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26〉 〈칠드런 오브 맨〉

디스토피아 계열 최고의 명작

‘유토피아’라는 용어는 15세기 이전에는 없었다.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이라는 접두사와 ‘장소(toppos)’라는 말을 결합해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단어로 만들어낸 용어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600년 된 개념이다.

모어의 저서는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널리 통용되지만, 라틴어 원제는 ‘공화정 최적의 상태’라는 뜻이다. 즉 이 책에서 모어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사회를 그리지 않고, 그가 바라본 당시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그가 실현해보고 싶었던 공화주의 정치 체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토피아》를 관통하는 것은 풍자나 언어놀이 등의 지적 유희가 가득한 ‘교묘한’ 수사(修辞)다. 가혹하고 자의적인 통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아 목양(牧羊)을 위한 ‘울타리 치기’에서 발생한 사회적 불공정을 언급하며 “양이 인간을 먹는다”라는 신랄한 풍자를 날리는 식이다. 이른바 ‘해학취미’의 인문주의자였던 그는 그래서인지 서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경건한 그리스도교도로서의 면목을 뒤늦게 인정받아 1935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성인(聖人)’ 칭호를 받았다.

토마스 모어 덕분에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하게 된 유토피아는 앞서 말한 어원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다시 말해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킨다. 중국 도연명의 무릉도원이나 별천지쯤이 되겠다.


유토피아는 중세에서 근세로 변화하는 시기를 맞아 과학기술 문명의 양양한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생겨났다. 유토피아의 비전은 18∼19세기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이상 사회관으로 이어진다. 명저 제목으로 사용된 덕분에 일반인에게도 대중화된 ‘유토피아’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영화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환상적 세계에 갈등이나 분쟁이 있을 리 없고, 갈등과 분쟁이 없는 영화는 전혀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반기는 소재는 그 반대 개념인 ‘디스토피아(dystopia)’다. ‘역(逆)유토피아’라고도 하는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비(非)존엄과 소외가 극점에까지 달한 안티 유토피아를 가리킨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G.오웰의 《1984년》 등이 문학계의 그 대표작으로, 가장 부정적인 어둠의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디스토피아는 현대 사회에 내재한 위험 요소를 미래 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내면화하고 있는 부정적 사항들을 명확하게 지적해낸다.

영화계에서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작품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톰 크루즈와 모건 프리먼이 맞장을 뜬 〈오블리비언〉(2013), 일본식 상상력의 충격적 전개를 유감없이 보여준 〈배틀로얄〉(2000), 맷 데이먼과 조디 포스터가 멋진 연기 대결을 펼친 역설적 타이틀의 〈엘리시움〉(2013), 프랑스 원작 만화보다 한 수 높은 경지를 펼쳐낸, 이제는 칸 황금종려상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된 〈설국열차〉(2013), “역시 스필버그야” 소리가 절로 나는,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신선한 〈에이 아이〉(2001), ‘체이스 신(chase scene)’만으로 두 시간을 긴박하게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 아카데미 6개 부문 수상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또 있다. 〈월-E〉 〈매트릭스〉 〈클라우드 아틀라스〉 등.


영화를 본 이후 당신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필자는 그러나, 이 숱한 디스토피아 계열 수작 가운데서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감독 알폰소 쿠아론, 2006)을 의심의 여지 없는 최고로 친다. 명실상부한 SF이면서도 완벽하게 현실적이고, 무엇보다 빼어난 사실주의 작품인 〈칠드런 오브 맨〉은 할리우드를 누비고 있는 멕시코 3대 감독 중 한 명인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의 모든 재능이 응축된 명작이다.

클라이브 오웬, 줄리안 무어 등이 열연한 〈칠드런 오브 맨〉은 15년 전 영화임에도 역대 가장 뛰어난 SF 영화 리스트에 빠짐없이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촬영이 기가 막힌데, 이 영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년 연속 촬영상을 수상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멕시코 출신인 루베즈키는 롱 테이크로 찍었음에도 역동적인, 즉 얼핏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카메라 워크로 유명하다.


2014년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함께한 〈그래비티〉(Gravity, 2013)로, 연이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함께 찍은 〈버드맨〉(Birdman, 2014)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2015)로 수상했다.

