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노쇼(No-Show) 사태로 본 한국-이탈리아 악연의 축구사

2019년 7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 경기. 유벤투스 호날두가 경기 시작 전 벤치에 앉아 있다. © 조선DB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FC)의 티켓 파워는 가히 놀라웠다. 2007년 EPL 맨유 소속으로 첫 내한 이후 12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팬들은 과감하게 거금을 투자했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는 팬들이 몰려들어 수차례 다운되기도 했다. 몇 년째 투병 중인 동생을 위해 표를 예매했다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이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호날두가 ‘하나원큐 팀 K리그’와의 친선 경기에서 출전 약속을 어기고 단 1초도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를 추진한 더페스타는 유벤투스와 계약하며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 조항을 포함했지만, 호날두는 벤치만 지켰을 뿐이다. 호날두의 행동에 대한 유벤투스의 반응도 눈꼴사나웠다. 더페스타 관계자에 따르면, 후반 10분이 지난 시점이 돼서야 호날두가 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돼 항의하자 유벤투스 측은 “감독도 선수도 출전 조항을 알고 있지만, 선수가 뛰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변명을 했다. 팀 위에 선수가 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국 땅 밟기 전부터 이런저런 핑계

파벨 네드베드 유벤투스 부회장은 유벤투스와 팀 K리그 간 친선 경기 때 경기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킥오프 지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경기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 뉴시스
유벤투스는 한국 땅을 밟기 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한국 팬들을 대놓고 기만했다. 당일 입국, 당일 출국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정에 빡빡한 팬미팅 스케줄까지 모두 유벤투스의 요청으로 꾸려졌다. 그럼에도 유벤투스는 입국 후 차량 정체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자 “우리가 왔는데 한국 경찰은 호위도 안 해주느냐”며 되레 역정을 냈다. 또 파벨 네드베드 유벤투스 부회장은 유벤투스와 팀 K리그 간 친선 경기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킥오프 지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경기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호날두와 유벤투스가 보인 행동에 국내 축구팬들은 분노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경기 내내 벤치를 지킨(sit on the bench for the entire match) 호날두가 한국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rouse Koreans anger)”며 “벤치에 앉아 자살골을 넣었다(score an own goal)”고 비유했다.


유벤투스의 적반하장식 태도

팀 K리그와 유벤투스 친선 경기를 마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한 기자가 “호날두가 45분 뛰도록 계약이 돼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사리 감독은 “호날두가 뛰는 것이 보고 싶나? 그러면 (이탈리아로 오는) 비행기 값을 주겠다”는 농담을 던져 공분을 샀다. © 뉴시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호날두 노쇼’를 비롯해 유벤투스 측이 무책임한 태도로 한국 팬을 무시했다는 항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오히려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했다. 아넬리 유벤투스 회장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보낸 서한에서 이같이 밝혔다.

팀 K리그와 유벤투스 친선 경기에 근육 문제를 이유로 끝내 출전하지 않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귀국 후 러닝머신을 뛰는 모습과 함께 “Nice to back home(집에 돌아와서 좋다)”이라는 글을 SNS에 공개해 한국 팬들이 비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인스타그램
“유벤투스의 구성원 중 누구도 K리그와 대한축구협회,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이번 친선 경기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자부하고 있다. 프로모터(더페스타)와 체결한 계약을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우리 법무팀에 프로축구연맹이 적시한 ‘고발’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법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힌 것이다.


