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마라도나와 한국과의 다섯 개 연결고리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세상과 작별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한 줄기 ‘빛’이었다. 165cm의 단신임에도 누구도 감히 따를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투쟁력, 신비로운 드리블, 폭발적인 질주로 경기를 지배하는 그에게 아르헨티나는 열광했다. ‘마라도나교’라는 종교까지 있으니 말 다 했다. 세례는 축구장에서 이뤄지고, 손으로 골을 넣는 동작을 취하면 신자가 된다. 신(神)은 영원불멸할 것이라 믿었지만 마라도나는 한 달 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를 논할 때 늘 첫손가락에 꼽히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1986년 6월 29일 멕시코월드컵 서독과의 결승(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3 대 2로 승리한 후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 ⓒ 조선DB
1930년대 아르헨티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 프랑스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이었다. 서울에서 땅 아래로 지구핵을 거치는 대척점에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한때 아르헨티나가 얼마나 잘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영광. 안타깝게도 아르헨티나는 수십 년째 파산 위기를 겪고 있다. 1958년에 이미 빚을 갚지 못해 IMF로부터 1억 달러(약 1100억 원)를 구제금융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무려 22회에 걸쳐 IMF 신세를 졌다. 부도를 선언한 것도 8회나 된다.

가난에 찌든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마라도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열기가 여전하다. 마라도나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의 얼굴이나 등번호였던 숫자 ‘10’을 문신으로 새기는 게 유행일 정도다.

마라도나에 관한 이야기는 책 몇 권 분량으로도 모자라다. 워낙 유명인사라 알려진 이야기도 상당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마라도나와 한국과의 연결고리에 중점을 두려 한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신’으로 떠받들어온 마라도나와 우리나라 사이에 악연(惡緣)일지, 인연(因緣)일지 아리송한 다섯 개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1. 태권 축구, 인연의 시작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한국의 허정무와 부딪히며 괴로워하는 모습. 외국 언론은 ‘태권 축구’라며 비난했지만, 당시 허정무는 이 수비로 옐로카드를 받지는 않았다. ⓒ 조선DB
첫 번째 연결고리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랐던 한국은 하필이면 아르헨티나와 A조에 속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는 당시 26세의 마라도나가 있었다. 축구선수로서 전성기에 들어선 그의 플레이는 상대 팀에 공포 그 자체였다.

결과는 1 대 3 패배. 세 골 모두 아르헨티나의 주장으로 출전한 마라도나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프리킥 상황에서 어시스트 2개, 페널티 지역에서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했다. 한국은 0 대 3으로 뒤지던 후반 28분, 박창선의 중거리 슛으로 월드컵 첫 골이라는 역사를 썼다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졌다는 사실보다는 허정무(현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의 ‘마라도나 걷어차기’가 더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허정무는 수비 도중 공을 걷어내려다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가격하는 바람에 “태권 축구를 했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허 이사장은 ‘태권 사커’ 논란에 대해 “억울한 이야기”라고 했다.

“사실 마라도나 무릎 옆에 공이 있었어요. 사진에서 잘린 거죠. 공을 차려던 건데, 고의적인 파울처럼 비쳐서. 당시에 심판이 경고도 안 줬다니까요.”

그는 마라도나가 세상을 떠나자 “내가 반딧불이라면 마라도나는 태양처럼 빛나는 선수였다”고 존경을 표했다.

“꺾어보고 싶었던 상대이면서 존경했던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슬프네요. 마라도나는 천재성을 지닌 슈퍼스타였습니다.”

당시 86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우승했는데, 다들 알다시피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 ‘신의 손’ 사건이 있었다. 마라도나는 50여 미터를 단독 드리블해서 다섯 명의 잉글랜드 선수를 제치고 골키퍼 피터 쉴턴과 경합 중 손으로 공을 쳐 골인시켰다. 이를 못 본 주심은 그대로 골을 인정했다.

마라도나는 손발로 포틀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울분을 풀어준 셈이다. 훗날 마라도나는 “신의 손에 맞았다”고 했다.


