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에 빠진 남자

이계웅 (주)할리데이비슨코리아 사장

글 김태진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
서울 한남동 할리데이비슨코리아(이하 할리) 지하 1층, 서너 평 남짓한 이계웅 사장(46세) 방에 들어서면 ‘이 사람, 모터사이클에 단단히 빠져 있구나’ 하고 느낄 수밖에 없다. 벽면 한쪽은 그와 그의 아버지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찍은 사진, 또 한쪽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들이 할리를 타고 있는 사진들로 꽉 차 있다. 그의 방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창문 너머 “두둥두둥” 하는 할리 특유의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이 사장은 “누추하지만 이 방으로 할리를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재계 인사까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이계웅 사장은 외모나 옷차림이 범상치 않다. 단 한 번도 정장에 넥타이를 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들처럼 월급쟁이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니 그는 행운아다.

“103년 역사의 할리는 단순한 오토바이가 아닙니다. 미국 서부시대에 깃든 도전의 역사, 자유와 개성이 녹아 있는 문화상품이지요. 말발굽 소리를 재현하기 위한 특유의 엇박자 배기관 소리에서도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 한 대 가격은 1,000만 원에서 3,500만 원에 이른다. “돈 많은 부자들이나 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손을 저으며 말을 자른다.

“미국에서는 청바지를 입는 철강업체 근로자부터 재벌 2세까지 차별 없이 할리를 타고 호그(HOG곀恬?동호회)라는 동질감으로 서로 어울립니다. 한국에서도 할리를 타기 위해 적금을 붓는 샐러리맨들이 늘고 있습니다.”


모터사이클로 안데스 산맥 누벼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난 이계웅 사장에게 모터사이클은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6·25 직후인 1953년부터 모터사이클을 몰고 다닐 정도로 1세대 마니아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는 아버지 등에 매달려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엔진음을 들었다. 그가 모터사이클에 심취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남미 볼리비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주말이면 중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안데스 산맥의 티티카카 호수 일대를 누비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귀국한 그는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를 졸업, 1987년 (주)대우의 섬유사업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1996년, 그는 고민에 빠졌다.

‘얼마 안 있으면 내 나이도 마흔이 된다. 정말 좋아하는 일로 인생의 승부를 걸 수 없을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데다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타고 다니던 ‘모터사이클’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우의 신규사업으로 할리데이비슨을 수입하기로 했다. 회사로부터 허락을 받고 미국의 할리데이비슨 본사에 제안서를 보냈는데, 콧대 높은 그곳에선 상대도 하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수시로 미국 본사에 전화해 끈질기게 설득했다. 담당자는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 꿈이 담긴 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상황과 시장변화 등을 꼼꼼히 분석한 보고서를 계속 보내 ‘한국 시장에 진출할 것’을 끈덕지게 설득했다. 1997년 그의 끈질김에 감복했는지 미국 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후 협상은 일사천리였다.

이계웅 사장의 패션에는 나이가 없다. 어떤 날은 청바지, 또 어떤 날은 가죽재킷을 입고 나타난다.
1999년 4월, 대우 모터사이클 수입 사업부에서 할리데이비슨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진국처럼 우리나라 소비 패턴이 개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뀔 거라 예측했는데, 그게 맞아떨어졌다. 첫해 86대를 팔아 목표치 65대를 무난히 넘어섰다. 그해 말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자 그는 ‘할리데이비슨코리아’를 인수해 자신의 사업으로 만들었다.

이후 할리는 날개를 달았다. 연평균 판매 신장률 41%를 기록하면서 2005년에는 500대를 팔았다. 첫해 19억 원이었던 매출액도 꾸준히 늘어 올 매출액은 2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1991년형 할리 FXR과 FXR 커스텀, 그리고 2003년에 나온 100주년 기념 FLSTS 등 세 대의 모터사이클을 갖고 있다. 주말이면 동호회 회원들과 여기저기를 신나게 달리며 투어를 가는데, 국내 호그 회원만 해도 1,000명이 넘는다. 2004년 한국 수입모터사이클협회(KMIA) 회장이 된 그는 등기가 안 돼 보험이나 담보 설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의 불합리한 법규를 바꾸고 올바른 모터사이클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모터사이클에 대한 또 다른 꿈이 있다. 제대로 된 모터사이클 정비교육센터를 만들고 박물관을 세우는 일이다. ■
할리데이비슨은?

“다윗이 골리앗을 눌렀다.”
2005년 4월, 미국 밀워키의 할리데이비슨 본사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이날 뉴욕 주식시장에서 모토사이클 메이커인 할리데이비슨의 주식 시가총액이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GM(제너럴모터스)을 추월한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지난 4년간 매출이 70% 이상 증가했다.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 미국 밀워키에서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의 동업으로 출발했다. 현재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 아서 데이비슨의 손자다. 103년 역사에서 할리데이비슨이 가장 어려웠던 때는 혼다, 야마하 등 일본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 대거 진출한 1980년대였다. 1982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냈고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할리데이비슨을 살린 게 1983년 조직된 할리 동호회인 ‘할리오너스그룹’(HOG)이었다. ‘호그’ 회원은 현재 세계 130여 개국 100만 명에 달한다.
  • 200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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