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부모님 덕에 좋은 배우 됐어요”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 받은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

지난 1월 미국 LA에서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스타 가운데 한국인이라면 반가워 마지않을 두 얼굴이 있었다. ABC 방송국의 간판급 시리즈물인 〈로스트〉로 일약 세계적 배우 반열에 오른 김윤진과 같은 방송국의 〈그레이 아나토미〉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캐나다 출신의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였다.

이날 시상식에서 김윤진이 출연한 〈로스트〉는 TV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고, 샌드라 오는 TV 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샌드라 오는 지난해 <피플>지가 선정한 ‘아름다운 50인’에 줄리아 로버츠, 할리 베리, 제니퍼 로페즈, 브래드 피트 등과 나란히 올랐던 인물. 캐나다 출신의 대표적인 배우로 꼽히는 샌드라의 연기 인생은 열 살 때 우연히 출연한 학교 연극에서 시작됐다. 열다섯 살 때는 텔레비전으로 진출하면서 광고 모델이 됐고, 3년 후 국립 극장학교를 졸업할 때는 2,000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CBS가 제작한 영화 〈에블린 라우의 일기〉 오디션에 합격해 주연이 됐다.

마약에 찌들어 사는 매춘부 ‘라우’ 역으로 출연한 그는 이 작품으로 1994년 프랑스 칸 국제시청각 프로그램 축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년 후에는 CBS 드라마 〈더블 해피니스〉에서 중국계 캐나다인 역으로 열연, 캐나다의 오스카상으로 알려져 있는 ‘지니 어워드’의 최우수 여우상을 거머쥐었다.

일찍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배우로서 지름길을 걸어온 샌드라 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부모로부터 엄격한 동양식 교육을 받은 한국계’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9월 제이 레노가 진행하는 토크쇼 〈투나잇〉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희 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정말 엄격하셨어요. 어릴 때는 무려 5마일(8㎞ 정도)을 걸어 학교에 갔습니다. 겨울바람이 매서워 스키용 고글을 쓰고 다니곤 했죠. 그것만도 힘든데, 부모님은 교회학교 출석까지 점검하셨어요.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미국교회에 다녀온 후 잠깐 숙제하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한국교회의 한글학교에 가야 했어요. 너무 힘들어 가끔씩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빼먹은 적도 있어요.”

샌드라 오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오타와에서 1971년 7월 아버지 존 오(John Oh) 씨와 어머니 오영란 씨의 2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캐나다로 이민 온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처럼 샌드라 오의 부모도 아이들이 착실하게 공부해 전문직으로 성공하기를 바랐다. 부모의 바람대로 샌드라의 언니 그레이스는 현재 밴쿠버에서 연방 검사로 일하고 있고, 남동생 레이는 토론토대학에서 유전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연기자가 되기 위해 샌드라는 끊임없이 부모를 설득해야 했다.

미국의 연예 전문지 〈인터뷰〉와 〈인스타일〉 화보를 장식한 샌드라 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직후 캐나다 오타와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 오영란 씨는 남다른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연기자로 사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어요. 동양인이 성공하기란 어려워 보였거든요. 샌드라가 고등학교 졸업 후 몬트리올 국립 극장학교에 진학하자 백기를 들고 말았죠(웃음).”

시상식 무대에서 “내가 해냈다”며 “이 트로피를 캐나다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보내겠다”는 샌드라 오의 수상소감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샌드라의 부모님 집에는 아버지 존 오 씨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4권의 두꺼운 스크랩북이 있다. 지난 13년간 놓치지 않고 모아 온 딸 샌드라의 흔적이다. 샌드라가 배우로 주목받으면서 부모님의 생각도 바뀌었다고 한다.

흥분과 감동으로 요동치던 샌드라 오의 말은 마치 우리나라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듣는 스타들의 소감처럼 익숙하다. 감격의 순간, 자식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부모님을 떠올리는 건 신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미국 스타들과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1995년 캐나다의 ‘지니 어워드’ 시상식 때 그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미니 밴을 타고 갔다고 한다. 한 토크쇼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시상식에 참가하는 배우들 옷차림 아시죠? 화려한 의상에 리무진은 기본이죠. 근데 전 세차도 안 된 미니 밴에서 내렸다니까요. 상상해 보세요. 지저분한 미니 밴에서 다른 여배우들처럼 우아한 자태로 내릴 수가 있었겠는지”라고 말해 방청객을 웃겼다.

캐나다 TV와 영화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가 미국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긴 것은 1995년이다. HBO 코미디 연속극인 〈알리스〉에서 두뇌 회전이 빠르고 남성적인 리타 우로 분한 그는 ‘케이블 에이스 어워드’ 코미디 부문 최우수 여우상을 수상하며 미국에서 발판을 굳히기 시작했다. 〈알리스〉에 이어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2004년 전 남편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영화 〈사이드웨이〉다. 페인 감독에게 오스카 각본상의 영예를 안겨 준 〈사이드웨이〉에서 샌드라는 도발적인 매력을 분출하는 포도주 농장의 웨이트리스 스테파니로 열연했다.

샌드라 오에게 골든 글로브상을 안긴 미국 ABC방송 메디컬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샌드라 오를 2006년 골든 글로브 무대로 진출시킨 CBS 메디컬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미국인들은 남성적인 캐릭터의 샌드라를 발견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1등을 놓치고는 견디지 못하는 독설적인 인턴 크리스티나로 분했고, 에미상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샌드라 오의 경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화려하다. 〈더블 해피니스〉(1994)와 〈라스트 나이트〉(1998)로 두 차례에 걸쳐 ‘지니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고, 〈레드 바이올린〉(1998), 〈블루 이구아나에서 춤을〉(2000),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 〈빅 팻 라이어〉(2002), 〈투스카니의 태양〉(2003), 〈스리 니들스〉(2005), 〈케이크〉(2006)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거리 매춘부에서 수녀, 의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카멜레온같이 변신하는 배우로 입지를 다져 온 것이다.

그는 또 배우로서의 편식을 과감히 버리고 3류 시트콤에서 고급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TV 드라마에 출연해 대중적인 인기를 쌓아 나갔다. 영상물이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정통 연기에 대한 갈증은 뉴욕의 연극무대를 통해 풀었다. 인형 같은 마스크와 8등신 몸매를 자랑하는 할리우드 여배우들 속에서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의 샌드라 오가 빛나는 이유는 어느 저널리스트의 표현처럼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진짜 배우”이기 때문 아닐까. ■
  • 200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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