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달빛 소나타의 주인공 ‘긴꼬리’

“만약 우리가 달빛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소리는 이와 같을 것이다.”

《주홍글씨》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가을 풀벌레 소리를 감상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달빛 소나타의 주인공이 바로 ‘긴꼬리’로 불리는 곤충으로 귀뚜라미의 일종이다. 긴꼬리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가을밤에 많이 듣던 소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생김새를 보면 일반적인 귀뚜라미와는 많이 다르다. 보통 귀뚜라미라고 하면 바닥을 기는 시커먼 곤충을 생각하지만, 긴꼬리는 몸이 하얗고 투명한 편이라 영어권에서는 ‘스노위크리켓(Snowy cricket)’이라고 부른다. 또한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일반적인 귀뚜라미와는 달리 식물이나 나뭇잎 위에서 생활하므로 ‘트리크리켓(Tree cricket)’으로도 부른다.

수컷은 평상시에는 납작한 몸을 식물에 바짝 붙이고 숨어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날개를 90°로 번쩍 쳐들어 황홀한 소리를 연주해 낸다.

“루루루루루루-.”

가을밤을 수놓는 멋진 긴꼬리의 울음소리는 역시 주변의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다. 현혹된 암컷이 다가오면 수컷은 날개를 더욱 간절히 비벼대며 어서 자신의 등으로 올라타라는 시늉으로 암컷의 아래쪽을 뒷걸음질로 파고든다. 이때 수컷의 등판에는 일종의 신혼 예물이라 할 수 있는 분비물이 나오고 암컷이 이것을 핥는 동안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로맨틱한 노래에 맛있는 것까지 바치니 누구보다 멋진 신랑감이 아닐 수 없다.

긴꼬리의 울음소리에는 신기한 법칙이 있다. 일명 ‘돌베어의 법칙’이라고 불리는데, 1897년 미국의 물리학자 아모스 돌베어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그날의 기온에 따라 박자가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해 붙여진 이름이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고온에서는 빠르게 울지만 온도가 내려가면 점점 느려져, 이것을 수식으로 나타내면 13초 동안 귀뚜라미가 운 횟수에 40을 더한 값이 화씨(F)가 된다. 변온동물인 귀뚜라미는 온도에 민감하고, 날개를 비비는 것은 근육 활동으로 체온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당시 돌베어가 관찰한 ‘온도계 귀뚜라미’는 미국산 ‘긴꼬리’로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종류가 살고 있다.

한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 긴꼬리 울음소리는 더욱 애절해진다. 야간에 공원에서 손전등을 들고 소리 나는 곳을 천천히 찾아보면 긴꼬리가 날개를 떨면서 더듬이를 살랑거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긴꼬리는 보통 자신이 갉아서 뚫은 나뭇잎 구멍 사이에 머리를 내밀고 있거나, 풀줄기가 서로 겹치는 곳 중간에 매달려 있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자신의 울음소리를 더욱 크게 만든다. 즉 날개에서 생성된 최초 소리가 나뭇잎까지 진동시켜 반향음을 크고 멀리까지 전달하게 만든다. 확성기를 쓰는 셈이다. 온도계에 확성기까지, 자연계의 음악가인 긴꼬리는 아마도 선천적으로 물리의 법칙을 깨달은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긴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밤은 무척 은은하다. 느리고 천천히 울 때가 더욱 그렇다.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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