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와 NFL 동시 정복한 괴물 신인 한국계 카일러 머리(Kyler Murray)

카일러 머리가 2019년 4월 26일 NFL(미국프로풋볼리그) 드래프트 행사(미국 테네시)에서 전체 1순위로 자신을 지명한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유니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조선DB
미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MLB)와 미국프로풋볼리그(NFL)에서 동시에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가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카일러 머리(Kyler Murray)다. 머리의 다재다능함은 진작부터 유명했다. “MLB든 NFL이든 머리는 올스타가 될 것”이라는 은사(오클라호마대에서 그를 지도한 링컨 라일리 감독)의 발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야구와 풋볼(미식축구) 모두 잘하는 머리의 인기는 상당하다. 그가 ‘하프 코리안’ 하인스 워드(Hines Ward)에 이어 새롭게 미국 스포츠 스타로 떠오를 한국계 선수이기 때문이다. 워드는 2006년 NFL 결승 슈퍼볼에서 소속팀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MVP로 선정됐다. 미국에서 흑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뒤 그를 키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친 한국인 어머니에게 공을 돌린 워드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한민족 특유의 희생과 부지런함, 효(孝)를 떠올리며 감동했다.


MLB와 NFL 동시에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받은 최초 선수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던 워드는 ‘하프 코리안’인 데 반해 머리는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쿼터 코리안’이다. 머리의 외할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결혼해 머리의 엄마를 낳았다. 그는 결혼 전까지 ‘미선’이란 한국식 이름을 썼다. 미국 최대 통신업체 ‘버라이즌(verizon)’의 전략 담당 부사장을 지낸 그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케빈 머리(Kevin Murray)와 결혼을 했다.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카일러 머리다.

머리의 천부적인 운동 재능은 아버지 케빈에게서 물려받았다. 케빈은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뛴 미식축구 선수였다. 발목 부상으로 조기 은퇴한 그는 현재 고교 미식축구팀 코치로 일하고 있다. 케빈의 동생, 머리의 삼촌인 켈빈 머리(Kelvin Murray)는 야구 선수였다. 텍사스 A&M대학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켈빈은 추신수가 뛰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시카고 컵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켈빈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당시 208cm의 큰 키로 ‘빅 유닛’이라는 별명을 얻은 랜디 존슨(Randy Johnson)은 최고의 왼손 투수로 꼽혔다. 존슨은 사이영상만 5회 수상했고 2001년에는 월드시리즈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존슨은 지난 2001년 3월 샌프란시스코와의 시범 경기에서 투구 중 의도치 않게 비둘기를 맞혔다. 그가 던진 공에 비둘기가 날아들었는데, 존슨의 강속구에 비둘기는 즉사했고 투구는 무효 처리됐다. 당시 타자가 켈빈이었다. 야구 경기 중 투수가 던진 공에 새가 맞을 확률은 무려 190억 분의 1로 알려졌다.


2018년 MLB 오클랜드에 1라운드 9순위 지명

2018년 대학에서 타율 2할9푼6리 10홈런 47타점 10도루란 준수한 성적을 거둔 머리를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지명했다. © 카일러 머리 인스타그램
미식축구 선수였던 아버지와 야구 선수였던 삼촌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받은 머리는 오클라호마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와 야구 선수로 뛰었다. 두 종목 모두 특출한 실력을 자랑한 머리를 먼저 주목한 쪽은 야구였다. 2018년 대학에서 타율 2할9푼6리 10홈런 47타점 10도루란 준수한 성적을 거둔 머리를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지명했다. 계약금은 466만 달러(약 55억 원)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2018년 후반기에 오클라호마대학 미식축구 선수로서 잔여 시즌을 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머리의 미식축구 실력은 뛰어났지만, 대학에서 이를 보여줄 기회가 야구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2018 NFL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인 베이커 메이필드(Baker Hayfield)에 가려졌던 것이다. 메이필드가 NFL에 진출한 후인 잔여 시즌이 자신의 실력을 나타내 보일 마지막 기회였다.

머리는 그 마지막 기회를 제대로 살려냈다. 2018년 대학리그에서 쿼터백으로 활약하며 37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포함해 패싱으로 3674야드를 기록했고, 러싱으로도 11개의 터치다운, 853야드를 전진하며 오클라호마대학을 11승 1패로 이끌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머리는 2018년 12월 9일 ‘2018년 하이즈먼 트로피’(매년 뛰어난 대학 미식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 미식축구 선수이면서 코치였던 존 하이즈먼의 이름을 따서 붙임)를 수상했다.

