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훔친 영화人 〈2〉

브래드 피트 - 〈흐르는 강물처럼〉 〈가을의 전설〉 〈세븐〉 〈12 몽키즈〉

숨 멎는 눈빛의 전설

페미니즘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영화 가운데 〈델마와 루이스〉(1991)가 있다.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든)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함께 컨버터블 승용차를 타고 휴가를 떠난다. 하지만 이들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신들을 강간하려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면서 순식간에 도주범 신세가 되어버린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들은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억압적이고 굴욕적인 삶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한 이들이 벼랑으로 차를 내모는 클로즈업 장면은 ‘여성의 사회적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이 영화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필자에게 강하게 남은 캐릭터가 더 있다. 여주인공들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매력적인 카우보이 제이디다.

식스팩 상반신을 드러낸 채 음탕하게 허리를 돌려대던 그 꽃미남 배우는 이 영화를 계기로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눈에 들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30년째 톱스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바로 브래드 피트(Brad Pitt, 1963~) 얘기다.


브래드 피트는 미주리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다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할리우드로 건너가 연기를 공부했다. 〈델마와 루이스〉로 일약 영화계의 ‘섹스 심벌’로 자리 잡은 그는 이듬해부터 〈흐르는 강물처럼〉(1992)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가을의 전설〉(1994) 〈세븐〉(1995) 같은 영화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주역을 꿰차면서 연기 폭도 넓혀갔다. 서기 2035년 미래와 1990년대를 오가며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을 다룬 SF 스릴러 〈12 몽키즈〉(1995)로 제68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진가는 대부분 상업영화에서 발휘됐다. 〈파이트 클럽〉(1999) 〈오션스 일레븐〉(2001) 〈트로이〉(2004)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등의 영화들이다.


배우 인생의 정점 〈머니볼〉


유명세에 비해 상복이 별로 없던 브래드 피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 〈머니볼〉(2011)에서 드디어 한을 푼다. 제84회 미국 아카데미, 제65회 영국 아카데미, 제18회 미국배우조합상, 제69회 골든글로브 등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제46회 전미비평가협회상과 제76회 뉴욕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머니볼〉은 19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창단된 미 프로야구 MLB 소속 팀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Oakland Athletics)를 중심으로 흐른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는다는 경제학적 원칙을 야구단에 적용해 스타 선수나 타율, 홈런 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저비용·고효율 구조로도 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과정을 담은 영화 〈머니볼〉에서 브래드 피트는 배우 인생에서 정점을 찍는다. 경기 데이터에만 의존해 사생활 문란, 잦은 부상, 고령 등의 이유로 다른 구단에서 외면받던 선수들을 팀에 합류시키고, 시즌 초반 7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한 기록으로 야구계 전체와 미디어로부터 ‘미친 짓’이라며 몰매맞는 구단주 역할을 과장된 몸짓 없이 차분하게 연기한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그가 출연한 영화를 거의 대부분 보아온 필자로서는 배우 브래드 피트 연기의 본령은 〈킬링 소프틀리〉(2012)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고 본다. 범죄조직이 고용한 전문 킬러 잭키 코건 역을 맡은 그는 올백으로 빗어 넘긴, 유분 넘치는 무스 칠을 한 헤어스타일과 검은 가죽점퍼, 검은 반팔 셔츠 등 러닝 타임 100분 내내 블랙 옷만 걸치고 소화함으로써 믿는 것은 오직 자신과 돈뿐인 잔혹한 킬러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스크린에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능청스러움을 보고 싶다면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브래드 피트의 필모그래피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2009)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일관된 ‘핏물 흐르는’ 영상과 특유의 ‘뜬금없는’ B급 유머 코드를 견뎌낼 자신만 있다면 이 영화야말로 그만의 매력을 유감없이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미련 없이 즐거워했던, 브래드 피트가 가장 잘 소화해내는 연기, ‘능청’과 ‘천역덕스러움’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이 무차별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하던 2차 세계대전. 나치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태에 분개한 유대인 출신의 미군 소위 엘도 레인(브래드 피트)은 “당한 만큼 돌려준다!”는 신념으로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아 ‘바스터즈’라는 조직을 만든다. 사격술, 전투력, 잔혹함, 맹목성 등에서 한몫하는 조직원들과 함께 그는 나치 치하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 위장 잠입해 피의 복수극을 시작한다.

이죽거리는 미국 남부 사투리를 뱉어내며 거친 남성적 매력을 뿜어낸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큰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악랄한 나치 장교 한스 란다 역을 소름끼치는 핍진감(逼眞感)으로 소화해 제82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크리스토프 왈츠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가 단순히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할리우드 스타가 아님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다.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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