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14〉 〈캐스트 어웨이〉

고독이라는 이름의 병

살아가면서 단절감이나 고립감만큼 무서운 것도 드물 것이다.
아이와 청소년들의 왕따가 큰 문제 되는 것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 관계망에서 소외되는 것이 당사자에게 엄청난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1868~1933)도 이렇게 말했다.
“고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이다. 아무리 심한 공포라도 모두가 함께 있다면 참을 수 있지만 고독은 죽음과 같다.”
한 남자가 홀로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분투기를 그린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2000)는 인간의 고립을 그린 영화 중 단연 독보적이다. 관록의 배우 톰 행크스가 원톱을 맡아 인류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를 연기한다. 주변 인물들이 비중 있게 등장하긴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톰 행크스의 1인극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택배회사 페덱스(FedEx)에서 근무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꼼꼼한 분석가로 전 세계에 있는 창고를 방문하며 바쁘게 일한다. 영화는 러시아 모스크바 지부 창고에서 직원들을 모아둔 채 일장 연설을 하는 놀랜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분류 작업을 3시간 안에 끝내시오. 그러지 못하면 우리의 주인인 시계가 우리 밥줄을 끊을 거요.”

그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모스크바로 오기 전 본인의 시계를 택배로 보냈다면서 그 택배를 열어 87시간이 지나 있는 시계를 직원들에게 보여준다. “이게 중요한 서류였다면 운명이 수천 번 뒤집혔을 시간입니다. 서두릅시다.” 보다시피 그는 시간에 아주 민감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러시아 지부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놀랜드는 약혼녀인 ‘켈리 프리어스’(헬렌 헌트)의 가족과 크리스마스 저녁을 함께하던 중 급한 호출을 받고, 말레이시아행 화물 비행기를 타게 된다. 헤어지기 직전 켈리는 할아버지 유품인 회중시계에 자신의 사진을 담아 놀랜드에게 주고, 놀랜드는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 반지를 건네며 정식 프러포즈를 한다.

그러나 놀랜드가 탄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고 폭풍을 피하기 위해 기존 항로에서 200마일 정도 남쪽으로 비행하지만 결국은 바다에 추락하게 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놀랜드는 구명보트에 탄 채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다가 어떤 섬에 떠밀려온다.

정신을 차린 놀랜드는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추락한 비행기 잔해에서 떨어져 나온 택배 상자들을 모아놓는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인적 하나 없는 섬에서 놀랜드는 코코넛 하나를 먹기 위해 돌로 긁고 바위벽에 내던지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한다. 바지를 찢어서 신발도 만든다. 섬을 둘러보던 놀랜드는 사고 당시 같은 비행기에 탔던 직원 한 사람이 파도에 떠밀려온 것을 발견한다. 허겁지겁 달려가 시퍼렇게 퉁퉁 불은 시체를 확인한 뒤 섬에 묻어준다. 이때 작은 손전등과 혁대, 신발을 얻는다.

해안가에 기어 다니는 게를 생으로 먹으며 설사를 달고 살던 어느 날 새벽 놀랜드는 수평선 저 멀리 배의 불빛을 발견하고 무작정 구명정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높은 파도에 구명정이 뒤집히고 그는 바닷속 뾰족한 산호초에 허벅지를 찔려 깊은 상처를 입고 기거하던 동굴로 기진맥진 돌아온다. 동굴 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어둠 속에서 피가 흐르는 다리를 감싼 채 공포와 절망감에 흐느끼는 톰 행크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기력을 회복한 놀랜드는 페덱스 택배 상자들을 뜯어 물건을 확인한다. 흰색 피겨 스케이트, 여자 원피스, 비디오테이프, 배구공 등이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 ‘윌슨(Wilson)’ 제품인 배구공은 어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놀랜드는 불 피우기에 도전한다. 나무 둘을 무작정 비비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손을 크게 다치게 되고 주변 물건들에 화풀이를 한다. 손에 흐르는 피를 대충 감싼 뒤 방금 집어던졌던 배구공에 남겨진 핏자국을 이용해 사람 얼굴 형태를 그려 넣고 윌슨이라 부르며 친구로 삼는다.


