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22〉 〈뷰티풀 마인드〉

한 천재 수학자의 파란만장한 일생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천재의 스토리에 매혹당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의 의학자 롬브로소(Cesare Lombroso, 1835~1909)의 말마따나 “위대한 천재 한 명의 출현은 평범한 자 백 명의 출생보다 훨씬 더 낫다”고 무의식중에 여기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국 작가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1728~1774)의 풍자적인 표현대로 “진짜 천재들은 줄타기를 한다. 그들이 매우 자주 추락할 뻔한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의 즐거움”인 까닭일까.

러셀 크로우 주연의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감독 론 하워드, 2001)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어느 천재의 이야기다. 1949년 27쪽짜리 논문 하나로 150년 동안 지속돼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 1928~2015)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위대한 천재 한 명의 출현이 학계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뷰티풀 마인드〉의 메가폰을 잡은 론 하워드는 리얼한 화재 현장과 소방관 형제의 끈끈한 우애를 다룬 영화 〈분노의 역류〉(1991)로 스타덤에 올랐던 감독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제74회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작품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제니퍼 코넬리), 각색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1998년 발간된 실비아 네이사의 전기 《뷰티풀 마인드: 수학 천재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존 내쉬의 일생》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에 미스터리적 구성 가미

원작은 일반적인 전기 형식을 띠고 있으나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각본을 맡은 아키바 골즈먼은 원작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휴먼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스터리적 구성으로 존 내쉬의 삶을 재구성했다. 특히 영화 속 예상치 못한 반전과 심리극에 버금가는 치밀한 심리 묘사로 존 내쉬의 삶을 모티프로 한 철저한 픽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존 내쉬가 지금은 조현병이라 불리는 정신분열증을 앓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쉬는 1958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수학계의 노벨상과 같은 필즈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을 못하고, 이 무렵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다가 1959년 조현병 진단을 받고 MIT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관객들은 골드스미스의 말처럼, 한 천재가 줄타기를 하듯 자주 추락의 위험을 넘기며 위태롭게 인생을 이어가는 모습을 여실히 지켜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묘사되듯 그는 환각과 망상 증세를 보인다. 환각은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맡을 수 없는 감각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 보거나 잘못 듣는 ‘착각’과 달리, 아예 없는 소리나 물체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환각이다. 망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증상인데, 다른 사람이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하며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피해망상이 대표적이다.


실존 인물 존 내쉬의 ‘균형이론’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1947년, 엘리트들이 모이는 프린스턴대학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입학 전형도 따로 치르지 않고 장학생으로 입학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한 천재가 캠퍼스를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너무 내성적이고 무뚝뚝해 보이며, 오만하다 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수학과의 존 내쉬(러셀 크로우)다. 비둘기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풀어보려는 엉뚱한 시도를 하고, 창조성을 죽인다며 정규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는 괴짜다. 뛰어난 두뇌를 지닌 그는 기숙사 유리창을 노트 삼아 수학계의 고난도 문제들을 푸는 작업에 매달린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들른 술집에서 금발 미녀를 둘러싸고 벌이는 친구들의 경쟁을 지켜보던 존 내쉬는 섬광 같은 직관으로 ‘균형이론’의 단서를 발견한다. 술집에 다섯 명의 여학생이 들어왔다. 이 중 금발 미녀는 단 한 명. 애덤 스미스의 이론, 즉 ‘경제적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최고로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는 명제에 따르면 남학생 다섯 명 모두 금발 미녀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와 짝이 될 수 있는 건 한 명뿐이니 네 명은 금발을 제외한 나머지 여학생과 짝을 이뤄야 한다. 하지만 ‘꿩 대신 닭’처럼 자신이 ‘대타’로 선택된 것을 아는 여학생들이 과연 이들을 반기겠는가.

내쉬는 생각한다. ‘아예 처음부터 남학생들이 서로 다른 여학생을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무도 금발을 넘보지 않으면 남학생들은 다 이기는 셈’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커플들의 탄생을 통해 누구 하나 감정 상하는 일 없이 전체적으로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차피 금발 여학생과 짝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굳이 그 여학생에게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쉬는 아담 스미스의 이론, 즉 ‘최고의 이익은 개개인이 그룹 안에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달성된다’는 이론은 틀렸다면서 ‘최고의 결과는 자기 자신은 물론 소속된 집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실현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장해서 27쪽의 논문으로 완성해 제출하고, 지도교수는 논문의 진가를 알아본다.


대인관계에 서툰 천재의 사랑법


1949년 길지 않은 논문을 발표한 스무 살의 청년 존 내쉬는 하루아침에 학계의 스타로,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떠오른다. 실제 아인슈타인은 당시 내쉬가 다니던 프린스턴대학교가 설립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재직 중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프린스턴 학생 시절의 내쉬가 지도교수를 만나서 “아인슈타인 교수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MIT 내 윌러연구소 교수로 승승장구하던 내쉬에게 정부 비밀요원 윌리엄 파처(에드 해리스)라는 인물이 찾아온다. 그는 당시 냉전시대 최고의 엘리트들이 그러했듯 내쉬에게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를 강권했다. “암호 해독이 곧 애국이다. 당신의 탁월한 수학 능력으로 애국하라”는 취지였다.

