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25〉 〈덩케르크〉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는 전쟁 영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0년 5월, 독일군은 프랑스-벨기에 국경 지대의 프랑스 방어선을 돌파하고 그대로 영국 해협을 향해 서쪽으로 밀고 나갔다. 그 과정에서 연합군은 둘로 갈라졌고, 유럽 파견 영국군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해안에 고립되고 말았다.

전격 작전으로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를 침략한 독일군은 5월 19일 아브빌 서쪽 해안을 확보한 뒤 영국군을 바다 쪽으로 몰아 철통같이 포위했다.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던 독일 기갑부대에 26일 히틀러가 갑자기 전진 중지를 명령했다가 28일 명령을 철회하고 다시 전진하도록 재명령을 내렸다.

이에 영국은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유럽 파견 영국군 22만 6000명과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11만 2000명을 프랑스 북부 해안에서 영국 본토로 최소의 희생을 내며 철수를 감행했던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을 펼친다. 다이나모는 도버의 한 오래된 성채에 설치된 영국 해군 지휘소의 방 이름이었다. 이곳에서 버트람 램지 영국 해군 중장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작전 개요를 설명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이 작전은 9일 동안 860척에 달하는 선박이 황급히 모여들어 총 33만 8000여 명의 병사를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구출한 작전이었다. 프랑스어로 (Dunkerque)라고도 표기하는 덩케르크는 프랑스 북부 노르주 도버 해협 해안가에 위치한 중소 도시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접경 지역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북쪽 270km에 위치해 있다. ‘덩케르크의 작은 배들(Little Ships of Dunkirk)’이란 표현으로 유명한데, 여러 화물선, 어선, 유람선 및 왕립구명정협회 구명정 등 민간 선박이 긴급히 징발돼 해안에 있던 병사들을 바다에 대기 중인 대형 구축함으로 이송했다.

‘덩케르크 철수(Withdrawal of Dunkirk)’라고도 부르는 이 작전은 유럽에서 영국 육군을 구하면서 군대를 재건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전쟁 상황에서 영국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이후 영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덩케르크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영국은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마친 시점이 아니었고, 40만 명의 가용 가능한 전체 병력을 총투입한 셈이었다. 만약 이들이 포위, 섬멸당했다면 영국은 싸울 병력이 태부족했을 상황이었다.

연합군은 이후 4년간 전 세계에서 독일과 전투를 벌이다 프랑스령의 노르망디 해안에서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때문에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2차 세계대전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2017년 아카데미상 싹쓸이

이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덩케르크〉(Dunkirk,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2017)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 편집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음악상 등 무려 8개 부문 후보작에 올랐고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등을 수상한 역작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꽤 알려진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극적으로 다루기 위해 놀란 감독은 여러 시점이 교차하는 연출 방식을 택했다. 잔교(棧橋) 일주일, 바다 1일, 하늘 한 시간 등 세 가지 시점이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교차 진행돼 뒤섞이게 만든 것이다. 잔교란 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해놓은 다리 모양의 구조물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덩케르크 해안에 만들어진 잔교에서의 7일을 기본으로 바다에서의 하루와 하늘에서의 한 시간을 겹쳐 같은 러닝 타임 안에서 세 가지 시점이 공존하게 만든 것이다.

7일이라는 시간은 영국 병사인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작전 지휘자인 해군 중령 볼튼(케네스 브래너)의 시선으로 압축된다. 여기에 덩케르크로 향하는 영국 어선의 선장 도슨(마크 라이런스)의 하루가 병행되고, 덩케르크의 상공에서 독일군 적기와 맞섰던 파리어(톰 하디)의 한 시간이 겹쳐진다. 이 세 시점은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함을 각각의 입장에서 절절히 드러내고, 마침내 그 셋이 교점을 이루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밀하게 치닫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화 〈덩케르크〉의 또 다른 특징은 보통의 전쟁 영화와 달리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탄과 포탄 파편이 날아다니지만 유혈이 낭자한 장면 같은 건 없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 같은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는 대화로 캐릭터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누구처럼 행동하는지, 아니면 어디서 왔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내게 유일하게 흥미로웠던 문제는 ‘그들이 벗어날 것인가? 잔교로 가려다가 다음 폭격에 죽지는 않을까? 건너가던 중에 배로 인해 으깨지진 않을까?’였다.”

