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

다큐 〈더 라스트 댄스〉로 부활한 전설

미국이 난리다. 마이클 조던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때문이다.
10회 분량으로 제작된 이 다큐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제작사 ESPN이 집계한 결과 1부는 610만 명, 2부는 580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봤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포스터. © NETFLIX
마이클 조던. ‘농구의 신’이라는 말 외엔 딱히 떠오르는 수식어가 없다. 조던의 등장 전 미국 프로농구(NBA)를 주름잡았던 보스턴 셀틱스의 레전드, 래리 버드가 “신(神)이 조던으로 분장을 한 채 내려왔다”고 극찬했으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소속팀 시카고 불스의 챔프전 3연패를 이끈 조던은 아버지의 총격 사망 충격으로 잠시 야구로 외도했다. 농구 코트로 돌아온 이후 그는 다시 3연패를 이끌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는 그가 모두 독식했다. 한 번 오르기도 어렵다는 득점왕 자리에 열 번이나 이름을 올렸고, 정규 시즌 MVP에도 다섯 번이나 뽑혔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도 땄다.

그런데 ‘킹’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가 이 지루하던 ‘포스트 조던’ 논쟁을 끝내고, 조던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여주면서 조던이 ‘GOAT(Greatest of all time,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란 평가에도 이견이 생겼다. 현역 NBA 스타 대부분이 조던의 전성기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태어났어도 너무 어린 나이였다는 점도 한몫했다. 르브론 제임스도 조던이 프로에 입문했던 1984년에 태어났다.


‘에어 조던’ 신는 아이들을 위해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크 톨린은 조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어떤 선수였는지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조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유다. 그간 많은 프로듀서가 조던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조던의 반응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조던의 오랜 사업 동반자인 커티스 폴크 샬럿 호네츠 부사장의 이야기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러닝 타임은 80분 정도죠. 과연 그걸로 마이클과 불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요?”

톨린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조던의 다큐멘터리를 애초에 8부작으로 기획한 것이다. 힘들게 조던과 마주 앉게 된 톨린은 8부작 시놉시스가 포함된 제안서를 내밀었다.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이클, 내 사무실에 오는 아이들은 매일 당신의 신발을 신지만 그들은 ‘GOAT’인 당신의 플레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도 볼 자격이 있습니다.”


진짜 GOAT는 조던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 시절 마이클 조던과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스카티 피펜(왼쪽). © NETFLIX
ESPN은 〈더 라스트 댄스〉가 2004년 이후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스포츠 중계 전체를 따져도 2020년 NCAA 대학풋볼챔피언십 이후 시청률이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여파로 농구에 굶주린 많은 팬들에겐 이 프로그램이 더할 나위 없이 큰 위안이 된 셈이다. 당초 6월 방영 예정이었지만, 스포츠에 목마른 팬들을 위해 4월로 일정을 앞당겼다. ESPN은 총 10회, 회당 60분 분량으로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제목 ‘더 라스트 댄스’는 시카고 불스 시절 당시 감독이었던 명장 필 잭슨이 제안했다. 97~98시즌 후 본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코치진과 조던, 스카티 피펜 등 주력 선수들의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었음을 감안한 제목이다. 필 잭슨은 불스 감독으로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Last Dance’라고 쓰인 팀 다이어리를 나눠줬다.

〈더 라스트 댄스〉는 조던의 GOAT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조던을 몰랐던 현역 NBA 스타들이 조던의 플레이에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 릴라드는 “조던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며 찬사를 보냈고, 리그 최고의 슈터 케빈 듀란트는 “조던은 지금 시대에도 가장 뛰어난 선수일 것”이라고 했다. 토비아스 해리스는 “자가격리 기간 중 최고의 두 시간이었다”고 감상을 남겼다.


농구 황제가 되기까지, 지독한 승부욕

마이클 조던은 '농구의 신'이라는 말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수식어가 없다.
조던은 시카고 불스팀에 들어가 13년 동안 여섯 번의 NBA 정규리그 우승을 일구고, 득점왕 자리에도 열 번이나 올랐다.
사진은 조던이 1995년 5월 NBA 동부콘퍼런스 준결승 6차전 홈경기에서 올랜도 매직을 상대로 호쾌한 덩크슛을 시도하는 모습. © 조선DB
조던이 처음부터 농구 황제로 불린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그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키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해서 야구를 시작했지만, 무엇이든 금방 싫증 내는 성격 탓에 곧 그만뒀다. 어느 날 조던은 한 살 위 형인 래리 조던과 1대1 농구 시합을 하게 됐다. 당시 학교 농구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던 형을 농구 초보인 조던이 이길 리 없었다. 그 뒤로도 조던은 1대1 승부에서 번번이 지고 말았다. 승부욕이 발동한 그는 농구부에 들어가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몇 달 뒤에도 조던은 형을 이기지 못했고, 학교 대표팀 선발에서도 탈락했다. 의기소침해진 조던은 패배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또래 친구들보다도 작은 키 때문에 형과의 승부에서 지고, 대표팀에도 선발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조던은 농구를 계속할지 고민에 빠졌다. 키는 마음먹은 대로 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던이 농구를 포기하려던 순간, 아버지가 말했다.

“시도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는 조던에게 타고난 신체 조건이 불리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던은 그때부터 작은 키를 보완하고자 다른 선수보다 더 높이 점프하는 연습을 했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조던은 형의 키를 뛰어넘어 198cm까지 자랐고, 향상된 농구 실력으로 당당히 학교 대표팀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농구 황제의 길을 걷게 됐다.
  •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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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라떼   ( 2020-06-05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라떼 실전으로 보았는데 굳이 다큐로 또 볼 필요는 없지.
  머피   ( 2020-06-05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나는 키라는 게 절대적 조건인 농구라는 게임을 정말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그런데 옜날 우연히 마이클 조던의 경기를 보고 빠져들었다. 농구를 하는게 아니라 그냥 예술하는 거였다. 시카고 경기는 열심히 봣엇다. 그 이후로는 또 다시 농구 절대 안본다. 그게 무슨 스포츠냐.
  농구의 신   ( 2020-06-04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NBA 농구가 가장 인기있던 시절은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서 활약하던 98년까지 일듯.. 물론 그 이후에도 어느 정도 인기는 있지만, 그당시와 비교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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