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인생| 아내와 술친구 되기는 불가능한가?

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사진 이창주

글쓴이 송복님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미국 워싱턴대 사회학과 교수,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한국상층연구》, 《열린사회와 보수》, 《자유민주주의》 등이 있다.
시내 와인바에서 부인과 건배하고 있는 필자.
예나 지금이나 나의 술버릇은 친구와 꼭 같이 마시는 것이고, 그리고 대개는 단골집에서 마시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새 술집을 잘 개발하지 못한다. 거의 언제나 마시던 그 집, 그 의자에 앉아서 마신다. 그리고 친구와 꼭 같이 마신다. 술과 담론은 같이 붙어 간다.

친구 없이 술을 마시는 것은 돛 없는 배, 아니 바람 없는 돛이랄까. 누군가의 시(詩)에 주봉지기음(酒逢知己飮)하고 시향회인음(詩向會人吟)이라 했다. 술은 마음 통하는 친구를 만나서 마시고, 시는 멋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읊조린다고 했던가.

술은 친구와의 즐거운 대화 속에서 익는다. 주(酒)와 색(色)은 같이 간다고 하지만, 실은 술맛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술에는 언제나 담론이 제격이다. 담소자약(談笑自若겦뺐?웃음과 편안함). 술의 묘미는 거기에 있고 술맛의 극치 또한 거기서 온다.

친구가 없을 때는 아내와 같이 술집으로 간다. 평생을 살다 보면 아내는 여자가 아니고 친구다.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니까 20년은 족히 되었다. 한번은 아내와 같이 학교에서 돌아오다 어떤 술집에 들렀다. ‘두레’라는, 여럿이 어울려서 서너 번 가 본 카페다. ‘두레’라는 이름이 좋아서 몇 사람이 지나다 “저기 가 보자” 해서 우연히 들른 것이 인연이 됐다. 주인은 지금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30이 조금 넘은 인상이 퍽 밝은 여자로 기억된다.

나는 그 술집 앞에서 아내에게 “지금부터 당신과 나는 부부가 아니고 동료선생이다. 당신은 하(河) 선생이고 나는 송(宋) 선생, 친구로서 마시는 거다”라고 했다. 아내도 좋다고 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맥주를 서너 병 시켰다. “하 선생”, “송 선생” 하며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주인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맥주를 두어 잔 마시고는 앞에 앉은 하 선생(아내)에게 “저는요, 송 선생님을 존경하고 위하고, 송 선생님은 저를 아끼고 사랑해요”라고 전혀 예기치 않은 말을 했다. 예기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맥주만 쑥쑥 들이켜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앉은 아내의 눈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인상이 찌푸려지면서 험상하기까지 했다. 두레 주인은 그런 하 선생에게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계세요?”라고 물었다. 나도 “하 선생, 뭐 안 좋은 일이 있소? 한잔 하시오” 하고 잔을 넘겼다. 그 순간 아내는 벌떡 일어나면서 “그만 갑시다”하고 먼저 걸어 나갔다. 나도 할 수 없이 남은 맥주를 그대로 둔 채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얼마요?”

“7,000원이오.”

나는 1만 원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은 채 나왔다. 문 밖에서 아내는 3,000원을 받아 오라고 나를 도로 떼밀어 넣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3,000원을 세어서 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내가 당한 것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뭐? 존경하고 사랑해? 아끼고 위해?”

아내는 밤새도록 나를 달달 볶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계속됐다. 으레 술집 여자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채신머리없이 놀아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라고 지금도 아내는 말한다.

나이도, 취미도, 직업도 같은 아내와는 집에서도 술친구다. 방학 때 함께 앉으면 몇날 며칠이고 붓장난을 같이 하는데, 글씨를 쓰는 동안에는 차를 마시지만 벼루의 먹이 마르면 함께 술을 마신다. 이때는 부드러운 술이 좋다. 포도주, 그것도 붉은 포도주가 제격이다. ■
  •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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