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 독사 정신)로 기억될 전설

화려한 기량과 뜨거운 열정으로 전 세계 농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코비 브라이언트. © 조선DB
마지막까지 농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2003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팬들의 허전함을 채워준 그는 2020년 1월 26일 오전 자신의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북서쪽에 있는 칼라바사스시로 가던 중이었다. 그곳엔 그가 운영하는 맘바 스포츠아카데미(사우전드 오크스)가 있었다. 코비는 네 딸 중 자신의 농구 감각을 똑 닮은 둘째 딸 지아나 마리아-오노어 브라이언트(지아나)가 속한 농구팀을 가르칠 예정이었다. 그날 따라 안개가 짙었고, 헬기는 평소보다 낮게 날았다. 낮은 고도로 선회 비행을 하면서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지만 결국 산비탈 지역에 추락하고 말았다. 탑승자 아홉 명 모두 사망했다.

‘블랙 맘바(Black Mamba, 검은 독사)’로 불렸던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아나의 이야기다. 갑작스런 비보(悲報)에 스포츠인과 전·현직 대통령들의 애도가 잇따랐다.

마이클 조던은 “나는 코비를 사랑했다. 그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면서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가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와 세 번이나 우승을 합작했던 샤킬 오닐은 “비극적인 사고로 친구와 조카를 잃었다는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애통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이언트는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중 한 명이며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려 했다. 그는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고, 미래에 대한 강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유족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는 “코비는 세계와 미 전역의 농구 팬들에게 기쁨과 흥분을 가져다줬다”면서 “매우 짧은 시간에 매우 큰 삶을 살다 갔다”고 애도를 표했다.


‘666 프로젝트’

1998년 8월 23일 아디다스 초청으로 내한한 코비 브라이언트가 리츠칼튼호텔 기자회견장에서 아버지 조 브라이언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은 것이 눈에 띈다. © 조선DB
NBA 코트에서 브라이언트가 이룬 업적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파이널 우승 5회, 파이널 MVP 2회, 시즌 MVP 1회, 올스타 18회, 올스타전 MVP 4회, ALL-NBA 팀 15회, All-Defensive 팀 12회 선정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화려하다.

그가 자신의 우상인 마이클 조던과 겨룰 만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한 노력과 집념 때문이다. 혹자는 그를 ‘천재’라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노력’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브라이언트는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했다. 1시간 30분 조깅을 한 뒤 5시 30분부터 1500개의 슛을 성공할 때까지 연습했다. 여기까진 몸풀기. 이후 팀 훈련을 시작하고 끝나면 본격적으로 개인 훈련을 했다. 그는 생전 자신의 생활패턴을 ‘666 프로젝트’라고 했다. 하루 여섯 시간 중 두 시간은 러닝, 두 시간은 농구, 한 시간은 복싱과 줄넘기, 한 시간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투자한다는 뜻이었다.


승부욕의 화신


브라이언트가 지독한 연습벌레가 된 것은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의 자존심과 경쟁심은 누구도 따라오길 힘들 정도였다. 그의 측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8년 미국 대표팀 캠프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로비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무릎에 아이스팩을 댄 코비가 땀에 흠뻑 젖은 채 트레이너들과 함께 들어왔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새벽에 개인 훈련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때가 오전 8시였습니다. ‘이 사람은 지구에서 온 게 맞을까?’라고 혼자 생각했죠.”
- 크리스 보쉬, 2008년 미국 농구대표팀 동료

“밤 11시에 코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체육관에서 훈련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묻더군요. 알았다고 하고, 체육관으로 갔습니다. 그때가 5시 20분이었죠. 그런데 도착해보니 코비가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은 채 내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언제 왔느냐고 물어보니 4시 45분에 왔다고 하더군요. 코비 브라이언트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 로니 투리아프, 현 NBA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센터

“코비는 승부욕이 너무 과해 종종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곤 했습니다. 하지만 코비를 싫어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의 내면에 얼마나 대단한 열정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일 겁니다.”
-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대가로 1990년대 시카고 왕조와 2000년대 레이커스 왕조의 성공에 기여했던 텍스 윈터 전 코치

“마이클 조던의 모든 것을 롤 모델로 삼았던 선수가 코비 브라이언트였습니다. 그런데 훈련을 대하는 태도와 독기만큼은 오히려 코비가 조던보다 더 대단했죠. 이 말을 들으면 조던이 저한테 뭐라고 할 것 같긴 합니다만 진짜로 그랬습니다.”
- 조던과 브라이언트를 모두 지도한 필 잭슨 전 감독


바꾼 등번호 24번의 의미


브라이언트는 전성기에도 웬만한 부상은 참으면서 경기에 출전했다. 2008~2009시즌 오른쪽 새끼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안고도 경기를 계속 뛰며 레이커스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올림픽 출전도 감행했고, 미국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2009~2010시즌에도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다쳤지만, 그는 수술대가 아닌 농구 코트를 택했다. 당시 브라이언트는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이를 참고 남은 일정을 소화해냈다. 그는 2006~2007시즌을 앞두고 NBA 데뷔 때 달았던 8번 대신 24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 “하루 24시간, 공격제한시간 24초, 매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브라이언트의 별명은 블랙 맘바였다. 공중에서 상대를 속일 때 마치 ‘뱀이 몸을 뒤트는 것 같다’는 뜻에서 붙었다. 그도 팬들에게 이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브라이언트의 강인한 정신력을 가리키는 말인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는 어느 순간부터 지독한 승부욕과 열정을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돼 있었다. 2016년 은퇴할 때 브라이언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코트를) 떠나도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양말을 신고 방구석 쓰레기통을 향해 공을 던지는 다섯 살 어린아이야.”

브라이언트는 천상(天上)의 코트에서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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