파처의 안내를 받아 거대한 비밀 건물로 들어가 보니 요원들이 첨단 기기를 동원해 비밀 첩보 수집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쉬는 이곳에서 팔뚝에 특수 칩을 이식받는다. 이후 그는 잡지, 신문 등 대중 간행물을 샅샅이 뒤지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소련의 비밀 암호를 알아내고, 해독 내용을 작성한 보고서를 지정된 저택 내부의 우편함에 넣고 돌아오는 일을 비밀리에 지속한다. 그러는 사이 내쉬는 자신의 수업을 듣던 제자 알리시아(제니퍼 코넬리)와 사랑에 빠진다. 대인관계에 서툴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돼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인 그의 굳게 닫힌 마음을 알리시아는 따뜻한 사랑으로 녹인다.

알리시아: 우주는 얼마나 커요?
내쉬: 무한하지.
알리시아: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쉬: 모든 자료들이 우주가 무한다는 걸 보여주니까 알지.
알리시아: 하지만 아직 입증도 안 됐잖아요.
내쉬: 안 됐지.
알리시아: 우주를 본 적도 없고.
내쉬: 없지.
알리시아: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무한을 확신하죠?
내쉬: 본 적은 없지만 그냥 믿을 뿐이야.
알리시아: 내 생각엔 사랑도 똑같아요.


둘은 결혼에 성공하고, 내쉬는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간다. 하지만 그는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생각에 점점 사로잡혀 가고, 강의 시간엔 극도의 불안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기도 한다. 사실 존 내쉬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상태로 대학원 시절부터 방치되면서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그는 24시간 살해 위협을 받는 듯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아내도 염려하기 시작한다.

결국 내쉬는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강연을 하던 도중 소련의 특수요원들이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공포심에 도망치지만 실제 그를 붙잡으려 한 사람들은 정신과 전문의 로젠(크리스토퍼 플러머)이 이끄는 정신병원 팀이었다. 정신과 상담실에서 로젠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내쉬의 눈에는 찰스가 나타난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찰스가 실제 인물이 아니고 존 내쉬의 환상 속 허상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현실과 망상의 두 축


〈뷰티풀 마인드〉의 촬영 방식은 일반적인 방식과 달랐다. 러셀 크로우는 감독에게 시간순으로 찍어가는 촬영을 제안했다. 서서히 분열하면서 무너져내리는 존 내쉬의 내면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3개월에 걸쳐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촬영했다. 한쪽 축으로는 망가져가는 주인공이 있고, 다른 한 축으로는 그 주인공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인물들이 마치 실제 사건 전개처럼 등장한다. 이러한 촬영 기법을 통해 영화는 상당히 긴 러닝 타임 동안 두 개의 축이 빚어내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찰스와 미사가 허구의 인물임이 밝혀진 뒤에도 관객 입장에서는 파처 또한 내쉬의 망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게끔 연출해놓았다.

알리시아는 온갖 암호 해독문과 신문 기사들을 오려 붙인 내쉬의 연구실 모습에 경악하고, 그가 드나든 저택과 우편함이 폐허 더미인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소련의 음모 같은 건 없어. 우편물은 개봉도 안 됐어”라며 내쉬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이후 영화는 존 내쉬의 정신분열증 극복을 위한 분투를 차분하지만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약물 때문에 수학 연구를 지속할 수 없게 되자 내쉬는 약 복용을 중단하고, 다시 환각에 시달린다. 이를 지켜보는 알리시아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지만, 그럼에도 남편 곁에 머문다. 알리시아의 적극적 조언으로 학교 강단으로 돌아온 내쉬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새로운 이론이 비협력 게임 이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아내 역 제니퍼 코넬리의 내공


영화는 ‘내쉬의 균형이론은 국제 무역 협상과 국제 노동문제, 심지어 진화생물학에도 영향을 미쳤다’라는 엔딩 자막을 통해 내쉬가 30년에 이르는 정신분열증과의 싸움에서 극적으로 승리해 노벨상 수상에까지 이르렀음을 전하고 있다. 135분에 이르는 영화에서는 따로 묘사되지 않았지만 사실 존 내쉬는 알리시아와 이혼 후 재혼했고, 두 사람은 2015년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인상적인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는 러셀 크로우는 자기만의 존 내쉬를 창조하기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실존 인물 내쉬를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만만치 않은 연기의 내공을 보여준 이는 알리시아 역의 제니퍼 코넬리다. 한때 천재 소리를 들었다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워낙 주연의 비중이 큰 영화에서 코넬리는 섬세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자신의 몫을 다했다.

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영화 말미에서 존 내쉬(러셀 크로우)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1994년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단에 선 그는 관중 앞에서 수락 연설을 발표한다. 객석에서는 아내 알리시아(제니퍼 코넬리)가 지켜보고 있다.


존 내쉬: 전 언제나 숫자를 믿어왔습니다. 추론을 이끌어내는 방정식과 논리를 말이죠. 하지만 평생 그것들을 연구한 저는 묻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논리입니까? 누가 이성을 결정하는 거죠? 저는 그동안 물질적 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 망상의 세계에 빠졌다가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 소중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입니다. 어떠한 논리나 추론도 사랑이라는 신비한 방정식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관객석의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난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존재의 이유예요. 감사합니다.

Nash: I’ve always believed in numbers, in equations, in logic and reason. But after a lifetime of such pursuits: I ask what truly is logic? Who decides reason? My quest has taken me to the physical, the metaphysical, the delusional, and back. I have made the most important discovery of my career-the most important discovery of my life. It is only in the mysterious equations of love that any logic or reasons can be found. I am only here tonight because of you. You are the reason I am. You are all my reasons. Thank you.

제니퍼 코넬리가 열연한 알리시아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장면들 덕분에 러셀 크로우의 이 연설은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꽤 진한 감동을 안긴다.
노년에 이른 알리시아의 얼굴 분장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것은 이 영화의 옥에 티다.
  •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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