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지구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찾아낸 빛나는 순간

사진작가 성남훈

맑고 큰 눈을 지닌 아기가 형형색색의 이불에 폭 싸여있다. 형형한 눈빛으로 보는 이를 매료하는 이 아기는 사실 에이즈에 걸려 앞날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지구 곳곳을 누비면서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온 사진작가 성남훈의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전이 4월 25일까지 서울 서소문로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199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그의 발길은 르완다 난민이 모여 있던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부터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에티오피아, 우간다, 인도네시아, 페루 등 전쟁과 굶주림, 질병, 환경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구촌의 참혹한 현장을 담은 그의 사진은 역설적으로 너무 아름답다. 정면을 응시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맑으면서 깊고, 난민캠프에 자리 잡은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이 지닌 존엄성과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1990년대 종족분쟁으로 벌어진 학살을 피해 주변국을 떠도는 르완다 난민들을 찾아갔을 때였어요. 시체 썩는 냄새와 소독약 냄새, 신음과 아이 울음소리가 뒤섞인 그곳에서 카메라를 들었더니 죽어가는 줄 알았던 아이가 눈을 번쩍 뜨고 웃었습니다. 2008년에는 우간다 쿠미 지역을 찾았습니다. 얼핏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처럼 보였지만, 무장 반군의 성폭력과 빈곤으로 인한 매매춘 등 여러 요인으로 에이즈가 만연한 곳이었죠. 부모 때문에 에이즈에 걸린 채 태어난 아이들을 보면서 ‘저들에게 무슨 희망을 물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도 우리와 똑같은 부모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성실하게 열심히 바라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우간다 에이즈〉, Kumi, Uganada, 2008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통과 슬픔, 죽음이 만연한 곳에서도 다시 추슬러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고 나면 그것을 세상에 전해야 할 빚을 지게 됩니다. 풍요롭고 편안한 우리 삶의 언저리에는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다른 세계, 다른 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촌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사진인생을 관통하는 주제다. 파리 사진학교에 다니던 1992년, 그는 루마니아 집시들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으로 그랑 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전에서 사진부문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등을 맞댄 채 바이올린과 탬버린을 연주하는 할아버지와 청년, 바람 부는 들판에 선 소녀의 모습에서 집시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1989년 가을 프랑스로 건너갔고, 어학원을 거쳐 1990년 파리의 사진학교 ‘이카르 포토’에 입학했습니다. 1991년 아를국제사진페스티벌에서 암 병동의 어린이 환자들을 촬영한 사진을 보고 ‘사진이 보는 이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다큐멘터리 사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 파리 외곽에 임시 정착한 루마니아 집시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1년 넘게 찾아다녔습니다.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동유럽 집시들이 프랑스로 넘어오던 시기였거든요. 저 역시 프랑스에서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방인이었기에 그들과 심리적 공감대를 느꼈던 것 같아요. 한곳에 정착시키려는 프랑스 정부의 의도와 달리 그들은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자주 만나면서 친해지자 그들도 제게 내밀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장비를 갖춰도 사진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상이 내뿜는 에너지를 담아낼 뿐이지요. 그것은 대상과 깊이 교감할 때 보너스처럼 주어집니다. 저는 카메라를 들었다가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내립니다. 대화를 나누고 무작정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 다시 카메라를 듭니다.”

〈에티오피아 사냥족〉, Kamash, Ethiopia, 2008
한 사진평론가는 “성남훈의 사진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멈칫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대상에 다가서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랫동안 대상을 바라보면서 예기치 않게 드러나는 삶의 순간과 포즈를 포착한다”고 해석한다. 그는 아비규환, 아수라장의 현장에서조차 서정적인 장면,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릴 적부터 그의 내면에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1963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시골 소년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대학 진학 후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예술에 대한 욕구를 풀어냈다. 그러다 함께 연극을 하던 친구가 보낸 크리스마스 엽서를 받고 ‘이거다’ 싶었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인화해서 만든 엽서였다. ‘사진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프랑스로 사진 유학을 떠났고, 프랑스 사진 에이전시 라포(Rapho) 소속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1999년에는 인도네시아 민주화 과정을 담은 사진, 2009년에는 동티베트 지역 비구니들의 모습을 담은 초상사진 〈연화지정(蓮花之井)〉으로 월드프레스포토에서 수상했다. 〈연화지정〉은 발간 볼에 영롱한 눈빛을 한 젊은 비구니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작품이다. 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움막에서 생활하면서 차가운 바람에 빨갛게 볼이 튼 그들은 어떻게 저리 맑은 눈빛을 지녔을까? 성남훈 작가는 “어두운 움막에서 나오면서 얼굴에 햇살을 받는 순간에 촬영했다”고 말한다. 그는 전쟁 등 갖가지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떠도는 유민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1990년대부터 수십 개국을 다녔다. 그 과정에서 간첩으로 몰리거나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2005년 사진집 《유민의 땅》을 펴낸 후 그는 기후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에티오피아 사냥족, 사막화되어 가는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 금 채굴로 수은에 오염된 페루의 고산도시, 주석 채굴로 황폐해진 인도네시아 방카섬 등 환경문제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을 만들려면 주석이 꼭 필요한데 방카섬에서 세계 주석의 3분의 1이 생산된다고 해요. 어부와 농부로 살던 주민까지 주석 채굴에 뛰어들면서 이 섬은 급격하게 망가지고 있습니다. 주석을 캐내면서 생긴 웅덩이는 코발트 빛 호수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체에 해로운 물질로 가득합니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땅에서는 더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스마트폰의 주요 수출국인 우리나라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난민〉, Botovo, Croatia, 2008
2015년과 2016년, 그는 다시 발칸반도로 향했다.

