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⑥ 〈어 퓨 굿 맨〉

군인의 길과 명예심, 명령과 복종, 자존감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영화

군대는 특수한 집단이다. 전쟁 상황을 상정한 조직이기에 명령과 복종이 우선시되고, 조직의 유지를 위해 규율과 질서가 필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는 이른바 ‘군인 정신’의 절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군대의 구성원은 대부분 ‘피 끓는’ 청춘들이다. 그렇다 보니 군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그 사고는 외부로 알려지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은폐되기도 한다.

법정 드라마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 감독 로브 라이너, 1992)은 군대 내부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일반적인 표기라면 ‘멘’이 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명칭이 ‘맨’이었기에 그에 따른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1947~) 감독은 멕 라이언을 스타로 만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1989)와 스티븐 킹 원작의 〈미저리〉(Misery, 1990)를 만든 명장이다.

제목의 ‘A Few Good Men’은 소수정예라는 뜻으로 본래 미국 해병대의 슬로건이었다. 미 해병대 모병 광고에서 ‘We're looking for a few good men.(우리는 소수정예를 추구한다)’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제6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조연상(잭 니컬슨), 편집상, 음향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수작이다.


관타나모 기지 살인 사건


미 관타나모 기지는 미국의 적국 쿠바에 둘러싸인 기지로 해병대 부대가 있다. 이 부대에서 ‘윌리엄 산티아고’라는 사병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이 사건은 곧바로 워싱턴에 보고되고, 죽은 사병과 같은 소대에서 근무하는 해병 2명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구속, 수감된다.

이 사건은 합의에 의한 사건 해결에 뛰어난 ‘다니엘 캐피’ 중위(톰 크루즈)에게 맡겨진다. 그는 이 사건을 위해 ‘조앤 갤러웨이’ 소령(데미 무어), ‘샘 웨인버그’ 중위(케빈 폴락)와 한 팀이 된다.

기지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은 이렇다. 관타나모 기지는 미국에 적대적이던 쿠바 영토 안에 있는 미국 점령지이기 때문에 평상시 긴장의 강도가 높고 군기가 센 곳으로 묘사된다. 해병대 경비중대의 산티아고 이병은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료 병사들은 계속 실수를 저지르는 그를 노골적으로 못살게 군다. 산티아고는 감찰부, 상원의원 등 군 안팎으로 편지를 써 전출을 요구한다.

해병대 부대 지휘관인 ‘나단 R. 제섭’ 대령(잭 니컬슨)은 내부의 일을 외부에 알리며 전출을 요구하는 등 산티아고 이병이 지휘체계를 무시하는 데에 분노한다. 산티아고는 관타나모 기지에서 쿠바 측에 대해 도를 넘는 행위를 했다는 등 정치인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고발하기도 한다. 기지 사령관 제섭 대령이 노발대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지휘관 ‘매튜 마킨슨’ 중령(J. T. 월시)은 산티아고 이병을 전출시키자고 건의하나 제섭 대령은 이를 묵살하고, 산티아고가 사열 도중 총을 떨어뜨린 것을 계기로 소대장 ‘조나단 켄드릭’ 중위(키퍼 서덜랜드)에게 산티아고 이병에 대한 ‘코드 레드(Code Red)’를 명령한다.


코드 레드는 본래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대한 경고를 의미하는데, 영화에서는 비공식적 구타를 말한다. ‘얼차려’나 ‘기합’과 비슷한 뜻이다. 산티아고는 같은 소대원 ‘해럴드 도슨’ 상병(볼프강 보디슨)과 ‘로든 다우니’ 일병(제임스 마셜)에게 모포말이를 당한 후 구타로 사망하고, 가해자 2명은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이런 사건을 맡은 캐피 중위는 하버드 로스쿨을 갓 졸업한 신참 해군 법무장교다. 실제 재판까지 가지 않고 군 검찰 측과 협상으로 마무리 짓는 쪽에 일가견이 있다. 부친은 해군 법무감과 연방 법무장관을 지낸 저명한 법조인이며, 주인공은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그 그림자 때문에 괴로워한다.

