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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근미의 책세상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이 캐낸 독특한 소재의 소설이 전하는 감동과 재미

주제별로 묶은 100편의 단편소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전 10권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써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되지 않을까? 누구나 마음속에 ‘나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좀 한가해지면 소설 쓰고 싶다’는 은밀한 소망을 귀띔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작법을 좀 익히면 어려운 일 아니니 일단 소설 읽기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장편 공모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단편소설로 입문하는 이들이 많다. 습작을 위해서든 교양으로든 단편소설을 읽으면 짧은 완결 속에서 큰 울림을 얻을 수 있다. 미학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단편소설 쓰기에 익숙해지면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장편의 형식을 다잡는 일이 유리해진다.

국내 작가들의 단편은 작가별, 시대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지만 외국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은 시리즈 전집은 흔치 않다. 우리의 현대소설이 서구 현대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만큼 다양한 국가의 작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 출판사에서 세계명작 시리즈를 발간했지만 대개 한 권에 한 작가의 작품을 담아 전집을 구성하는 형식이다. 한 권으로 세계 여러 작가의 단편소설을 접하고 싶다면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권을 두루 섭렵해봄직하다. 각 권마다 테마에 맞는 작품을 10편씩, 100편을 담았다. ‘사랑의 여러 빛깔, 죽음의 미학, 성장과 눈뜸, 환상과 기상, 삶의 어두운 진상, 비틀기와 뒤집기, 사내들만의 미학, 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 병든 조개의 진주,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톨스토이, 스탕달, 헤밍웨이, 헤세, 체호프, 카프카, 모파상, 포 등 서구의 작가들과 가와바다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노신,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등 아시아 작가들의 대표 단편을 고루 엄선했으며 피츠제럴드, 콘래드, 보르헤스, 마르케스, 에메 등 비교적 최근 작가들의 단편도 함께 들어있다.


이문열, “30년 내 문학체험의 결산”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읽고, 그걸 또 주제별로 선별했다는 점에서 우선 놀라게 된다. 1990년대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이문열 선생이 학생들에게 읽히기 위해 분류작업을 시작했다가 고생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서문에서 ‘전 세계를 망라하는 객관적 선별을 목표로 했으나 대단찮은 독서 범위 안에서 주관적으로 고른 작품의 집합일 뿐’이라고 하면서도 ‘이 선집에 적용된 범위와 기준은 거치나마 삼십 년이 넘는 내 문학 체험의 한 결산이며, 나의 소설도 결국은 이 범위와 기준에 바탕하고 있다. 내가 쓴 모든 것이 한 점 남김없이 문학사의 쓰레기더미에 묻혀버리지 않을 것이라면 이 선집도 단편소설의 창작에서든 연구에서든 약간의 유용함은 있을 것이다. 특히 주제별로 세계 각국의 단편들을 정리한 것은 이 선집의 한 자랑이 될 만하다’는 자긍심을 표했다.

이 선집의 진면목은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이 캐낸 독특한 이야기를 두루 음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몇 편의 소설을 감상해보자. 싱클레어 루이스의 〈늙은 소년 액슬브롯〉은 100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이민 와 미국인이 된 크누트 액슬브롯은 18세에 결혼하여 58세까지 열심히 일해 빚을 갚고 농장도 하나 마련했다. 아내는 죽고 말았지만 자녀들은 장성하여 제 몫을 하며 산다.

