등반대’에 지원해 최종 14명 안에 뽑혔던 것. 등반대 중 막내였던 그는 그러나 정상 공격조에는 끼지 못했다.


“에베레스트가 내 인생을 바꿨다”

처음 본 에베레스트는 오은선의 인생을 바꿨다. “쉰 살 되기 전에 반드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그는 출퇴근이 자유로운 학습지 방문교사를 하며 틈틈이 산에 올랐고, 1999년에는 수원에 스파게티 전문점을 열어 직접 주방일을 하면서 산에 올랐다. 그렇게 산을 좋아했던 여자, 오은선은 미혼이다. 등산복 등을 생산하는 스포츠의류 전문 업체인 영원무역 마케팅과장으로 있는 오은선 씨를 서울 월곡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호주의 또 다른 최고봉 칼스텐츠에 도전했다 반군의 위협으로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절대 절대 절대 산과 결혼한 건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이거니까, 남자한테 부담 주기가 싫어서 사람을 못 만났어요. 나를 멀리 보내면서 가슴 아파할 사람이 생긴다면 미안할 것 같아서요.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일단은 만나 보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결국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먼 산으로 저를 보내는 괴로움이야 저를 사랑한 사람 몫이겠죠 뭐.(웃음)”

오은선은 훗날 그의 딸이 산악인이 되겠다고 하면 “웬만하면 말리겠다”면서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그건 그 아이의 몫”이라고 했다. 오은선은 1남 2녀 중 장녀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지금껏 딸을 적극 후원해 왔다. 이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종종 “당신 때문에 저 아이가 시집도 못 갔다”고 핀잔을 준다. 오은선이 산을 처음 만난 건, 아버지 덕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아버지랑 도봉산에 올라간 적이 있어요. 도봉산 가는 길에 멀리 북한산 인수봉이 보였는데, 절벽에 사람들이 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더라고요. 그때 혼자 중얼거렸어요. ‘와 저거 재밌겠다’고요.”

1985년 수원대 전산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산악부에 들어간 그는 인수봉에서 처음 암벽을 오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산에 푹 빠진 그는 1996년 몽블랑(4,807m), 1997년 가셔브롬2봉(8,035m) 등 해외 원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산악연맹 원정대 등반대장이었던 박영석은 오은선에게 히말라야 8,000m급 14개 거봉 레이스 참가를 권했다. 그는 유일한 여성 대원으로 박영석 원정대와 함께 다니며 브로드 피크(8,047m, 1999년), 마칼루(8,463m, 2000년), K2(8,611m, 2001년)를 정복했다.

“박영석 대장이 목표를 정하고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나도 뭔가 목표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고,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목표로 잡았죠. 처음엔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2002년 엘부르스 등반 비용도 제 돈으로 충당했어요. 그런데, 엘부르스를 오르고 나니 회사에서 전액을 지원해 주시겠다고 했어요. 너무 감사했죠. 그래도 7대륙 최고봉 등정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정도 걸릴 거라 봤어요.”

그런데 2년 반 만에 모든 대륙의 꼭대기에 올랐다. 2004년 한 해에 5개 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를 정도. 2004년 12월 19일 오후 5시 12분(한국 시각 20일 오후 5시 12분), 오은선은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매시프에 김영미(강릉대OB)와 함께 등정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정상에 섰을 때, 기온은 영하 40도에 육박했다. 오은선의 얼굴엔 성에가 가득 꼈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어요. 사실 목표를 세우고 나면 그 목표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할 때도 있었거든요. 같이 오른 후배가 ‘형 축하해요’라고 말해 주는데, 눈물이 났어요.”

남극에는 밤이 없다. 오은선은 남극 대륙에서 본 풍경을 잊지 못한다.

“남극은 조용히 살아 있는 곳 같아요. 들숨이 1,000년이고, 날숨이 1,000년인 것 같은 고요한 곳이에요. 산 위에 서서 온통 하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주 멀리서 점 두 개가 움직이는 게 보였어요. 그게 사람이었어요. 인간은 이렇게 하찮은 존재예요. 자연 앞에서 인간은 개미와 다름없어요.”

150㎝가 조금 넘는 작은 몸으로 오은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산들을 하나씩 꾹꾹 밟아 나가고 있다.
글 김경수 자유기고가│사진 정현미
  • 200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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