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23〉 〈트루먼 쇼〉

우리는 모두 트루먼이다

소설 《1984》는 영국 작가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1949년에 출간한 작품이다. 평생 가난과 싸우고 지병으로 폐결핵을 앓던 작가가 사망 직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완성했다.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당(黨)은 허구적 인물인 빅브라더(big brother)를 내세워 체제를 유지하고 통제하려 한다. 당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당원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어디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는다. 당은 당원들의 과거까지 날조하면서 그들의 사상을 통제한다. 정부 공무원인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연인 줄리아와 함께 당의 통제에 저항하며 체제 전복을 꿈꾼다. 하지만 사상경찰에 체포돼 고문을 받으면서 줄리아를 배반하고, 빅브라더를 찬양하도록 세뇌당한다.

《1984》는 빅브라더를 등장시켜 1984년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그려냈다. 당시 소비에트연방의 독재자 스탈린을 풍자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 소설을 계기로 ‘빅브라더’라는 용어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 체계’를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빅브라더의 실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소설 속의 그것과 흡사한 감시 체제가 현대에 이르러 실제 사회에서도 실현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일반인이 아침에 집을 나와 저녁에 귀가할 때까지 평균적으로 최소 여덟 차례 CCTV에 노출된다는 통계가 있다. 중국에서는 CCTV를 이용한 안면 인식 기술의 발달로 사생활 노출과 보호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빅브라더’의 영화 버전

이런 빅브라더의 존재를 말할 때 심심찮게 언급되는 영화가 바로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감독 피터 위어, 1998)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출신인 피터 위어 감독은 1974년 첫 영화를 만들고, 1980년대 초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그가 연출한 영화 〈위트니스〉(1985) 〈죽은 시인의 사회〉(1989) 〈그린 카드〉(1990) 등은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고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보험회사 직원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집과 회사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살고 있다. 트루먼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것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동창 메릴(로라 리니)과 결혼한다.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트루먼은 좋은 남편이자 성실한 직장인이고 건전한 시민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영화는 마치 실제 TV 버라이어티쇼인 ‘트루먼 쇼’를 진행하는 것처럼 출연 배우들의 영상과 크레디트가 나오면서 시작된다. 트루먼 쇼는 말 그대로 트루먼 버뱅크라는 남자의 삶을 방송하는 TV 쇼로, 트루먼이 태어날 때부터 유아 시절, 초등학교 입학, 대학 진학, 결혼 등 그의 삶을 죄다 촬영해 보여주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하루 24시간 내내 잠드는 모습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라이브로 방송한다.

하지만 트루먼 본인은 자신의 생활이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데 소꿉친구와 직장 동료, 옆집 이웃은 물론, 심지어 부모와 아내까지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연기자다. 그들은 배우로서 각본에 따라 트루먼의 주변 인물을 연기하며 행동한다.

그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섬 시헤이븐(Sea-haven)도 실제로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거대한 세트장이다. 이 세트장에 대한 광고 영상에서는 “만리장성과 함께 우주에서도 보이는 전 세계 단 두 개뿐인 조형물”이라고 나온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세트장에 5000대의 카메라와 수없이 많은 조명장치들이 설치돼 있다는 설정이다.

아내와 친구 등 트루먼과 가까운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연기 생활이 곧 자신의 사생활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대화 중간에 뜬금없는 말을 곧잘 하는데 이는 쇼를 쳐다보고 있는 시청자들을 향한 간접 광고다.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맥주가 이 정도는 돼야지”라면서 맥주 상표를 보여주는 식이다. 또한 트루먼을 광고 안내판이 보이는 곳으로 밀어붙인 뒤 이야기를 꺼내고, 잔디를 정리하고 있는 트루먼에게 새로운 잔디 깎기 기계가 나왔다는 식으로 말을 툭툭 던진다. 실은 트루먼이 사용하는 모든 생활용품, 옷이나 식품, 심지어 집도 방송으로 광고되고 있는 중이다.


