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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철권 최강자 무릎 배재민

‘철권’이라는 게임이 있다. 대전(對戰) 액션 게임의 대명사다. 일본 게임 제작사 반다이 남코가 1994년 철권 1을 발매했다. 현재는 철권 7까지 나왔다. 화려한 그래픽과 다양한 캐릭터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다. 세계 1위는 한국인이다. 종주국 일본의 초고수들을 제압한 것도 놀랄 일인데 더 대단한 게 있다. 17년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전성기 때 포스를 그대로 구현한다. ‘무릎(Knee)’이란 아이디로 더 유명한 배재민의 이야기다.
TEKKEN™7 & © BANDAI NAMCO Entertainment Inc.
85년생인 배재민이 철권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그는 그 시기를 90년대 후반으로 기억하고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사이에 오락실이 많았는데 어린 마음에 꼭 들르곤 했습니다. 많은 게임이 있었고, 그중 철권에 크게 끌렸죠.”

그는 고향인 경산 오락실을 평정한 후 대구로 진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산에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에서 놀러 온 철권 유저에게 제가 30연패를 당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작았구나’라고 생각하고 대구로 갔죠.”

대구에서도 최강자 자리에 오른 배재민은 부산, 서울을 거쳐 2004년 11월 게임위크배 철권 5 최강자전에 참가했다. 그가 출전한 첫 대회였다. 당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우승자나 고수로 일컬어지던 유저들이 아닌 배재민이었다.

“추천을 받아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어요. 그때 잘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그래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철권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심리전의 달인

2019년 제11회 e스포츠월드챔피언십 철권 7 우승을 차지한 배재민(가운데). © 배재민 인스타그램
2004년 메가엔터프라이즈 전국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배재민은 이후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철권의 대명사로 성장했다. 2010년에는 ‘게임올림픽’이라 불리는 WCG(World Cyber Game)에서 금메달을 땄다. 당시 상대는 종주국 일본의 아베 아키히로였는데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배재민은 그때를 프로게이머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당시만 해도 WCG라는 대회는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같은 메이저 게임을 취급하는 국제 공인 게임대회였어요. 그런데 철권이 종목으로 들어가고 제가 국가대표로 선발됐죠. 살면서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게임을 했는데 기분이 남다르더군요. 시상식 때 올림픽처럼 단상 위에 올라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아, 철권 하길 잘했다. 내가 이런 걸 느끼기 위해 그동안 게임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행복했죠.”

격투, 대전 게임은 피지컬이 중요하다. 20세 중반부터 기량이 저하되는 게이머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배재민은 만 36세. 게이머 나이로는 이미 환갑을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최고다. 압도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배재민의 이야기다.

“솔직히 반응속도는 옛날보다 떨어집니다. 하지만 철권 고수들은 나이가 많은 편이죠. 철권에서는 반응속도 같은 피지컬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심리전이죠. 철권을 오래 한 고수들은 상대를 분석하는 게 굉장히 빠릅니다. 상대의 스타일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맞춤으로 대응하죠.”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는 배재민의 롱런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배재민의 플레이 스타일은 쉽게 말해 ‘스타일이 없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합니다. 그는 철권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전 캐릭터를 다채롭게 소화해낼 수 있죠. 다양한 캐릭터를 넓고 깊게 소화하기 때문에 능수능란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51개 캐릭터 실력 모두 천상계

올해 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면서 배재민은 일반인들에게도 회자됐다. © 배재민 인스타그램
철권에는 총 51개의 캐릭터가 존재한다. 이 캐릭터의 모든 개별 공격 기술을 프레임 단위까지 외워가며 플레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배재민은 존재하는 모든 캐릭터로 ‘테켄 갓 오메가’ 계급을 달성했다. 세계 최초 기록이다. 모든 캐릭터로 세계 1위를 했다고 보면 된다.

배재민이 불가사의한 기록을 달성한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승부욕도 한몫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철권 세계대회에서 참가자들을 경악케 하는 선수가 나타났는데, 국적이 파키스탄이었다. 배재민은 파키스탄으로 게임 수련을 가야겠다고 했고, 팬들은 농담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2019년 파키스탄으로 날아갔고, 그곳 은둔 고수들과 일합을 겨뤘다. 배재민은 연승 경기에서 70%라는 엄청난 승률을 기록해 세계 팬들을 놀라게 했다.

파키스탄 원정 후 그는 “오래전부터 파키스탄에서 연습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다녀오게 됐다. 파키스탄의 여러 고수와 대결하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어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는 많은 분들의 환대에 감사드린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파키스탄에 또 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프로파키스타니》 《브레이킹뉴스》 등 파키스탄 일부 언론사는 배재민의 방문을 속보로 보도했고, 현지 철권 유저들은 그를 위한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줬다. 철권 팬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배재민의 이름과 아이디가 일반인에게까지 회자된 계기가 있었다. 올해 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배재민은 자신의 아이디가 무릎인 이유, 지금까지 벌어들인 상금 등에 대해 밝혔다.

“제 주 캐릭터가 무릎 기술이 많아서 닉네임을 무릎이라고 정했습니다. 외국에서는 니(knee)라고 부르죠.”

유재석이 “개발자들도 모르는 기술을 만드는 것도 되냐”고 묻자, “제가 ‘도발제트어퍼’로 유명해졌다. 개발자들도 모르는 기술이었다”고 답했다.

배재민은 “65회 우승을 다 합쳐 상금이 2억 원 정도였다”면서 “게임 시장이 크지 않다. 지금까지 얇고 길게 왔다”고 덧붙였다. 실제 철권은 주류 게임보다는 마니아층 위주의 게임이라는 평이다. 그의 설명이다.

“지금까지도 철권은 메이저 게임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방송 노출이 어렵기도 하고, 고정 팬을 제외하면 신규 유저와 팬들의 유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런데도 한일전을 하면 2만 명 가까이 봐주십니다. 더 늘려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전설의 고수 장익수와 붙으면?

여전히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배재민은 ‘holyknee’라는 BJ로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무릎의 철권TV TekkenKnee〉도 운영 중이다. 구독자가 20만 명이 넘는다.

배재민이 데뷔하기 전 철권계를 주름잡던 전설의 고수, 장익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전성기 시절 누구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철권계에서는 전성기 시절의 장익수와 배재민이 붙으면 누가 이길지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배재민의 유튜브에 출연한 철권 초창기 시절 초고수 이준오 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즘도 장익수 vs 무릎 누가 이길까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이소룡과 타이슨이 붙으면 누가 이기느냐 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결과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노력으로는 비교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년 한 사람과 20년 한 사람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철권 게이머의 전성기는 길어야 3~4년입니다. 그런데 무릎님은 지금까지도 게임을 하고 있고, 정상에 있죠. 정말 대단한 겁니다.”

배재민 유튜브 채널의 한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는 페이커, 스타크래프트는 이영호, 철권은 무릎.”
  •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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