“유네스코 일로 러시아에 가 있을 때 시리아 난민에 관한 뉴스가 계속 들렸어요. 그냥 넘길 수 없어 바로 발칸반도로 갔습니다. 발칸은 분쟁지역이어서 자주 갔던 곳인데, 이제 시리아 난민이 독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난민들과 함께 추위에 떨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렸죠.”

〈인도네시아 주석광산〉, Sungailiat, Indonesia, 2016
작품이 서정적이고 아름답다는 평에 그는 “그게 제 사진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합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조명해주는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유민들 사진을 옻칠한 한지에 인화한 후 철물을 씌워 부식시켜 전쟁 분위기를 깊게 담아냈다.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니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면서 찬찬히 들여다보더라고요. 사람들이 돌아보고 관심을 둘 수 있도록 앞으로는 사진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전시할 생각입니다.”
  • 2018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노시현   ( 2018-05-09 ) 찬성 : 2 반대 : 2
#구리시자원봉사센터_선플챌린지
 어렵고 소외된 곳, 빈곤국가들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시고
 그사진을 통해 여러 나라들의 힘든 상황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수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진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도록 힘쓰시는 작가님의 기사 잘보았습니다. 빈곤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봉사의 손길이 전해지길바랍니다.
   김기자   ( 2018-04-30 ) 찬성 : 3 반대 : 5
작가님 사진 코엑스전시에서 봤습니다. 작가님과 소통의 이메일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related article

이선주가 만난 미술가 | 축광안료 작품들로 개인전 연 노상균 작가

[2018년 08월호]

‘설치는 작가’ 최정화

[2018년 07월호]

작가 박혜원

[2018년 06월호]

잿빛 도시에서 살아가는 쓸쓸한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 서동욱

[2018년 02월호]

작가 황선태, 선과 빛으로 빚어낸, 깊은 울림이 있는 공간의 창조자

[2018년 01월호]

이상원 작가 |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다.

[2017년 12월호]

화가 정영환

[2017년 11월호]

물길 따라 흐르는 대로 독특한 시선으로 세계를 담는 화가 김물길

[2017년 10월호]

화가 이재삼

[2017년 09월호]

20년간 전국의 구멍가게를 그려온 화가 이미경

[2017년 08월호]

추상화 작가 권현진

[2017년 07월호]

화가 서상익

[2017년 06월호]

화가 박상미

[2017년 05월호]

간송 전형필 손녀 화가 전인아

[2017년 04월호]

작가 이정웅

[2017년 03월호]

화가 김민주

[2017년 02월호]

민화작가 서공임

[2017년 01월호]

작가 윤병운

[2016년 12월호]

작가 민정연

[2016년 11월호]

화가 홍지윤

[2016년 10월호]

조각가 김병주

[2016년 09월호]

한국화가 김선두

[2016년 08월호]

화가 강세경

[2016년 07월호]

작가 하태범

[2016년 06월호]

화가 석철주

[2016년 05월호]

화가 이은영

[2016년 04월호]

입체 회화 그리는 작가 손봉채

[2016년 03월호]

‘달동네’ 그리는 화가 정영주

[2016년 02월호]

시간의 흐름을 담는 사진작가 구성연

[2016년 01월호]

한국의 1세대 극사실주의 화가 지석철

[2015년 12월호]

화가 황용엽

[2015년 11월호]

작가 정희우

[2015년 10월호]

화가 김호석

[2015년 09월호]

작가 송진화

[2015년 08월호]

화가·일러스트레이션 작가 노석미

[2015년 07월호]

화가 유선태

[2015년 06월호]

설치와 퍼포먼스로 자연과 교감하는 화가 임동식

[2015년 05월호]

‘현대의 풍속화가’ 최석운

[2015년 04월호]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화가 이진주

[2015년 03월호]

화가 이광호

[2015년 02월호]

화가 이상원

[2015년 01월호]

화가 이지수

[2014년 07월호]

화가 이기숙

[2014년 06월호]

화가 권인경

[2014년 03월호]

화가 최영욱

[2013년 10월호]

화가 이효연

[2013년 09월호]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