드디어 불을 피우는 데 성공한 놀랜드는 게를 구워 먹으면서 윌슨에게 “너는 이 맛을 모를 거야. 코코넛은 지겨워”라고 말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서 무엇에 관한 것이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신적으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제작진은 무인도에서 촬영하는 동안 무엇보다 조명에 신경을 썼다. 그가 불을 피우는 데 성공하는 장면 이전까지는 조명 사용을 자제해, 달빛이 비친다는 상정 아래 최대한 자연광에 가까운 형태로 촬영했다고 한다.

촬영 장소가 무인도이다 보니 필름과 카메라 관리도 고역이었다. 촬영기기는 염분과 먼지가 섞인 바닷바람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적이 전혀 없어야 했기에 스태프들의 발자국을 완전히 지워야 했다.

하나둘씩 무인도 생활에 적응하던 놀랜드는 비행기가 원래 항로를 벗어났던 것을 기억해내며 “수색대가 텍사스 면적의 2배 범위를 커버해야 해. 절대 못 찾을 거야”라고 절망한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터 그를 괴롭히던 충치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그에게 안긴다. 윌슨에게 “내가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치과의사야”라며 진작 치과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정도다. 급기야 놀랜드는 스케이트 날을 사용해 직접 이를 뺀다. 충치에 스케이트 날의 한쪽 끝을 대고 그 반대쪽 끝을 돌로 퍽 쳐서 뽑아낸 뒤 바로 기절한다. 이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라 관객에 따라서는 〈캐스트 어웨이〉를 보고 ‘치과 치료는 절대 미뤄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2.7kg 감량, 면도와 이발도 No!


그러고는 4년이 흘렀다. 놀랜드는 완전히 신석기인의 모습이다.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살도 많이 빠져 말라깽이가 되어 있다. 4년을 살아남으면서 사냥 솜씨도 좋아져 멀리서 던진 작살 한 방에 물고기를 명중시킬 정도다.

제작진은 표류 초기까지의 모습을 찍은 뒤 톰 행크스에게 1년의 기간을 주고, 50파운드(약 22.7kg)의 감량을 요구했다. 면도와 이발도 금지됐다. 오랜 표류 생활로 인해 수척해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톰 행크스가 살을 빼는 1년 동안 감독과 촬영감독은 공포 영화 〈왓 라이즈 비니스〉(What Lies Beneath, 2000)를 촬영했다고 한다.

4년이 흐른 사이 피겨스케이트는 나뭇가지에 묶어 칼이나 도끼 대용으로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고, 여자 원피스의 겉에 달린 망사천은 뜯어서 그물로 쓰고 있다. 무인도 생활 초반에 구멍이 나 못 쓰게 된 보트는 지붕과 방수포로 사용하고 있다. 놀랜드는 약혼자 켈리의 사진이 담긴 회중시계를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

그는 택배 상자 하나는 뜯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영화 말미에 밝혀지지만, 발송인이 수하인에게 보내는 거래상품 명세서인 송장(送狀)이 멀쩡히 붙어 있기 때문이다. 무인도 탈출에 성공해 수하인에게 배달하기 위함이다.

어느 날 놀랜드는 파도에 떠내려온 알루미늄판 하나를 해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해 탈출할 결심을 한다. 실외용 화장실 외벽으로 쓴 물건이다. 이 알루미늄판을 발견하는 장면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포기하지 마라. 자고 일어난 뒤, 파도가 무엇을 가져다주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이다.


배구공 친구 ‘윌슨’의 의미


그는 초반에 겪었던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엔 계절 및 날짜에 따른 바람의 방향까지 계산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섬 주변 조류의 경계선에 큰 파도가 끊이지 않아 그 경계를 넘지 못했었는데, 알루미늄판을 돛 삼아서 파도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계절풍을 이용해 파도를 넘어간다는 구상이다.

