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돌이 이강인

메시, 호날두, 루니처럼… 17세에 유럽 데뷔전 치른 축구 천재

아버지에게 ‘태권도 정신’을 배운 어린 소년은 가족의 희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다. 또래보다 일찍 철든 소년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 축구 유망주로 성장했다.
지난 2018년 8월 레버쿠젠과의 친선 경기에서 득점한 이강인이 양팔을 벌리고 세리머니하는 모습. © 조선DB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는 20세기 스페인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십수 년 전 주말 저녁 많은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토요명화 시그널을 기억할 것이다. 짜자자잔~짜자자잔♪ 로드리고의 대표곡 〈아랑후에스 협주곡〉(제2악장 아다지오 도입부)이다. 그의 기타 곡들은 부드럽게, 그러나 강렬하게 청중을 매료하는 힘으로 흡사 발렌시아 주(州)의 지중해 해변을 뛰노는 한 떼의 말들을 떠올리게 한다.

로드리고의 고향인 이곳엔 1919년 창단한 프로축구 클럽 발렌시아가 있다. 프리메라리가(1부 리그)에서 항상 톱 랭크되는 이 팀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스페인의 3대 명문이다.


명문 발렌시아 ‘최연소’ 외국인 선수 기록 갈아치워

발렌시아는 창단 이후 리그 6회, 국왕컵 7회, 유로파리그 1회 우승 등의 업적을 쌓았다. 최근 이 명문 구단의 ‘최연소’ 외국인 선수 기록을 갈아치운 주인공은 한국인 만 17세 소년이다. 2019년 1월 13일 0시 15분(한국 시각) 스페인 발렌시아 캄프데메스타야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라리가·스페인 프로축구 1부 리그) 19라운드 레알 바야돌리드전에 만 17세 327일의 나이로 출전한 이강인 얘기다. 이전 최연소 기록은 지난 2003년 데뷔한 모모 시소코가 보유한 만 18세 7개월이었다.

만 17세 데뷔는 축구계에서 성공으로 가는 등용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그의 영원한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만 17세에 데뷔전을 치렀다. 메시가 2004년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정규 리그 데뷔전을 치렀을 때 나이도 17세였다. 호날두는 만 16세에 스포르팅 CP 1군에 호출됐으나 1군 공식 경기는 2002년 10월 만 17세가 된 후 뛰었다. 영국 축구 스타 웨인 루니도 에버턴 1군 공식 데뷔전을 뛴 것이 2002년 4월 만 17세 때였다.

앞서 이강인은 2018년 10월 17세 253일의 나이로 스페인 국왕컵 32강전을 뛰며 한국인 최연소 유럽 1군 경기 데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종전 기록은 2009년 프랑스 리그앙(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 발랑시엔에서 뛴 남태희가 보유한 만 18세 36일이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발렌시아에서 아시아 선수가 라리가와 국왕컵에서 1군 경기를 치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발렌시아는 1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한국 축구 기대주 이강인을 1군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지금까지 이강인은 등번호 34번을 달았지만 정식 1군 선수는 25번 이내의 번호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16번으로 바꿨다. 구단은 지난해 7월 이강인과 2022년 6월 30일까지 재계약하면서 타 구단에서 허락 없이 이강인을 데려갈 수 있는 바이아웃(buyout) 금액으로 8000만 유로(약 1020억 원)를 책정했다. 이강인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 것이다.


떡잎부터 남달라

KBS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 출연 당시 이강인(왼쪽). © 조선DB
이강인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이미 6세 때 2007년 KBS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를 통해 ‘축구 원석’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한준희 위원의 이야기다.

“여섯 살 아이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처럼 또래들 다섯 명을 제치면서 ‘메시 놀이’를 했다. 원래 ‘날아라 슛돌이’는 1 대 50으로 질 정도로 약체 팀이었는데 그 아이가 가세한 뒤엔 반대로 50 대 1로 이기기도 했다.”

실제 ‘날아라 슛돌이’ 팀은 축구를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두 자릿수 대패를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강인이 가세한 뒤로는 오히려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 중 한 명인 유상철 감독은 이강인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유 감독은 ‘날아라 슛돌이’ 팀의 감독으로 출연했다.

“강인이와 아크 부근에서 골대 맞히기를 했다. 나는 두 번 중 한 번만 성공시킨 데 비해 꼬마 이강인은 왼발 킥으로 두 번 모두 크로스바를 맞혔다. 강인이는 왼발 킥, 드리블 등 내가 가르치는 걸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였다.”


마라도나를 좋아했던 아버지

이강인은 2009년 K리그 인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공을 찼다. 태권도 사범이자 마라도나를 좋아하는 축구광이었던 아버지 이운성 씨는 결정을 내렸다. 남다른 재능의 아들을 위해 온 가족이 축구 강국 스페인으로 건너간 것이다.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팀 알레빈 C에 입단한 이강인은 빠른 적응을 위해 전자사전을 일부러 집에 두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태권도 사범인 아버지에게 ‘태권도 정신’을 배운 덕분인지 어린 나이에도 절제를 알았고, 스페인 학교에선 단 한 과목도 낙제를 받지 않았다.

스페인 언론 《수페르데포르테》는 이강인에 대해 이렇게 썼다.

“No todos los niños de diez años soportan el peso de ‘mantener’ a una familia(모든 열 살짜리 소년이 가족의 희생에 대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orque aunque era muy joven, ya era consciente de todo lo que había hecho su familia por él(하지만 그는 가족의 희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이강인은 스페인에서도 나이별 유소년팀의 에이스 역할을 도맡으며 각종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휩쓸었다.


이강인의 최대 장점

발렌시아 이강인이 2019년 1월 13일(한국 시각) 라리가 레알 바야돌리드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 © 조선DB
이강인의 최대 장점은 상대 선수 두세 명을 가볍게 제칠 수 있는 발기술이다. 여기에 프리킥 능력도 탁월하다.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세트피스 상황이 발생하면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골망을 자주 흔들었다. 동료를 활용하는 패스 플레이도 출중하다. 넓은 시야를 갖춰 흔히 말하는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쉽게 구사한다. ‘축구 지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강인은 전 세계 축구계에서 ‘특급 유망주’로 꼽힌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등 내로라하는 명문 구단의 레이더망은 그를 주목하고 있다.

2018년 18세 이하(U-18) 대표팀 소집 훈련 전 인터뷰에서 이강인은 “저도 한국 사람인 만큼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다”며 “스페인에서 열심히 훈련해서 앞으로 형들과 함께 한국 축구를 이끌어나갈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축구의 장래는 밝다.
  •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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