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주가 만난 미술가

조각가 김경민

세 아이 엄마가 빚어내는 경쾌한 일상

김경민
1995년 성신여대 조소과 졸업, 1997년 성신여대 조소과 대학원 졸업, 2011년 홍익대 미술대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 대만, 홍콩, 일본 등에서 18차례 개인전, 홍콩 아트페어, 베네치아 아트페어, 뮌헨 아트페어, 홍콩 하버시티 아트페어 등 참가.
세련된 차림의 늘씬한 여성이 전화하면서 걷고 있다. 하나로 묶은 머리가 바람에 날리고, 고개를 쳐들고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는 활기차고 경쾌하다. 청동 조각이지만 청동이라는 재료가 갖는 묵중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각가 김경민을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만났다. 호리호리한 몸이나 빠르고 경쾌한 말투나 작가는 자신이 만든 조각과 똑 닮았다.

“저 조각과 똑같은 모양의 높이 5m 대형 조각이 인천 영종도 건물 앞에 세워져요. 그 건물과 마주 보는 건물 앞에는 전화를 받으면서 걸어오는 남자 조각이 세워질 거예요. 어디까지 왔는지 서로 전화로 확인하는 남녀의 모습이죠. 두 건물 사이에 들어설 영화관 앞에는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남녀 모습의 조각이 세워집니다.”

김경민 작가의 조각 3점이 나란히 들어서는 영종도의 그 거리가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의 조각을 보면서 이탈리아 여행 중 로마에서 보았던 한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장 차림의 멋진 여성이 전화를 받으면서 지하철 계단을 바삐 올라가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바라보고 있으니, 지하철 입구에서 기다리던 남자에게 달려가 안겼다.

김경민 작가는 국적을 뛰어넘어 현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그린다. 그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거리에도 그가 만든 조형물이 서 있다. 싱가포르의 한 쇼핑몰 앞에는 쇼핑하러 온 가족 다섯 명의 모습을 묘사한 높이 5m 대형 조각 다섯 점이 세워져 있다.

“그 쇼핑몰의 건물주가 한국 여행을 왔다가 거리에서 제 작품을 보고 ‘이 작가의 작품을 내 건물 앞에도 세우고 싶다’면서 의뢰했습니다. 그 조각을 본 싱가포르의 한 미술전문 기자가 ‘꼭 만나고 싶었다’면서 저를 찾아오기도 했죠. 그런 식으로 뜻밖의 인연이 생겨납니다. 제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느 나라나 똑같아요. ‘예술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전에 마음을 먼저 사로잡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습같이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작품에 받침대가 없는 이유

집으로_ 80x15x30cm, Acrylic on Bronze, 2011
성신여대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홍익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고급 예술을 고집하지 말아야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고 편안한 작품을 만들어야지’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인 1994년에 제작한 작품 〈귀가(歸家)〉에서부터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지하철로 귀가하는 양복 입은 남자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지하철에서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들을 많이 봤어요. 그들의 축 처진 어깨에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모습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조각에는 받침대가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받침대를 없앴습니다. 대신 발을 크게 만들어 무게를 지탱하게 했죠.”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97년, MBC 구상조각대전 대상을 받은 작품 〈예스맨〉은 권력에 아부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

“신문기사를 볼 때마다 ‘결국은 부질없게 느껴질 권력에 왜 저렇게 매달릴까? 그렇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동안 사회문제나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때도 너무 심각하거나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utopia_ 53x18x15cm, Acrylic on Bronze, 2011
그는 대학원 졸업 후 조각가 권치규 성신여대 교수와 결혼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남편이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소설가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면 저는 조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저의 일상이 그대로 작품이 되었죠. 우리 아이들과 작품 속 아이들이 함께 성장했습니다.”

아이 셋의 엄마 역할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게 얼마나 고단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그런 고단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밝고 활기차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팔이나 춤을 추듯 리드미컬한 자세, 힘찬 걸음걸이에서 행복한 에너지가 퐁퐁 솟아나는 듯하다. 조각상의 커다란 발에서 현실을 딛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느껴지고, 원색의 색감 때문에 더욱 밝고 경쾌하다.


남편 권치규 조각가

good morning_ 100x150x420cm, Urethane on Bronze, 2012
작가는 어릴 적 시골에서 살면서 봄이면 진달래 따 먹고 여름이면 종일 물놀이를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울산으로 와서 생활하니 현대 도시의 낯선 풍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때 알록달록한 문구류를 보면서 느꼈던 행복감을 작품에 담고 싶어 조각에 원색을 칠했다. 비싼 재료인 청동을 사용하지만 원색으로 칠해 놓으니 청동 조각인지 알기 어렵다. 청동은 가늘고 뾰족하고 섬세한 그의 조각을 견고하게 표현해주는 재료일 뿐이라고 한다.

“제 작품을 보고 ‘정말 이렇게 사세요?’라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정말 그렇게 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표현합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 행복에 대한 철학이지요.”

내사랑 붕붕_ 75x25x57cm, Acrylic on Bronze, 2016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면서도 그는 한 번도 작업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일산 외곽의 변두리 마을에 작업실 겸 집을 지어놓고 부부가 함께 작업하면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이들은 한 학년이 2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학교에 다녔어요. 주로 이주노동자나 농부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죠. 경쟁에 부대끼지 않고 친구들과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아이들이 특별한 심성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데다 사람에 대한 포용력도 커졌습니다. 작업하는 엄마아빠 옆에서 놀거나 가족이 함께 미술관을 찾을 때가 많아 일상에서 항상 예술을 접하면서 성장했죠. 예술에 대한 환상은 없어요.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종일 일하는 부모를 보면서 3D 업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큰딸은 화가가 되고 싶다면서 서울예고에 진학했지만, 아들은 이과를 선택해 전혀 다른 진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작품 보고 ‘행복한 순간’ 떠올렸으면

해변의 가족_ 90x20x57cm, Acrylic on Bronze, 2014
김경민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인 뮤즈는 언제나 남편과 아이들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는 모두 작가 자신, 남자는 모두 남편이라고 설명한다. 작품 속에서 이들 가족은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서 동행한다. 아이 셋과 함께 욕조 안에 있는 여성의 모습이나 아내의 등을 밀어주는 남편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실제 모습이냐고 물었더니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요? ‘부부란 서로 때를 밀어줄 정도로 허물없고 편안한 친구 같은 사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라고 말한다.

“남편과는 대학원에서 만나 친해졌고,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저처럼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고, 생각이 잘 통해요. 덕분에 서로 시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업실을 공유하기 때문에 거의 24시간 함께 생활하지만, 각자 너무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남편인 조각가 권치규는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부부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각자 독립적으로 작업하면서 특별히 요청하지 않으면 서로의 작품에 대해 충고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작품은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행복한 순간’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을 한 편의 웹툰이나 코믹영화처럼 보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많아져야 세상이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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