일상 모든 것이 감시당하는 삶


영화는 촬영 1만 909일째 트루먼의 출근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트루먼은 현재 29세 10개월 정도의 나이다. 화장실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영화 대사를 흉내 내던 트루먼은 아내의 재촉으로 출근 준비를 마치고 36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힌 현관문을 나선다.

집을 나서는 트루먼의 모습을 포착한 장면에서 관객은 카메라의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트루먼의 상체가 화면에 꽉 차도록 당겨 찍는 기법으로 촬영한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등장하지 않지만 조작되고 있다는 느낌은 선명하게 전달된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는 인위적인 줌 촬영 기법을 노출함으로써 트루먼의 일상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트루먼 쇼〉에서 거울은 카메라 역할을 한다. 첫 장면에서 트루먼이 들여다보는 화장실 거울은 방송용 카메라다. 트루먼 쇼가 방영되는 220개국 시청자들은 거울 속에 비친 트루먼의 모습을 보고 그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는다.

거대한 세트장 시헤이븐을 만들고 트루먼 쇼를 제작한 총책임자는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다. 각본도 주로 그가 짜고, 중요한 순간에는 본인이 직접 무선통신으로 배우들의 행동이나 대사를 지시한다.

트루먼은 어린 시절엔 탐구심이 강해 여행가가 꿈이었다. 섬을 벗어나고픈 욕구를 갖고 있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그에게 더 이상 탐험할 지역이 없다고 가르치고, 비행기 사고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그 욕구를 억제했다. 거기에 트루먼의 아버지가 폭풍우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연출해 트루먼에게 물 공포증을 심어줬다. 트루먼은 조작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트라우마가 생겨 세트장인 섬에서 나가지 못하게 됐지만, 평범한 삶을 사는 와중에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섬을 떠나는 것을 꿈꿨다.

그러다 트루먼에게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시리우스 9번’이라 적힌 조명이 떨어지고, 빗줄기는 그에게만 내린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는 노숙자가 되어 나타나고, 트루먼이 당황한 사이에 길을 가던 회사원들이 갑자기 아버지를 버스에 태워 낚아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갑작스런 스토리 탓에 배역에서 해고된 배우가 앙심을 품고 고의로 트루먼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랑마저 쇼라니


아버지 생각에 옛날 물건들을 모아놓은 궤짝을 열어본 트루먼은 대학 시절에 만난 로렌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당시 트루먼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로렌은 트루먼에게 자신의 본명은 실비아(나타샤 맥켈혼)고 모든 것이 텔레비전 쇼라며, 그곳을 나와서 자신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남자에게 끌려간다. 그 남자는 딸을 데리고 남태평양의 피지섬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트루먼은 이후 피지로 가겠다는 꿈을 품고 살아왔다.

출근하는 길에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는 그의 동선을 체크하고 누군가 지시를 내리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트루먼에게 들려줄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감독이 배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채널이 혼선된 것이다. 트루먼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감독이 리셋을 지시하자 날카로운 삑 소리와 함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도로의 엑스트라들이 한꺼번에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상해하던 트루먼은 자기 직장이 아닌 다른 건물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는데, 그 안은 엘리베이터로 꾸민 배우 휴게실이었다. 의심이 들기 시작한 트루먼은 아내를 차에 태운 채 도로를 뱅글뱅글 돌고, 금지된 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피지행을 고집하지만, 그때마다 도로는 차들로 붐비고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 트루먼은 아내를 다그치고, 이에 갑작스레 나타난 오랜 친구 말론(노아 엠머리히)이 트루먼과 맥주를 마시며 그의 의심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시절부터 절친인 말론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크리스토프가 무선으로 읊어주는 말을 그대로 옮길 뿐이었다.

이후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노숙자가 돼 나타났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준다. 이 장면에서 시청률은 급상승한다. 그러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 쇼 특집 방송을 만드는데, 바로 그 라이브 방송에 실비아가 전화를 걸어 온다.

실비아: 크리스토프, 한마디 하고 싶네요. 천하에 나쁜 인간! 트루먼이 가엾지도 않아?