독자들의 ‘명작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에 이 영화에 대한 세세한 줄거리 소개는 피하고자 한다. 바쁜 일상이겠지만 굳이 1시간 40분을 할애해 캔맥주와 오징어 땅콩을 곁들여 느긋이 플레이키를 누르기를 적극 권한다. 장담컨대 이 영화를 보기 전의 당신과 이후의 당신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 천국도 없다


서기 2027년 영국 런던,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미증유의 재난을 맞이한 인류는 점차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현재 18세 4개월로 가장 어린 사람 디에고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이에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을 비춰주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디에고는 세계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어서 그 인기가 슈퍼스타 못지않았고, 어릴 때부터 유명세에 시달린 탓인지 망나니 생활을 했다. 뉴스에는 팬의 사인을 거절하고 침을 뱉었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나온다.

전 세계는 사실상 박살 난 상태다. 뉴욕엔 핵이 터졌고, 화면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서울은 물에 잠겨 있다. 다른 도시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다. 그나마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정부는 세계에서 영국 단 한 곳이다. 그러나 영국마저도 정부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복지 체계가 망가진 상황에서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 자살 약을 배급하고 복용을 권고하고 있다. 대중 사이에서는 이민자들의 혈통이 섞여 불임이 유발된다는 미신이 퍼져, 불법 피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용소에 처넣고 있다.

주인공 테오도르 파론(클라이브 오웬)은 한때 사회운동가로 활약했지만 지금은 국가 소속 동력자원부(Ministry of Energy)에서 일하고 있다. 힘겨운 나날의 유일한 낙은 만화가였던, 나이 차이 나는 친구 재스퍼(마이클 케인)를 이따금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재스퍼의 아내는 기자였지만 정부에 붙잡혀 고문당한 후로 휠체어에 의지해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둘은 인간의 멸종을 막으려 힘쓰는 과학자 집단인 ‘휴먼 프로젝트’에 관한 농담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재스퍼와 즐겁게 보낸 다음 날 테오는 거리에서 갑자기 납치를 당해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놀랍게도 과거 함께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전처 줄리엔(줄리안 무어). 그녀는 거금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한 소녀를 불법으로 빼돌리기 위한 통행증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블랙 유머가 압권


이에 테오는 정부 부처에서 일하고 있는 사촌을 만나러 간다. 미술품 관리청장인 사촌은 엉망인 국제 상황을 틈타 여기저기서 소멸돼가는 미술품을 모으고 있다. 그의 거처는 그리스 다비드상, 피카소 대작 ‘게르니카’ 등 희귀한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여자 친구 핑계를 대며 통행증을 받아낸 테오는 실소를 터트리며 묻는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 짧은 대화다.

테오 : 어차피 100년 후에는 이것들 중 하나라도 볼 수 있는 슬픈 놈은 없을 거야. 왜 자꾸 모으는 거야?
사촌 : 뭔지 알아, 테오? 난 그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통행증은 구했으나 테오의 이름으로 나온 것이라 소녀와 테오가 동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테오는 줄리엔, 그녀와 같은 단체 소속의 루크(치웨텔 에지오포) 그리고 보호해야 하는 소녀 키(클레어-홉 애쉬티), 그녀의 보호자인 어느 아주머니와 함께 검문소로 향한다. 촬영 못지않은 이 영화의 특징은 ‘블랙 유머’다.


이 영화는 제32회 ‘새턴어워즈’ 최우수 SF영화상, 제41회 전미비평가협회상 촬영상, 제6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수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후보에 올랐다.

영국 시인 스윈번(A. C. Swinburne, 1837~ 1909)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는 천국도 없다.”

이 영화에서 키를 돌보는 아주머니는 말한다.

“놀이터 소리가 사라지면서 절망이 시작되었지요. 아주 이상해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As the sound of the playgrounds faded, the despair set in. Very odd, what happens in a world without children’s voices).”

거두절미하고,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를 보시라.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렸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당연한 말씀을 절로 되새기게 될 것이다.

사족 한마디. 해외 개봉 후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국내에 정식 개봉했는데, 원제 ‘Children Of Men’의 ‘멘’이 어찌된 영문인지 ‘맨’으로 표기되고 말았다. ‘트랜드’ ‘일랙 기타’ ‘바디 프랜드’류인 셈인데, 일부러 그랬다면 원뜻의 작지만 무시 못 할 훼손이고, 실수라면 너무 한심하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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