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門家의 자녀교육| ‘인맥 네트워크’ 교육을 중시한 퇴계 이황

글 최효찬 경향신문 기자
글쓴이 최효찬님은 경향신문 기자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비롯해 《메모의 기술2》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조선시대 명문가(名門家)들의 자녀교육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이다. 퇴계 이황을 비롯해 다산 정약용, 서애 류성룡 등 역사상 위대한 인물일수록 자녀교육에도 헌신적이었다. 퇴계는 300여 명이 넘는 수제자를 길러 내고 140번이 넘게 공직의 부름을 받았던 대학자이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자녀뿐 아니라 친인척의 자제들까지 학문에 힘쓰고 있는지 꼼꼼하게 챙겼다. 위대한 인물은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했을 것으로 짐작하기 쉬운데, 퇴계는 우리의 선입관을 여지없이 날려 버린다.

퇴계의 후손들에 대한 교육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조카와 조카사위, 종손자, 생질, 종질과 누나의 사위, 형제의 외손자, 질녀의 외손자까지 모두 와서 배웠다. 퇴계가 처음 가르친 제자는 당시 여섯 살 난 처이종사촌인 과재 장수희라고 한다.

퇴계에게 직접 배운 이황 가문의 사람들 중에서 행적이 뚜렷한 사람만을 가려 뽑더라도 몽재 이안도, 동앙 이영도, 기암 이완, 만랑 이녕, 문곡 이문규, 만취헌 이빙, 동강 이희정, 송간 이정회, 학천 이봉춘, 낙금헌 이정백, 송계 이형남, 원암 이교, 지간 이종도, 우암 이열도, 영모당 이선도 등 20여 명에 이른다. 나중에는 문중의 청소년이 모두 몰려와서 배웠다고 한다.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지만 먼저 일가의 큰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다했던 것이다.

그가 절에서 공부하는 맏형의 외손자 민응기에게 음식을 싸 보내며 시간을 아껴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한 다음과 같은 편지도 남아 있다.

‘시원한 밤 책 읽기 좋을 때다. 시간을 아껴라. 좋은 계절에 고요한 절에서 힘써 공부 해 주기 바란다. 술 한 병, 닭 한 마리, 생선 한 마리, 고기 한 덩어리를 보낸다.’

과연 요즘에도 큰형의 외손자까지 챙기는 자상한 할아버지가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인맥은 성공의 가장 큰 밑천이다. 요즘 성공신화를 여는 데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덕목이 바로 ‘인맥 네트워크’다. 그러나 폭넓은 인맥을 쌓으려면 자기만을 내세워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인성(人性)과 지혜를 겸비할 때 가능하다. 즉 인맥은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덕목으로, 요즘 말로 하면 서로 ‘윈-윈’(win-win)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450여 년 전 조선 최고의 대학자 퇴계 이황 역시 이를 인식하고 ‘인맥 네트워크’ 교육을 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퇴계는 아들과 손자 등 후손들이나 제자들에게 인맥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려 애썼다. 굳이 당대의 대학자인 퇴계가 그런 일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과 손자, 제자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특히 학문이 깊고 똑똑한 제자가 있으면 아들과 손자, 다른 제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함께 공부하게 했다. 아무에게나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학문을 닦으려는 자’에 한해서였다. 뜻을 같이하는 친구끼리 함께 공부하면 능률이 오른다며 절에서의 ‘그룹 스터디’를 적극 권하기도 했다.

도산서원. 퇴계 이황의 학덕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지은 서원이다.
퇴계의 인맥 네트워크는 그 이후 영남학파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파를 형성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인맥 네트워크를 통해 퇴계 사후에 그 제자들이 다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의 퇴계 학맥도에는 사제관계에 있는 이들이 무려 700여 명에 이른다. 또 이런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손끼리 혼사가 이루어져 퇴계학의 인맥 네트워크는 거대한 ‘혼맥(婚脈)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학문을 통해 형성된 인맥 네트워크가 인간관계를 거치면서 혼맥 네트워크와 결합했던 것이다. 이는 가장 끈끈하고도 강력한 명가의 네트워크가 되어 조선시대의 상류층 문화를 주도했다.

명문가들이 통혼하는 이유는 서로 집안의 품격이 비슷하거나 잘 아는 사이여서 결혼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거의 없다는 점에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했고, 또 빈번한 정파싸움으로 인한 정치적 이유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퇴계의 자녀 교육법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점은 그 자신 성현의 책에서 배운 바를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면서 먼저 모범을 보여 준 데 있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보고 배우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계는 솔선수범을 통해 자녀들과 제자들을 가르치는 생활교육을 실천했던 것이다.

퇴계는 겸손한 손님맞이로 제자들까지도 놀라게 했다. 귀한 사람은 잘 대접하고 미천한 사람이라고 해서 차별 대접하지 않았다. 제자들에게도 항상 높임말을 썼다. 아들뻘인 26세 연하의 기대승과 서신을 통해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 논쟁을 벌인 것은 유명하다. 퇴계는 대학자였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똑같이 예를 갖추고 대했던 것이다. 이렇게 겸손하면서도 정성을 다한 대응으로 항상 퇴계의 사랑방에는 제자나 손님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퇴계는 “친구에게 돈은 빌려 주더라도 빚보증은 절대 서지 말라”는 현실적인 교육을 하기도 했다. 친구가 먼 길을 와서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면 그 허실을 가리어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이되, 빚보증까지는 절대 서지 말라고 훈계를 내렸다. 퇴계의 헌신적인 자녀교육을 대하면서 요즘 아버지들의 “바쁘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얼마나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 200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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