크리스토프: 많이 듣던 목소리로군. 잊을 수가 없지. 실비아, 공개적으로 날 망신 주는구먼. 약속을 어기고, 트루먼과 만나고, 잠깐 방송에 나와 뭐라 떠들어댄 정도로 트루먼을 안다고 생각하나?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해? 그를 판단할 입장이라고 생각해?

실비아: 무슨 권리로 아기를 데려다 동물원 원숭이로 만들었죠? 죄책감도 없어요?

크리스토프: 난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줬어. 우리가 사는 이곳은 역겨운 곳이지. 시헤이븐은 천국이야.

실비아: 트루먼은 새장에 갇혔어요. 무슨 짓을 했는지 봐요.

크리스토프: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도 않았지. 자네가 괴로운 건 트루먼이 그런 인생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실비아: 그렇지 않아요. 틀렸어요. 곧 알게 될 거예요. (전화를 끊는다.)

사회자: 막무가내인 시청자에게 친절하게 답해주셨습니다.

크리스토프: 트루먼을 위해서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슬픈 속살

이 장면은 영화 주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연출자 이름 크리스토프(Christof)는 자연스레 크라이스트(Christ)를 연상시키며, 독단에 빠진 오만한 지도자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인생을 구경거리로 만들어놓고는 트루먼에게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줬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트루먼은 결국 자신의 모든 생활이 조작되고 연출된 삶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감시의 눈을 속이고, 두려워했던 바다(물론 거대 세트장에 조성된 바다)로 나선 트루먼은 통제센터가 일으킨 폭풍우를 이겨내고 마침내 거대한 세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간다.

이 영화는 미디어의 맹점과 폭력적인 매스미디어의 본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트루먼이 탈출에 성공하고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데, 정작 마지막 장면은 자동차 정비공 시청자 둘이 “다른 거 볼 거 없나?”라면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이는 감정 이입도, 잊는 것도 쉬운 미디어 매체의 속성을 드러낸다. 트루먼의 승리와 인간성의 회복마저도 그저 쇼의 일부로 치부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꼬집은 것이기도 하다.

〈트루먼 쇼〉는 제71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남우조연상(에드 해리스),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짐 캐리는 제56회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드라마)을 받았다. 〈에이스 벤추라〉(1994) 〈마스크〉(1994) 〈덤 앤 더머〉(1994)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웃긴 남자 배우로 인정받았던 짐 캐리는 〈트루먼 쇼〉를 계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트루먼(짐 캐리)은 아내 메릴(로라 리니)을 태우고 당장 어디로든지 가자며 차를 몰고 나선다. 그러자 갑자기 도로가 막히고, 산불이 나고,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다며 경찰관이 길을 막아선다. 그런데 초면인 트루먼의 인사에 경찰이 “천만에요, 트루먼 씨”라며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말해버리는 실수를 하자 그는 뭔가 잘못됐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아내에게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이냐”고 다그치는데, 아내는 갑자기 맥락 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메릴: (코코아 통을 들며 광고 모델 톤으로) 새로 나온 ‘모코코아’ 한잔 마셔볼래요? 니카라과산의 상부 경사지에서 경작한 천연 코코아씨랍니다. 인공 감미료는 전혀 안 들어갔지요.
Why don’t you let me fix you some of this Mococoa drink? All natural cocoa beans from the upper slopes of Mount Nicaragua. No artificial sweeteners.

트루먼: (주변을 둘러보며) 빌어먹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디다 대고 말하는 거야?
What the hell are you talking about? Who are you talking to?

메릴: 다른 코코아도 마셔봤지만 이게 최고예요.
I’ve tasted other cocoas. This is the best.

트루먼에겐 아내지만, 트루먼 쇼의 출연 배우이기도 한 메릴은 심각한 말다툼 중이었음에도 TV로 지켜보는 시청자들을 향해 정해진 협찬 광고를 해야 했던 것이다. 코믹스러운 설정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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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WanJoong Kim   ( 2019-08-10 )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0
레드문 정권하의 한국과 또한 북한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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