나무줄기를 이용해 뗏목을 만들며 윌슨과 계속 대화한다.

“우리는 시간에 살고 시간에 죽어. 시간을 얕보는 건 큰 죄악이지. 언젠가 이 말을 했던 게 기억나는군….”

이는 러시아 지부에서의 일을 말한다. 그러다가 1년 전, 즉 무인도 생활 3년째에 자살을 기도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 빌어먹을 무인도에서 평생을 배구공 따위에게 말을 걸며 사느니 나는 저 바다로 나갈 거야”라며 윌슨을 던져버린다. 하지만 오밤중에 허겁지겁 해변을 뒤져서 윌슨을 다시 찾고는 오열한다.

드디어 탈출 날, 놀랜드는 준비한 식수와 최소한의 음식, 그리고 지금까지 뜯지 않았던 소포 박스와 윌슨을 뗏목에 싣고 바다로 나간다. 항상 섬 쪽으로 들이닥치는 거대한 파도를 큰 알루미늄판을 이용해 뚫어버리고 마침내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바람을 타고 뗏목으로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놀랜드와 하나뿐인 친구 윌슨. 어느 날 거친 날씨와 싸우고 잠든 사이 막대 위에 매달아 두었던 윌슨이 떠내려간다.

뗏목에서 바다로 뛰어든 놀랜드는 멀어져가는 윌슨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가까스로 뗏목으로 복귀한 뒤 목을 놓아 오열한다.

“윌슨! 윌슨! 제발 돌아와! 미안해, 미안해, 윌슨!”

이 장면은 〈캐스트 어웨이〉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회자한다.


이후 의식을 잃고 표류하던 놀랜드는 지나가던 선박에 의해 구조되어 4년 만에 사회로 돌아오게 된다. 페덱스 회장과 함께 인터뷰도 하고 생환 파티도 열리지만 놀랜드는 이 모든 게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1500일간의 무인도 생활을 견디게 해줬던 켈리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상태다.

혼자 호텔 방에서 전구를 켰다 껐다 반복하던 놀랜드는 켈리의 집으로 향한다. 여전히 놀랜드를 사랑하는 켈리는 놀랜드를 따라나서지만, 그는 켈리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고는 친구 집을 찾은 놀랜드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일을 읊조린다.

놀랜드 : 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는 방법을 택하는 것뿐이었지. 나무를 깎아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산꼭대기 나무에 로프로 매달아 보았더니 무게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더군. 자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거야. 그때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며 깨달음을 얻었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조수를 뚫고 난 이렇게 살아 멤피스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녀를 잃었지. 하지만 난 계속 살아갈 거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고, 파도가 또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르니까.

며칠 후, 놀랜드는 자신이 끝까지 챙겼던 소포를 주인에게 직접 전해주러 간다. 시골 교외의 외딴집에 도착하지만 집주인이 부재중이라 그 택배물에 “이 소포가 저를 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척 놀랜드”라는 메시지를 남긴 뒤 돌아선다. 너른 벌판의 사거리에서 어디로 갈지 고심하고 있는 놀랜드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끝난다.

촬영 장소는 휴양지로 유명한 피지의 마마누카제도 중 한 섬인 모누리키섬이다. 길이 1킬로미터, 폭 600미터의 작은 섬으로 어떤 인공 시설도 없는 진짜 무인도이다. 〈캐스트 어웨이〉 개봉 이후 인근 리조트를 찾는 여행객들이 한 번쯤 들르는 유명 여행지가 되었다고 한다.

143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으나 이 영화는 인간이 가진 ‘생(生)의 의지’를 큰 과장 없이 보여준다. 절대적 고립에 처한 뒤 배구공을 친구 삼아 끝까지 버텨 살아남는 모습을 열연한 톰 행크스는 2001년 제58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과 제65회 뉴욕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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