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통 스트라이커 계보 이은 황의조

축구에 미친 아이… 미친 득점력으로 아시아를 호령하다

온갖 비난을 받으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한 황의조는 단 한 경기로 ‘황의족’에서 ‘빛의조(빛나는 황의조)’, ‘갓의조(GOD+황의조)’로 재탄생했다. 그가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최용수-이동국 이후 끊긴 한국 축구의 정통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남 탓하지 않는 성격’과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우즈베크전에서 첫 골을 넣고 기뻐하는 황의조 선수.
한때 ‘황의족’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골 결정력이 부족하단 이유에서였다. 올 시즌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 9골로 득점 4위를 기록, 몸 상태가 굉장히 좋은 상태였지만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프로축구 성남FC 시절 김학범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께했다는 까닭에서다. 김 감독이 병역 혜택 기회를 주기 위해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았다는 오해를 받았다. 김 감독과 황의조의 인연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성남FC에서 사령탑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은 게 전부다.

‘연세대 인맥’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그는 연세대 출신이 맞지만 김 감독은 명지대를 나왔다. 근거 없는 루머가 확대 재생산됐고,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황의조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퇴출하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역대급 활약으로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최용수-이동국 이후 끊긴 한국 축구의 정통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게 된 황의조의 이야기다.


이승우 SNS, ‘의조 탄신일’

온갖 비난을 받으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한 황의조는 단 한 경기로 ‘황의족’에서 ‘빛의조(빛나는 황의조)’, ‘갓의조(GOD+황의조)’로 재탄생했다. 바레인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6-0의 대승을 이끈 것이다. 이후 그가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득점력은 가공할 만했다. 말레이시아전(1-2 한국 패)에서 대회 4호 골, 이란전(2-0 승)에서 5호 골을 이어간 황의조는 ‘사실상 결승전’으로 평가된 우즈베키스탄전(8강)에서 6~8호 골을 터뜨렸다.

특히 우즈베크전(4-3 한국 승)은 황의조로 시작해 황의조로 끝났다. 그는 해트트릭에다 결승골이 된 페널티킥까지 유도했다. 황의조는 베트남(3-1 한국 승)과의 4강전에서 1골을 기록, 총 9골로 아시안게임 득점왕을 차지했다. 일본과의 결승에서는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문전에서 여러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베트남과의 4강전 하루 전인 8월 28일 아시안게임 대표팀 후배 이승우(베로나)는 대한축구협회 SNS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공휴일 아닌가요? 의조 탄신일.’

축구협회가 이날 생일을 맞은 황의조를 축하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승우가 당시 8골을 기록한 황의조를 찬양한다며 이런 댓글을 쓴 것이다. 황의조와 이승우는 아시안게임 동안 룸메이트였다. 이승우는 일본과의 아시안게임 결승전 승리 후 황의조와 금메달을 들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기도 했다.


‘원샷원킬’의 재능+영리함


용인초등학교 시절 경기도 대회 멀리뛰기 종목에서 3위에 입상하는 등 운동신경을 타고난 황의조는 축구에 미친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황의조의 잠재력을 알아본 방과 후 축구교실 코치가 축구선수의 길을 열어줬다. 모든 게 새로웠다. 단체생활이 잘 맞았다. 그는 “테스트를 받는 첫날부터 합숙소에서 자겠다고 자청했다. 그 정도로 축구 자체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성남 풍생고등학교 1학년 때 ‘덕장’ 유성우 감독을 만나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고, 고3 때 ‘레전드’ 고정운 감독을 만나면서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점점 골잡이 냄새가 났다. 그러나 손흥민 등 동급생들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파워와 스피드가 문제였다.

“모두 제가 실력이 부족한 탓이죠.”

이를 악물었다. 황의조는 연세대학교 시절 단점을 지워나갔다. 웨이트 훈련으로 힘을 길렀다. 그러자 자신감이 붙었다.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에서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 스피드도 좋아지고, 슈팅도 강해졌다. 시련이 성장의 발판이 됐다. 대학 2학년 때는 구름 위를 걸었다. 대학축구 U리그 16경기에 출전해 13골을 폭발시켰다. 특히 춘계대학연맹전에선 9경기에서 9골을 터뜨려 ‘득점왕’에 올랐다. 성남 유스인 풍생고등학교 출신으로 한국 프로축구(K리그) 성남FC에서 데뷔(2013년)한 황의조는 K리그 클래식 개막전(2013년 3월 3일 수원삼성전)부터 골을 기록했다.

당시 안덕수 감독은 황의조를 이렇게 평가했다.

“황의조는 ‘원샷원킬’의 재능에 영리함을 겸비했다. 매사 변화를 통해 발전하려는 마인드를 갖췄고 도약의 가능성이 충분한 선수다.”

