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21〉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공포가 만연한 현실에서 묻다 ‘정의란 무엇인가’

혹시 ‘political apathy’라는 영어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지. 그렇다, ‘정치적 무관심’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현대화하고 선진화할수록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덜 갖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 사회의 극심한 피로감이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사생활에서 평안한 휴식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따라 번영된 사회 내에서 사적인 관심과 야망이 ‘이상(理想) 사회’를 대신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람들이 정치 같은 공공(公共)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보다 삶을 즐기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저속한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영화·연극·스포츠 등과 같은 대중오락 또한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긴다.

정치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다음 질문에 대답해보자.

Q. 한국 대통령의 임기는 ( )년이며, 연임이 (가능, 불가능)하다.

너무 쉬운가?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잘 알다시피 5년 단임제를 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Q.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 )년이며, (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치적 무관심층임이 분명하다.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의 운명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제는 4년 임기에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최근 버락 오바마가 그랬듯, 최대 8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그런 미국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있었으니 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다. 학창 시절에 배웠듯,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역대 대통령 설문에서 늘 상위에 랭크되는 루스벨트는 열세 편의 연두 연설을 했는데, 그중 1941년 1월 6일 ‘네 가지 자유’ 연설은 명연설로 손꼽힌다.

“제1의 자유는 말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것입니다. 제2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신을 경배하는 자유입니다. 이것도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일입니다. 제3의 자유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을 세계적인 규모에서 생각한다면 모든 나라가 그 국민을 위해 건강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보장하는 경제적인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전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제4의 자유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을 세계적인 규모에서 생각한다면 세계적인 군축이 철저히 추진되고, 어떠한 나라에도 인접국에 대해 물리적 침략 행위를 계획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도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루스벨트의 언명이 있은 지 77년이 흐른 지금, 언론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는 우리 귀에도 익숙한 내용이다. 경제적 권리나 자유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네 번째 ‘공포에서 벗어날 자유(freedom from fear)’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톱 4’에 넣어야 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내용인 것인가.


남미의 마약 카르텔이 소재


현재 캐나다를 대표하는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Sicario, 2015)는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악몽 그 자체’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또한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기본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정치적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 산재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 ‘시카리오(sicario)’는 살인 청부업자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영어권에서는 특히 남미의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을 언급할 때 쓰인다. 이 영화의 배경인 멕시코에서 시카리오는 암살자(hitman)라는 뜻으로 통한다. ‘단검(sica)을 든 자들’에서 유래해 암살자를 뜻하게 된 라틴어 ‘시카리우스(sicarius)’가 어원이다.

납치 사건 전담 부서를 이끄는 미연방수사국(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인 소노라 카르텔에 납치당한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동료들과 애리조나주로 출동, 카르텔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한 건물을 급습한다. 총격전 끝에 그들이 찾은 것은 억류 중인 인질이 아니라 마약 조직이 살해한 뒤 벽 안에 은닉해둔 신원 미상의 시신 수십 구였다.

사건 발생 후, 파트너인 레지(다니엘 칼루야)와 함께 FBI 사무실로 호출받은 케이트는 자신의 직속상관들이 미중앙정보국(CIA) 소속 맷(조슈 브롤린)과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맷은 케이트에게 미국 정부가 꾸린 특별수사팀 합류를 제안한다.

케이트는 애리조나주의 루크 공군기지에서 전용기를 타고 맷과 그가 작전 컨설턴트로 섭외한 정체불명의 인물 알레한드로(베니시오 델 토로)와 함께 이동하지만 이들은 케이트에게 아무런 내용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본래 케이트가 통보받았던 행선지인 미국령 엘패소가 아닌 멕시코 영토인 시우다드후아레스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들은 육군의 대테러 부대인 델타포스, 연방 보안관들과 함께 용의 선상에 오른 소노라 카르텔 간부 기예르모를 멕시코 영내에서 미국까지 호송하는 작전을 편다.

에밀리 블런트가 열연한 케이트는 가녀린 체구에도 불구하고 신입일 때부터 현장에서 뛰어 경험이 출중하고 배짱도 두둑한 FBI 요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법과 정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주의자로 이 영화에서 ‘도덕적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케이트조차 멕시코 후아레스에서 진행하는 작전은 지극히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작전의 이면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케이트는,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작전에 이끌려가며 당혹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인물인 셈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수사는 법의 테두리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케이트의 원칙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려는 맷 그리고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작전에 개입한 알레한드로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베니시오 델 토로의 ‘미친 존재감’


베니시오 델 토로의 미친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 알레한드로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된다. 공식적인 신분은 미 국방부 소속 고문관이지만 미국인도 아니다. 공군기지에 처음 등장했을 때 맷은 케이트에게 알레한드로를 ‘사냥개’라고 소개했고, 극이 진행되면서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자신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왔다고 밝힌다. 이에 케이트는 그가 콜롬비아 정부에서 파견한 요원일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알레한드로는 또 다른 마약 조직인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과 관련을 맺고 개인적인 복수를 목적으로 이번 작전에 참여했다. 그는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의 지방 검사였다. 영화에서는 범인을 법원까지 이동하는 도중 후아레스의 살벌한 광경이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고가도로 난간에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들을 보란 듯이 매달아놓는, 폭력과 공포가 숨 쉬는 공기처럼 감싸고 있는 곳이다. 벌건 대낮에도 어디선가 총성이 쉼 없이 울리는 생지옥인 이곳에서 마약 조직과 대척점에 있는 검사직을 수행했던 알레한드로는 소노라 카르텔에 의해 부인이 머리가 잘리고 딸은 염산 통에 던져져 잔혹하게 살해당한 처참한 가족사를 지닌 인물이다. 소노라 카르텔에 복수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 고용되든 상관하지 않는 ‘괴물 잡는 괴물’이 된 알레한드로는 또 다른 마약 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을 통해 CIA까지 연줄이 닿아 고용된 상태다. 복수의 대상인 소노라 카르텔 보스가 바로 CIA가 노리는 작전 목표물이었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케이트의 분노가 극에 이르러 작전 수행에 차질을 빚자, 맷은 애초부터 이 작전의 목표는 카르텔을 합법적으로 응징하고 마약 범죄를 박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이 작전의 진짜 목적은 통제 불능의 강력 범죄를 일으키며 광범위하게 마약을 유포하는 소노라 카르텔의 보스를 ‘암살’이라는 비합법적 수단으로 제거한 후, 그 자리를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 정부, CIA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적당한 수준의 사업을 폈던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에 넘겨주기 위한 공작이었던 것이다.

