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도시〉 작가 정뱅

‘블랙 코미디’ 웹툰의 정수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작년 이맘때쯤 네이버에 새로운 웹툰이 올라왔다. 정장 차림의 중후한 남성이 일명 ‘귀요미’ 포즈를 짓고 있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썸네일이었다. 제목은 〈암흑도시〉. 무거운 분위기의 느와르 웹툰인 줄 알았다. 시작 멘트도 ‘피와 살이 튀는 암흑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기’. 무시무시했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시나브로 생각이 바뀌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스토리, 소위 ‘병맛’이라고 불리는 개그, 그 속에 숨어 있는 사회 풍자. 대작의 냄새가 났다.
2018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연재된 〈암흑도시〉는 ‘동북연합회’ 조직원의 조직과 일상생활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암흑도시〉는 연재 시작부터 평점 9.9를 받으며 순식간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암흑도시〉의 유행어 ‘스왈로부스키짓’으로 대변되는 개그는 ‘네이버 웹툰 최고의 마약 중 하나’라는 칭송을 받았다. ‘스왈로부스키짓’은 극중 캐릭터 ‘스와가라 유스케’의 별칭으로 선을 넘어 오버하는 행동을 뜻한다. 작가가 궁금했다. 홍익대 부근에서 작가 정뱅(본명 정병주)을 만났다.

서대문 근처의 달동네. 정뱅 작가의 어린 시절 향수가 묻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동네 친구들과 뛰놀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중학생 때 어머니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집안이 휘청거렸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정뱅 작가는 이때 만화가라는 꿈을 품었다.

“학원을 안 다니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수업도 잘 따라가지 못하겠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수업을 안 듣고 교과서 구석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고 있으면 필기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선생님도 뭐라고 안 하셨죠.(웃음) 점점 만화 그리는 게 재미있었고, 만화가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만화가 되려 전신 마취 후 다한증 수술


만화가라는 꿈을 정했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다한증이 있어 손에 비정상적으로 땀이 많이 났다. 태블릿이 없었던 당시, 종이에 만화를 그려야 했기에 다한증은 치명적이었다. 전신 마취로 다한증 치료 수술을 받았고, 치료도 잘 됐다.

“수술을 받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사업에 대한 열망이 일었어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해봤는데 잘 안 됐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아이돌 지망생을 한국 연예 기획사에 소개하는 에이전시 사업을 했는데 이것도 실패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했어요. 사업에 재능도 없고, 노력도 별로 안 했으니까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원점에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왔을 즈음, 한국 웹툰 시장이 커가는 게 보였다. 그는 만화가의 꿈을 다시 꺼내 웹툰에 도전했다. 네이버 ‘도전만화’ 섹션에서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3개월 만에 다음 단계인 ‘베스트 도전’으로 승격했다. 수월하게 웹툰 작가로 데뷔하기를 기대했지만 정식 연재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는 만화를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가르쳐주는 게 없었어요. 게다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죠. 한국만화영상진흥회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2년 정도 일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 또다시 막막했어요. 나이가 있으니 신입 사원으로 입사도 못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안 보였어요. 보습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병행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랙 코미디 취향이 낳은 인기작


정뱅 작가는 ‘DC 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에 웹툰 하나를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기세를 몰아 ‘2017년 네이버 최강자전’에 지원했다. 예선 탈락했지만 네이버 웹툰 담당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됐다. 이후 네이버 도전만화를 거쳐 정식 연재까지 할 수 있었다. 이 웹툰이 바로 〈암흑도시〉다.

“원래 판타지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가벼운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시작은 〈암흑도시〉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협상’이었어요. 조폭 세력의 수장들이 모여서는 뻘짓하는 이야기였죠. 주변에 반응을 물어보니 괜찮았어요. 어릴 때부터 블랙 코미디를 좋아했고, 이런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왔어요. 〈이나중 탁구부〉, 〈디트로이트 메탈시티〉 같은 성인 개그 만화, 스탠드업 코미디, 〈데드풀〉 같은 영화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개그의 원천은 개성 있는 캐릭터다. 〈암흑도시〉의 주인공인 동북연합회 회장과 조직원들은 현실 세계와 천국, 지옥을 넘나들며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뱅 작가만의 날카로운 풍자도 돋보인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풍자 웹툰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한 모금을 선물한다.

“점점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깁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삼겹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해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귀귀 작가님이 ‘투믹스’에서 연재한 〈뉴 바이블〉처럼 직접적인 풍자가 녹아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풍자라는 방법을 택했지만, 잔인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품도 해보고 싶습니다.”


〈암흑도시〉를 통해 웹툰 작가로 성공적으로 정착한 그에게 데뷔작을 끝낸 소감을 물었다. 그는 아쉬움이 짙게 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암흑도시〉는 에피소드 형식이잖아요. 하나하나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연재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운영자 측에서도 준비를 더 한 후 연재하자고 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연재를 서둘렀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재에 대한 압박과 부담감이 너무 커서 급작스레 완결하게 됐어요. 후련한 마음은 별로 없고 아쉬운 마음이 커요.”

인터뷰 말미, 그와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암흑도시〉의 독자이기도 한 기자에게 정뱅 작가는 여러 질문을 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차기작 소재를 구하기 위해 책과 영화를 섭렵하는 중이라고 했다. 누구나 알 만한 작품을 남기는 게 꿈이라는 정뱅 작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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