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복서, 드미트리 비볼(Dmitry Bivol)

국내 복싱 팬덤 일으킬까?

© Dmitry Bivol instagram
1·4후퇴 때 피란 내려온 김기수는 6·25전쟁이 터지고 정확하게 16년이 지난 1966년 6월 25일 밤 9시 18분,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이탈리아의 권투 영웅 니노 벤베누티(Nino Benvenuti)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WBA(World Boxing Association, 세계권투연맹) 주니어미들급 세계 챔피언을 두고 맞붙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남짓하던 때였다. 벤베누티가 요구한 대전료는 5만 5000달러.

자신감이 넘쳐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 벤베누티는 한 시간도 안 돼 홍 코너에 주저앉아 힘없이 손을 저었다. 2 대 1 판정승이었다. 장내는 김기수의 땀과 터지는 박수로 뒤범벅됐다. 얼굴이 퉁퉁 부은 김기수는 울고 있었다. 한국 권투 사상 첫 세계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고등학생이던 홍수환은 이 카퍼레이드를 보며 인생을 결정했다. 8년 뒤인 1974년 홍수환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Durban)에서 국제전화로 어머니와 통화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어머니가 화답했다.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2007년 이후 세계 챔피언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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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0~80년대는 한국 복싱의 눈부신 전성기였다. 변변한 스포츠 종목도 얼마 없던 그 시절에 한국 복싱은 세계 챔피언을 끊임없이 배출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김기수, 홍수환이 세계 챔피언이 된 이래 유제두, 박종팔, 유명우, 최용수 등의 WBA 세계 챔피언과 염동균, 장정구, 박찬희, 문성길, 조인주, 최요삼 등의 WBC(World Boxing Council, 세계권투평의회) 세계 챔피언을 줄줄이 배출했다.

1980년대까지 큰 인기를 얻은 한국 복싱은 생활 수준이 좋아지고 ‘위험한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세계 챔피언은 2007년 7월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지인진을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복싱 마니아들이 꺼낸 이름이 게나디 게나데비치 골로프킨(Gennady Gennadyevich Golovkin)이었다. 일명 ‘GGG(트리플 G, 이름의 영어 앞 글자를 딴 별명)’로 불린 그는 한국계로 2018년 9월 멕시코의 사울 카넬로 알바레스(Saul Canelo Alvarez)에게 0 대 2 판정패(113-115, 113-115, 114-114)를 당할 때까지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복서였다. 경북 포항 출신인 어머니 엘리자베스 박에게서 자란 골로프킨의 무패가 깨지자, 복싱 팬들은 또 다른 한국계 무패 챔피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주인공이 드미트리 비볼(Dmitry Bivol)이다.


몰도바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드미트리 비볼은 몰도바인 아버지와 고려인 핏줄 어머니 사이에서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가 1900년대 초반 만주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오셨어요. 그때 같이 넘어온 한국인들과 키르기스스탄에 정착했는데 몰도바인 아버지와 한국인 핏줄인 어머니가 만나 저를 낳았습니다.”

어렸을 때 성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무술을 배웠다는 그는 여섯 살 때부터 권투를 시작했다. 268승 15패라는 놀라운 아마추어 성적을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2016년 무패 행진 중이던 펠릭스 바레라(Felix Varela)를 만장일치 판정으로 누른 후 WBA 세계 라이트헤비급에 이름을 올린 그는 2017년 2월 로버트 벨릿지(Robert Bellidge)와 사무엘 클락슨(Samuel Clarkson)을 연속으로 물리치며 WBA 세계 라이트헤비급의 핵주먹으로 떠올랐다. WBA는 그해 9월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인 안드레 워드(Andre Ward)가 은퇴하자 해당 체급 랭킹 1위인 드미트리 비볼을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시켰다. 비볼은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비볼의 한국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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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9년 3월 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터닝 스톤 리조트 특설 링에서 진행된 조 스미스 주니어(Joe Smith Jr)와의 WBA 라이트헤비급 7차 방어전은 그의 인생 경기로 꼽힐 만했다.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도 냉정한 운영으로 12라운드 경기를 주도해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이날 승리로 비볼은 16전 16승(11KO)으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하프 코리안’인 비볼의 한국 사랑은 각별하다. 그가 훈련하는 체육관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자신을 지도하는 트레이너도 한국인 핏줄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국수 등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다. 이날 경기가 처음으로 한국에 중계방송 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뉴욕에서 경기할 때 찾아준 한국 분들께도 많이 감사했는데, 한국에 생중계가 된다니 더 한국에 가까워진 것을 느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속된 말로 약간 ‘오버’로 보일 만큼의 애정표현 때문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한국인 핏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그는 “한국인 피가 섞여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로 일축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2차 대전 중 일본에 큰 피해를 입었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한국전쟁으로 어려운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외할아버지도 한국에서 만주로,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했고요. 나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런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빠른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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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볼의 가장 큰 매력은 빠른 속도의 펀치에서 나오는 화끈한 공격력이다. 가장 존경하는 슈거 레이 레너드(Sugar Ray Leonard)를 배우려 노력했다. 레너드는 현란한 발놀림과 빠른 주먹으로 1980년대 복싱계를 풍미하며 ‘20세기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웰터급)을 따며 유명해진 레너드는 1997년 은퇴할 때까지 5개 체급을 석권하며 로베르토 듀란(Roberto Duran), 마빈 해글러(Marvin Hagler)와 함께 70~80년대 최고의 복서로 평가받았다.

“슈거 레이 레너드와 로이 존스 주니어(Roy Jones Jr)를 존경합니다. 두 선수는 화려한 테크닉에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를 무기로 많은 선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지요.”

그는 한국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 팬들이 저를 보면서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경기가 끝나면 팬들이 ‘복싱 정말 잘하네’라고 칭찬해주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골로프킨 못지않은 스피드와 강력한 펀치, 골로프킨보다 더 한국적인 외모를 가진 그는 국내 복싱 팬덤(fandom)을 일으킬 것이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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