맷은 “세계 인구의 20%를 설득해서 마약을 끊게 할 수 없다면 질서가 최선이며,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곳”이라고 주장한다. FBI 소속의 케이트를 합류시킨 이유도 미국 영토 내에서 CIA와 미군만으로 활동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국내 담당인 FBI 요원의 동행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선도 93%의 평점


말하자면 이 영화는 카르텔 소탕이라는 플롯 속에서 미국의 정의와 원칙을 상징하는 FBI와 법이 작동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에서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CIA의 대립을 보여줌으로써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본질과 모순을 은유하고 있다. 또한 압도적인 폭력과 공포에 의해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영화가 묘사한 멕시코 후아레스 지역은 영화적 흥미를 위한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납치, 감금, 살해 등 끔찍한 범죄와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후아레스 현지에서 촬영할 경우 출연진과 제작진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정도여서 미국 뉴멕시코와 엘 파소 그리고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등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후아레스 지역의 실제 현실은 공중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연출이 오히려 국경 하나만을 사이에 둔 미국령 엘 파소와 후아레스의 일상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대표적인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3%를 받은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물이라는 상업영화로는 드물게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촬영상, 음악상, 음향편집상 후보, 제69회 영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베니시오 델 토로), 촬영상, 음악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미국 방송영화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제21회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Critics’ Choice Movie Awards)에서 작품상, 액션영화상, 액션영화 여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심장 박동 같은 효과음은 영화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훌륭한 도구로 작용했다.


폭력과 공포의 속성을 묻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알레한드로가 미군 정찰기의 지원을 받으며 소노라 카르텔 보스 파우스토의 저택에 잠입하는 장면이다. 조직 참모들을 적절히 이용한 뒤 모두 죽이고 대저택 경호원들까지 사살한 알레한드로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파우스토 가족들과 조우한다.

알레한드로를 알아본 파우스토가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알레한드로는 “내게는 개인적 감정이야”라고 답한 뒤 “이제 신을 만나러 갈 시간”이라며 파우스토의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순식간에 쏴 죽이고 가족의 충격적 살해를 목도한 파우스토에게도 총격을 가한다.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이 압도적 신 또한 부패한 범죄 집단을 불법적으로 응징하는 것이 과연 정의의 실현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마약 조직과 공생하다 살해당한 멕시코 부패 경찰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멀리서 들리는 총성을 들으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보는 이의 숨통을 쥐고 끈질기게 폭력과 공포의 속성을 탐구하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분할 없이 촬영된 와이드 앵글과 광대한 영역을 커버하는 부감(俯瞰) 숏, 질기게 이어지는 감정선에 꼭 들어맞는 사운드로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정점의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120분짜리 영화 한 편이 멕시코라는 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놓을 수 있는 ‘섬뜩한’ 사례다.

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CIA 소속인 맷 그레이버의 연이은 불법적 작전 행태를 목도한 케이트는 FBI 상관인 필 쿠퍼스와 데이브 제닝스를 만나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들은 케이트에게 뜻밖의 조언을 던진다.



필 쿠퍼스: 맷 같은 고문관들이 개입해서 단지를 휘저어 범죄자들의 반응과 실수를 유도하지.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이번 싸움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지. 그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자신의 부하를 믿지 못하게 되고, 그들의 돈을 움직이게 되지. 이들 모두 공격 기회들이지. 맷 같은 사람들이 노리는 게 바로 그거지.
Advisors like Matt come in, they stir the pot, they cause the criminals to react and make mistakes. That's how we build cases against the individuals that actually make a difference in this fight. It’s when they’re nervous, when they stop trusting their crews, when they move their money. These are all opportunities to strike. And that’s the purpose of people like Matt.

데이브 제닝스: 케이트, 이번 일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야. 나는 고문관을 고용하고, 합동 비밀작전을 허가하고, 공군기지에서 요원을 급파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 내 말 이해하겠나? 이 모든 결정은 저 위에서, 자리에 지명된 사람이 아니라 선출된 이들에 의해 이뤄진 거라고.
Kate, this isn’t something that I dreamed up myself. I don’t have the authority to hire advisors, or authorize joint agency missions, or fly agents from Air Force bases. Are you understanding me? These decisions are made far from here, by officials elected to office, not appointed to them.

다시 말해, 맷이 이끄는 팀이 비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이는 맷의 독단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거로 선출된 높은 분들(아마도 대통령을 포함한)의 뜻에 의해 실행 중인 작전이라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케이트에게 말하고 있는 장면이다.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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