감독의 칭찬에 황의조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대학과 프로(K리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선수들의 피지컬과 기술이 좋고, 템포도 빨라 적응이 힘들었지요. 현역 시절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졌던 안익수 감독님께서 웨이트 훈련을 강조하셨습니다. ‘파워를 더 키워야 한다’고 주문하셨지요. 감독님께서 가끔 벤치 프레스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80㎏을 거뜬히 드시더군요.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2015년 황의조는 김학범 체제에서 완전히 꽃폈다. 34경기에 출전, 15골을 넣었다. 3도움도 보탰다. 성남FC 감독이었던 김학범 아시안게임 감독은 황의조를 중용했다. “될 것 같았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유독 국가대표와 인연 없었던 황의조


황의조는 좋은 선수였지만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후보로 거론되거나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막판에 탈락하기를 반복했다. 2009년이 시작이었다. 17세 이하 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이종호(울산 현대) 등 동급생들과의 스트라이커 경쟁에서 한 끗 차이로 밀렸다. 똑같은 시련은 4년 뒤 다시 한 번 찾아왔다. 20세 이하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는 반드시 출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표팀 코치진이 경기력을 체크하러 간 날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20명의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는 “노력도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못 뽑혀 아쉬웠다. 부족하니깐 감독님께서 선발을 안 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2015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 2차 아시아지역 예선 라오스(9월 3일)·레바논(9월 8일)과 경기에 나설 23명의 대표팀 엔트리에 황의조를 넣은 것이다. 라오스와의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황의조는 A매치 3번째 출전 경기였던 자메이카전에서 데뷔 골까지 터뜨렸다. 그런 그가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16년 3월 24일 열린 레바논전부터다.

당시 경기에서 원톱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던 황의조는 골문 앞에서 얻은 기회를 날리는 등 답답한 결정력을 선보이며 팬들의 뭇매를 맞았다.(당시 황의조 대신 후반 교체 투입된 이정협은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터뜨리며 황의조의 부진을 더욱 각인시켰다) 황의조는 이후 출전한 6차례 A매치에서도 미미한 존재감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각종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후 황의조는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인맥 발탁’ 논란이 일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J리그에서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축구 경험

황의조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일본 J리그 이적(1부 감바 오사카)이었다. 2017년 감바 오사카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황의조는 일본 특유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축구를 경험한 후 한 단계 도약에 성공했다.

K리그 시절 황의조의 가장 큰 장점은 파괴력이었다. 움직임이 큰 황의조는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괴롭혔다. 특히 왼쪽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때리는 오른발 슈팅은 황의조의 전매특허였다. 하지만 패턴은 단순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동선도 한쪽으로 집중됐고, 슈팅 역시 오른쪽 일변도였다. J리그를 경험하며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이론에 해박한 이도영 전 성남 수석코치의 분석이다.

“의조는 성남에 있을 때 자기만의 고집이 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양성이 생겼다. 의조는 워낙 오른발 슈팅이 좋은 선수였다. 정작 이를 감아 차기에 집중했는데, 이번 아시안게임을 보니까 인스텝 슈팅도 좋아졌다. 더 주목할 것은 슈팅 때리기 전인데, 슛을 하기 전 공간을 찾는 능력이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주어진 공간에 맞게 터치하고 움직인다. 여기에 순간적으로 밸런스를 이동하는 힘까지 더해져서 많은 골을 기록한 것이다.”

성남 대표이사를 하며 황의조의 플레이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정신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다.

“성남 시절 황의조는 골만을 바라봤다. 지나치게 골을 의식해 시야나 각도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플레이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정작 슈팅을 할 때 힘을 싣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진출 후 이런 부분이 확 달라졌다. 섬세한 플레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플레이가 간결해졌다.”


남 탓하지 않는 겸손함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1로 승리한 뒤 황의조 선수(오른쪽)와 손흥민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남 탓하지 않는 황의조의 성격도 그가 역대급 공격수로 거듭나는 데 한몫했다. 그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모두가 본인이 실력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연구하고 노력했다.

“저는 아직 50% 정도밖에 완성이 안 된 선수예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고쳐야 할 것도 많고요. ‘한 끗 차이로 밀렸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게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제 탓이죠. 더 열심히 해서 스페인 같은 리그에서 뛰어보는 게 꿈입니다.”

남 탓하지 않는 게 자포자기는 아니다. 포기는 없다. 어려서부터 축구에 미쳤던 그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마드리드의 카림 벤제마(Karim Benzema) 영상을 자주 봅니다. 벤제마는 다 잘하는 공격수지요. 골도 잘 넣고 연계 플레이도 잘합니다. 닮고 싶은 공격수죠. 개인적으로 저는 세밀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벤제마처럼 세밀한 플레이를 하고 싶습니다.”

황의조는 무대를 그토록 꿈꿔왔던 A 대표팀으로 옮긴다. 파울루 벤투(Paulo Jorge Gomes Bento)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국민은 그에게서 한국 최고의 골잡이로 군림했던 ‘황새’ 황선홍의 향기를 맡고 싶어 한다.

“영광스럽죠. 2002년에 황선홍 감독님이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뛰어났던 스트라이커셨죠. 축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된 분과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계자를 알아본 것일까. 황선홍 전 FC서울 감독은 황의조를 이렇게 평가했다.

“황의조는 문전에서 위협적이고, 위치 선정, 상대와 맞설 힘이 있다. 앞으로 충분히 대표팀 공격을 이끌 만한 자원이다. 대표팀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나오기도 쉽다. 열심히 해서 정착했으면 좋겠다.”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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