2. 1995년 9월, 잠실 친선전

두 번째 연결고리는 1995년 9월 친선전이다. 마라도나는 당시 한국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가 속했던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 기념으로 초청을 받아 한국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방한 중이던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과 함께 잠실에서 시축을 하고 관전했다. 이 경기는 1994년 미국월드컵 도중 금지약물 복용 양성 반응을 보여 15개월 자격 정지를 받았던 마라도나의 복귀전이기도 했다. 그는 득점하지는 못했지만, 종료 3분 전 물러날 때까지 특유의 개인기와 넓은 시야를 선보였다. 경기는 보카 주니어스가 2 대 1로 승리했다.


3. 감독으로 맞붙은 마라도나와 허정무

세 번째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공교롭게도 또 허정무 이사장이 등장한다. 당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허 이사장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맞붙었다. 마라도나가 “멕시코월드컵 때 한국은 격투기를 했다”고 비꼬자, 허 감독은 “24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은 것 같다”며 맞받았다.

B조에서 1승씩 거둔 상태에서 만난 두 팀의 대결에선 아르헨티나가 4 대 1로 이겼다. 한국은 이청용의 득점으로 전반까지 1 대 1로 맞서다 후반에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디에고 마라도나의 선수 시절 유니폼을 드러내며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왼쪽).
마라도나는 1993년 아르헨티나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뛰었고(오른쪽), 메시는 이 클럽 유소년팀에서 꿈을 키웠다. ⓒ 리오넬 메시 SNS
4. 2017년 20세 이하 월드컵의 반전

네 번째는 20세 이하 월드컵 조 추첨이다. 2017년 3월 마라도나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월드컵 조 추첨을 하러 다시 한국을 찾았다. 마라도나는 조 추첨 행사에서 아르헨티나를 한국이 속한 A조로 뽑으며 웃었다. 자신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이겼던 한국을 쉬운 상대로 여겼을 것이다. 정작 한국은 이승우와 백승호의 골로 아르헨티나를 2 대 1로 이겼다. 한국은 16강에 오른 반면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조 추첨 전날 마라도나는 수원 화성행궁 앞에서 열린 5 대 5 풋살 게임에 참가했는데, 불룩한 뱃살을 흔들며 즐겁게 뛰어다녔다. 22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배는 나왔지만 나이를 잊은 듯 번개 같은 드리블과 터닝 발리슛을 선보였고, 몸싸움 도중 반칙을 유도하는 오버액션으로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이날 마라도나는 허정무 이사장과 재회하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조선일보》 기자가 보여준 태권 사커 사진을 보자마자 “와우”라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기억나지. 나는 부상당한 순간을 모두 생생히 기억한다. 이 장면도 사진을 보자마자 바로 기억이 났다.”


5. ‘찢어진 눈’ 행위 논란

마지막 다섯 번째 연결고리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다. 당시 마라도나는 한국 팬을 향한 인종 차별 제스처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한국 축구팬이 마라도나를 향해 환호를 보냈는데 그는 화답하고는 뒤돌아서 두 눈을 옆으로 찢는 모습을 보였다. 이른바 ‘찢어진 눈(chinky eyes)’ 행위는 눈이 작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인종 차별적 행위로 알려져 있다. 해당 내용을 가장 처음 알린 BBC 재키 오틀리 기자의 설명이다.

“마라도나는 2018년 6월 16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D조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의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몇몇 한국인 팬들은 ‘디에고’라고 외쳤습니다. 마라도나는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손을 눈 옆에 가져다 대고 양쪽으로 당겼습니다. 명백한 인종 차별 행동이었습니다.”

마라도나는 바로 다음 날인 17일 자신의 SNS에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3개 국어로 해명 글을 올렸다. 그는 “월드컵에서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뉴스거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며 “수많은 팬 중에서 멀리서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촬영하는 아시아 소년에게 놀랐다. 심지어 아시아인들이 우리를 응원해주는 게 내게 얼마나 근사하게 보였는지 말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부터 각종 기행으로 ‘악동’으로 불리고 사생활 논란도 많았으나 축구 실력만큼은 전설로 인정받은 마라도나. 프랑스 축구 영웅 미셸 플라티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 2021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