1966년 월드컵에서 사다리 전법으로 이탈리아 격파한 북한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북한의 축구 대표팀은 우승 후보 이탈리아를 격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 유튜브 캡처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안하무인격 횡포가 국내를 넘어 미국, 영국 등 국제적인 이슈로 확대된 가운데 한국과 이탈리아의 악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이다. 축구와 관련한 두 나라의 ‘잘못된 만남’은 지난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회자되는 월드컵 10대 이변 중 하나. 당시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북한 축구 대표팀은 우승 후보 이탈리아를 격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 나선 북한의 상대는 1958, 1962년 대회에서 8강에 오른 소련과 두 차례 우승컵을 안은 이탈리아, 1962년 대회 3위 칠레였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소련에 0 대 3으로 패할 때만 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당시 축구협회 부회장이었던 고 김용식 선생은 경기를 본 뒤 북한 전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는 적중했다. 북한은 칠레와의 2차전에서 1 대 1 무승부를 거두며 이변을 예고하더니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사건’을 일으켰다. 1 대 0 승리. 주역은 북한의 박두익이었다. 이때 북한은 이탈리아의 공중볼 공격 시 북한 수비수 세 명이 상중하 높이로 떠서 막아내는 기상천외한 묘기를 선보였는데, 바로 그 유명한 ‘사다리 전법’이었다.

북한의 승리 후 영국 신문은 “재앙, 승리, 드라마 그리고 동화(童話)”라고 표현했다. 이탈리아의 충격은 컸다.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귀국하는 대표팀 선수단에 썩은 토마토를 집어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2002년 월드컵서 한국, 이탈리아 격침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고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경기 후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 페루자 소속이던 안정환은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퇴출됐다. © 조선DB
그로부터 36년 후인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16강전에서 맞붙었다. ‘Again 1966’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했다. 1966년 북한의 8강 신화를 재현하자는 뜻이었다. 이탈리아는 골잡이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연장전에선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허용했다. 결과는 2 대 1 한국의 승. 한국이 이탈리아의 ‘1966년의 잊고 싶은 악몽’을 다시 깨운 것이다. 남북은 다르지만,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같은 한반도 국가에 두 번 다 진 것이다.

16강 승리의 불똥은 당시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 페루자 소속이던 안정환에게 튀었다. 그는 딱 좋은 희생양이었다. 페루자 구단주는 “길 잃은 양을 돌봐줬더니 늑대가 됐다”는 망언을 퍼부으며 안정환을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퇴출했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속 좁은 나라였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의 방출 이유는 비이성적이고 몰지각했다.

안정환은 그때 골든골을 넣은 뒤 이탈리아에서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축구 강국인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졌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느냐. 이후로 페루자 구단주가 나에 대해 욕을 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쁜 놈’ ‘배고픈 아이’ ‘거지’ 등의 악담을 했다. 심지어 이탈리아 축구팬들이 내 집 앞에 있는 차를 다 부수는가 하면 살해 위협도 가했다. 6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주리 군단’을 침몰시킨 영웅 안정환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탈리아에 대한 배신감이 뿌리 깊게 남아 있을 것이다. 안정환은 2006년 초 독일 뒤스부르크로 이적하며 가졌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에서 미움받던 당시를 회상하고 싶지 않다. 더는 그 나라(이탈리아) 말을 쓰고 싶지도 않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반한(反韓) 전선 구축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패배 이후 이탈리아 정치권력과 언론은 철저하게 반한(反韓)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이었던 카를로 아제글리오 치암피는 “이탈리아가 이긴 경기(deserved to win)”라며 “나는 우리 팀의 투지와 조직과 페어플레이를 봤다. 그들은 이탈리아 축구의 전통을 빛냈다”고 말했다. 또 행정부 장관인 프랑코 프래티니는 “이번 주심은 수치이며 완벽한 스캔들”이라며 “내 평생 이런 경기를 보긴 처음이다. 그들은 마치 테이블에 모여 앉아 우리를 몰아내기로 모의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라 레푸블리카》 《일 메사제로》 《일 템포》 《라 나치오네》 《코리에 델라 세라》 등 이탈리아 언론들은 “주심과 부심이 살인 청부업자처럼 이용된 더러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쫓겨났다” 등의 선동적 보도를 매일같이 쏟아냈다.

17년 전 홈팀인 한국이 심판을 매수, ‘편파 판정’ 때문에 이탈리아가 억울하게 패배했다는 지질한 논리와 2019년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프로 축구팀 유벤투스의 적반하장식 주장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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