또한 그는 “〈덩케르크〉가 중시한 것은 잔혹한 묘사를 최소화해 관객이 공포감에 눈을 돌리지 않고 스크린에 계속 몰입해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리얼리티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다른 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쟁 영화지만, 전쟁 영화가 아닌


영화는 작은 해안 도시 덩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 병사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영국 육군 병사 토미의 분대는 항복하라는 독일군의 ‘삐라’가 흩날리는 덩케르크 시내를 걷고 있다. 그러다 갑작스런 독일군 사격에 동료들이 쓰러지고, 토미는 프랑스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는다.

해안가로 온 토미는 시신을 묻고 있던 깁슨(아뉴린 바나드)을 발견하고는 그를 도와주고 물을 얻어 마신다. 토미는 승선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선다. 하지만 곧 독일 공군기의 폭격이 시작되고 토미 바로 옆 병사가 폭사한다. 독일기가 돌아가고 혼란을 수습하던 중 토미와 깁슨은 시체들 사이에서 아직 살아 있는 부상병을 발견한다. 둘은 그 부상병을 들것에 실어 잔교로 달려가고, 잔교 위에서 빽빽하게 줄지어 있던 다른 영국군과 프랑스군들이 부상병을 위해 길을 열어준다.

토미와 깁슨은 간발의 차이로 부상병과 함께 병원선에 오르지만, 승선을 감독하던 해군 하사가 둘에게 내려서 줄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는 척하다 잔교 밑으로 내려가 숨는다. 이때 해군 제독이 탄 다른 배가 잔교로 다가오고, 볼튼 해군 중령과 위넌트(제임스 다시) 육군 대령은 전황과 철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제독은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며 병력을 나를 배도 충분치 않아 민간 선박들을 징발 중이지만 잘해야 전체 병력의 10분의 1 이하인 4만 5000명 정도만 구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결론 내린다.

이때 다시 시작된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병원선이 침몰해가고, 잔교 아래 매달려 있던 토미와 깁슨은 바다로 뛰어든 장병들을 구조하다 배와 잔교 사이에 끼어 죽을 위기에 처한 알렉스(해리 스타일스)를 구해준다. 이들은 뒤이어 도착한 구축함에 올라 목숨을 구한다. 구조선에 오른 병사들이 담요와 토스트를 공급받는 동안에도 깁슨은 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갑판에 머문다. 뒤에 밝혀지지만 깁슨은 사실 ‘깁슨’이라는 전사자의 인식표와 피복을 훔쳐 영국 육군으로 위장한 프랑스 병사였다. 영화 안에서는 탈출의 뒷전으로 밀린 프랑스군을 대표하는 인물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영화 말미에 프랑스어로 짧게 말하는 장면을 빼고는 대사가 없다.


한스 짐머의 음악이 긴장감 극대화

이제는 고향길에 오르는가 싶었는데 구축함 역시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다. 물이 거침없이 차오르고, 토미와 알렉스를 비롯한 병사들이 익사 위기에 처한 그때 밖에 있던 깁슨이 문을 열어줘 모두 바다로 탈출한다. 그들은 구명정에 매달려 해안가로 살아 돌아온다.

한편 영국 쪽 해안에서는 작은 요트인 문스톤호 선장 도슨과 아들 피터(톰 글린카니), 피터의 친구 조지(배리 케오간)가 직접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한다. 그들은 침몰해서 끄트머리만 간신히 떠 있는 배에 올라타 ‘떨고 있는 군인’(킬리언 머피)을 발견한다. 그를 구조하지만 큰 충격을 받은 군인은 제정신이 아닌 듯 행동한다.

요트가 영국 반대쪽으로 향하는 것을 알게 된 군인은 돌아가야 한다며 도슨 선장을 윽박지른다.

군인 : 방향을 돌리지 않았네요.

도슨 : 우린 해야 할 일이 있다네.