머리는 2019년 4월 NFL 드래프트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비상이 걸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은 머리를 잡기 위해 원래 지급하기로 한 계약금보다 많은 1900만 달러(약 225억 원)의 사이닝 보너스를 제시했다. 지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현실적으로 NFL 쿼터백과 메이저리거를 병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머리는 둘 중 한 곳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2019년 2월 12일 그는 트위터에 이같이 밝혔다.

“내 인생과 시간을 NFL 쿼터백이 되는 것에 완전하게 바치겠다. 미식축구가 내 사랑이며 열정이다. 좋은 쿼터백이 되고 슈퍼볼 우승까지 할 수 있도록 내 전부를 쏟아붓겠다.”


머리가 NFL을 선택한 진짜 이유


메이저리그 1라운드 지명을 받고도 NFL 진출을 선언해 미국 스포츠계에 큰 화제를 불러왔던 머리는 2019년 4월 26일 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애리조나 카디널스에 지명됐다. 애리조나 구단은 머리와 4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2359만 달러(약 280억 원)를 포함해 3516만 달러(약 416억 원)를 보장했다. 머리는 지명 직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 이뤄졌다”며 “최대한 열심히 준비해서 팀에 많은 승리와 우승반지를 안기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에 좀 더 애정이 있었던 머리의 마음이 NFL로 향한 데는 시애틀 시호크스의 스타 쿼터백 러셀 윌슨의 존재가 있었다. 당초 머리는 NFL에서 활약하기엔 체격(178㎝, 88㎏)이 작다는 평가 때문에 야구를 택하려 했다. 실제 보통 NFL 쿼터백들은 신장 188㎝ 이상이다.

하지만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윌슨(180㎝, 98㎏)이 야구와 미식축구 중 미식축구를 선택하고 2014년 슈퍼볼 정상에 오르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쿼터백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다. 윌슨은 최근 시호크스와 리그 최고 평균 연봉인 3500만 달러(약 414억 원)에 4년 계약을 맺었다.

전문가들은 “미식축구는 ‘쿼터백 놀음’이다. 이들은 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며 “머리가 오클라호마대학에서 보여준 강한 어깨, 빠른 발은 NFL에서도 통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에 따르면, 머리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받은 계약금 중 일부를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클랜드는 머리가 메이저리그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제한선수’로 묶고 보유권을 주장한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NFL의 돈 베팅 규모가 메이저리그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머리의 한국 사랑

카일러 머리는 지난 8월 9일 NFL 데뷔전을 치른 뒤 기자회견장에 한국 축구 대표팀 홈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 카일러 머리 인스타그램
‘괴물 신인’ 머리는 NFL 무대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 지난 8월 9일 카디널스를 상대로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언론의 호평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포브스》는 머리를 공격 부문 신인왕 후보 0순위로 꼽으며 “스피드와 던지기 능력은 모든 팀이 탐낼 만큼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머리의 한국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NFL 데뷔전을 치른 뒤 기자 회견장에 한국 축구 대표팀 홈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지 언론도 머리가 한국계라는 점을 부각했다. 국내 스포츠팬들도 “한국 대표팀에서 뛰어도 될 만큼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머리는 인스타그램 자기소개란에 영문 ‘그린라이트(Green light)’와 한글 ‘초록불’을 나란히 적어뒀다. 이제 막 출발대에 선 프로 선수 인생에 청신호를 켜겠다는 뜻인데, 한국인이라는 자긍심도 함께 담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꼭 찾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 음식을 먹는 사진도 자주 게재한다.

카일러 머리는 인스타그램 자기소개란에 영문 ‘그린라이트(Green light)’와 한글 ‘초록불’을 나란히 적어뒀다.
이제 막 출발대에 선 프로 선수 인생에 청신호를 켜겠다는 뜻인데, 한국인이라는 자긍심도 함께 담았다. © 카일러 머리 인스타그램
머리의 어머니 미시 머리(Miss Murray, 미선에서 결혼 후 개명)는 말한다.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미국인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아시아(한국)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들이 한국 국가 대표 유니폼 등을 입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아시아 문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것(한국 문화의 자긍심)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합니다.”

머리가 하프 코리안 하인스 워드에 이어 새롭게 NFL 스타로 떠오를 한국계 선수가 되길 기대한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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