크누트는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고 하루 18시간씩 일하던 뚝심을 살려 매일 12시간씩 공부한다. 어릴 적 꿈인 ‘유명한 학자가 되어 여러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고, 역사에 능통하고 지혜로운 책들 속의 아름다운 세계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기어이 예일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동급생들은 65세 신입생을 괴물 취급하고 교수들까지도 크누트를 경계하며 면박을 준다. 다만 길버트만이 늙은 신입생을 친절하게 대하며 시를 읽어준다. 단 한 명의 친구를 만난 크누트는 결국 학교를 떠나지만, 늙은 학생은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했던 65세의 남자는 대학에서 짧지만 강렬한 순간을 맛본 것에 만족한다. 좀 늦더라도 원하던 일을 기어이 해내며, 온 힘을 다해 삶의 의미를 찾는 건 행복한 일이다.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해석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소년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아무 데서나 불쑥불쑥 정신을 사로잡는 옆집 누나 생각에 혼란스러운 소년은 ‘나의 몸은 하프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하프 타는 손가락과도 같았다’라며 달뜬다. 어느 날 그 누나가 애러비 장에 한번 가보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한다.

애러비 장에 가기로 한 날,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 늦게 떠나게 된다. 밤 9시 50분에야 바자가 열리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허망한 마음으로 아직 닫지 않은 가게 앞을 서성이며 누나에게 줄 선물을 사려던 소년은 자신을 직시하게 된다. ‘그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나는 허영에 몰려 웃음거리가 된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뇌와 분노로 타오르고 있는 나의 눈도 볼 수 있었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에 내내 들떠서 맹목적으로 빠져든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아련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의 〈종신형〉에 나오는 마티스 로우는 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늘 불만이다. ‘어망을 손질하고 손바닥만 한 땅을 갈며 아무 기쁨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마티스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넓은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가리라 결심한다. 하지만 마티스는 자녀가 없는 숙부의 상속자가 되어 어른들의 강요로 결혼을 하고 마을에 눌러살게 된다.

아들 한스가 태어났으나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는 생각에 정을 주지 않는다. 어느 날 한스가 헛간에서 맷돌을 돌리며 물을 튀기자 심하게 야단친다. 겁에 질려 우는 아들을 보던 마티스는 어린 시절 혼자 헛간에서 놀던 자신을 떠올리며 아들을 달래주고 함께 즐겁게 논다. 그 일로 마티스는 아들을 사랑하게 되고 아들도 자신처럼 환경과 관계에 묶여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될까 봐 걱정한다.

마티스는 아들이 바다로 나가 훨훨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자리를 수소문한다. 드디어 마을을 떠나게 된 한스는 아버지에게 함께 가자고 말한다. 아들의 제안에 기뻐하면서도 마티스는 다시 ‘자기 감옥’으로 돌아오고 만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탄탄대로를 걷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소요소에 복병이 기다리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뜻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 인생이다.

조지프 콘래드의 작품 〈발전의 전초기지〉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설치된 교역거래소에서 근무하게 된 두 백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보급품을 실은 배는 6개월에 한 번 온다. 그들을 돕는 아프리카인 직원이 있지만 모든 게 낯선 상황이다. 돌발적인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케이어츠와 카알리에는 권총을 갖고 있다.

문명사회에 살던 사람이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환경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 둘은 서로 의지하면서 무척 친밀하게 지낸다. 하지만 단조롭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인근 부족과의 갈등 때문에 물자지원도 받지 못하고, 본국에서 온다던 보급선도 점점 늦어진다. 남은 건 쌀과 커피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을 위해 비축해둔 설탕을 먹자는 카알리에의 요청을 케이어츠가 거절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총격 사건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무장을 하지 않은 카알리에가 사망하자 케이어츠는 아연실색한다. 뒤늦게 도착한 보급선에서 내린 회장이 발견한 것은 자살한 케이어츠의 흉한 몰골이다. 〈발전의 전초기지〉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자행되는 일들, 사람 사이의 믿음과 두려움 등을 생각하게 해준다.

다양한 나라에서 각기 다른 시대를 살며 독특한 체험을 한 작가들의 작품인 만큼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다채로운 색채가 파장을 일으키며 아름답게 빛나는 광경을 음미해보라. 한 편씩 꺼내 읽으면 다디단 곶감을 몰래 빼 먹듯 맛있고 즐거울 것이다.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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