군인 : 해야 할 일이요? 이 배는 요트예요. 당신은 해군이 아니라, 주말 뱃사람일 뿐이라고요. 이미 나이도 있고.

도슨 : 내 나이의 어른들이 전쟁을 일으켰네. 우리는 대체 무슨 권리로 우리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지?

군인 :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도슨 : 우리가 만약 도살자들이 이 해협을 건너도록 내버려둔다면 더 이상 집은 없다네.


사실 도슨 선장은 공군 파일럿이었던 아들(피터의 형)을 전쟁 초기에 잃은 슬픔을 안은 채 덩케르크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하늘에서는 스핏파이어 전투기들이 항공 엄호를 위해 덩케르크로 출격한다.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편대장과 1호기 파리어, 2호기 콜린스(잭 로던)로 구성된 편대다. 이들은 곧 독일 전투기를 만나고 짧은 공중전 끝에 승리하지만 편대장이 격추돼버린다. 파리어는 전투 중에 맞은 총탄으로 연료계가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콜린스에게 연료가 얼마 남았는지 주기적으로 알려달라고 말한다.

이후 다시 독일 전투기를 만나 모두 격퇴하지만 콜린스의 전투기가 피격돼 바다 위에 비상 착수한다. 바다 위에서 콜린스는 캐노피가 열리지 않아 익사 직전까지 몰리지만 도슨 선장에 의해 구출된다.

콜린스가 비상 착수하기 직전 알려준 남은 연료량 15갤런을 토대로 귀환 시각을 계산하던 파리어는 또 다른 독일 폭격기가 영국 배들을 공격하려는 것을 발견한다. 연료계와 눈앞의 폭격기를 번갈아 보며 갈등하던 파리어는 귀환을 포기하고 폭격기를 잡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은 전투 자체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병사들, 어떻게든 그들을 살리려는 민간인 선주와 전투기 조종사의 사투에 집중한다. 해안에 도착한 병사들은 바닷가 한쪽에 좌초돼 있던 어선에 들어가 밀물 때 배가 떠오르길 기다리지만 독일군의 잇단 사격으로 배에 구멍이 나고 물이 차오른다. 그러자 알렉스가 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깁슨을 배에서 쫓아내려 한다. 토미는 “프랑스군도 아군이고, 어차피 한 명 내려봤자 달라질 건 없다”며 반대한다.

토미 : 그가 우리를 구했어.

알렉스 : 한 번 더 구하라고 해.

토미 : 이건 불공평해.

알렉스 : 생존이란 원래 불공평한 거야.


〈덩케르크〉의 많지 않은 대사 중에서 이 짧은 대화는 생사가 갈리는 상황의 절박성과 맞물리면서 의미심장한 울림을 갖는다. 이렇듯 〈덩케르크〉는 자극적인 장면 위주로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단말마적인 비명 소리와 거침없이 들어차는 물, 하늘 저 멀리서 돌진해오는 적기의 기세 등을 한스 짐머의 음악과 함께 적절하게 형상화함으로써 화면을 더욱 긴장되고 공포스럽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체험’에 가까운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면 두려움에 질린 앳된 병사들의 얼굴과 조국의 청년들을 구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달려간 평범한 국민들의 얼굴이 뇌리에 저절로 각인되는 잊지 못할 작품이다.

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덩케르크를 떠나 영국에 도착한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알렉스(해리 스타일스)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역에 정차한 기차 객실에서 알렉스는 창밖 꼬마로부터 신문을 넘겨받는다. 알렉스는 전쟁에서 지고 돌아온 자신들을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라며 토미에게 신문을 건넨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생환한 군인들에게 맥주를 건네며 환영했고, 토미는 신문에 실린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유명한 연설을 소리 내어 읽는다.


윈스턴 처칠 :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자신감과 성장하는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We shall not flag or fail.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토미가 읽는 연설문을 배경으로 덩케르크 해안가에 버려진 영국군의 철모와 장비들, 자신의 전투기를 불태우고 독일군 포로로 잡혀가는 파리어 그리고 다시 토미를 비추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사지에 내몰린 영국 병사 토미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와 영국민들의 사기를 올려놓은 토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비춤으로써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역사적 의미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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