캐피 중위는 일은 되도록 빨리 끝내고 야구에 몰두하느라 바쁘다. 야구 점퍼를 즐겨 입고 야구 배트를 들고 집에서 법정 모의 준비를 할 정도로 야구광이다. 단 몇 개월 만에 40여 건의 사건을 ‘법정 밖 합의’로 처리하고 넘어간 이력도 갖고 있는 캐피는 해군 상부의 고위 장교들에 의해 관타나모 기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변호 팀을 맡게 된 것이다.

캐피와 한 팀을 이룬 조앤 갤러웨이 소령은 해군 소속 수사관이자 변호사이다. 원칙적이고 도덕적인 인물로 성실하고 정의감이 강하다. 갤러웨이는 캐피와 달리 합의보다는 사건의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매번 충돌한다.

보다시피 당시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스타인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가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둘 사이에 아무런 로맨스도 일어나지 않는다. 감독은 캐피 중위와 갤러웨이 소령 사이에 그 어떤 섹슈얼한 느낌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원래는 둘 사이의 러브 라인이 있었으나 삭제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충돌과 완충


변호인 팀이자 캐피의 친구인 샘 웨인버그 해군 중위는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현실주의자인 캐피 중위와 이상주의자인 갤러웨이 소령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한다.

사건은 겉으로 보기엔 무리 없이 폭행 치사로 마무리하면 되는 그런 일반적인 케이스였다. 하지만 변호인 팀으로선 뭔가 이상한 것이, 피의자인 두 병사가 어설픈 변명이나 호소 없이 “주어진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면서 “불명예스러운 형량 협상보다 명예로운 처벌을 원한다”고 강조한다는 점이었다.

이 사병들의 모습을 보면 기원전 1세기 로마 작가인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Publilius Syrus)가 말한 “명예를 잃는다면 무엇이 남는가?(What is left when honor is lost)”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긴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도 “한 사람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지나치지 않다(No cost is too heavy for the preservation of one's honor)”고 말한 바 있다.

문제의 소대원 2명은 직속 소대장 켄드릭 중위의 비공식적인 명령을 수행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하지만, 켄드릭은 그런 사실을 부인한다. 차기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으로 영전이 예정된 제섭 대령은 자신이 코드 레드를 명령한 사실을 숨기고 2명의 해병에게만 책임을 지운다.

사실 제섭 대령은 미 해병대의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 덕분에 미국 국민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 전형적인 군인이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문장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최전선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지나친 데다 더할 나위 없이 권위적이다. 더구나 자신의 코드 레드 명령이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으로 비화하자 사실을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부하 사병에게 지우는 비겁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캐피 중위는 어려운 싸움임을 직감하고 군 검찰관 ‘잭 로스’ 해병대 대위(케빈 베이컨)와 가능한 한 타협해 최대한 낮은 형량을 받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갤러웨이 소령의 노력과 무죄를 주장하는 피의자 사병들로 인해 캐피는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그러나 법정 싸움은 변호인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사건에 임하는 정의감과 열정에 비해 실전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한 갤러웨이는 법정 변론에서 초보적인 실수를 거듭하고 패소 직전까지 몰리게 만들기도 한다. 늘 침착하던 샘 웨인버그마저 “이래서 변호사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며 소리치는 등 팀워크까지 삐걱거린다. 더구나 유일한 증인인 마킨슨 중령이 권총 자살함에 따라 사건은 더욱 고착상태에 빠진다. 팀원 간의 갈등이 최고조일 때 갤러웨이와 웨인버그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갤러웨이: 왜 그렇게 피고인들을 싫어해요?

웨인버그: 약자를 때렸으니까. 약자를 고문하고 윽박질렀잖아요. 왜 그랬는지 알아요? 빨리 못 뛰니까! 그런데 그쪽은 왜 그렇게 피고인들을 좋아합니까?

갤러웨이: 최전선에 있으니까요.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못 쳐들어온다”고 하잖아요.



영화 속 명장면


결국 캐피는 기지 사령관 제섭 대령을 증언대에 세우고 정면 돌파하기로 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명장면이 바로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캐피는 명예, 충성심, 애국심 같은 신념을 굳게 믿는 제섭 대령의 성격을 이용해 그가 은폐하려는 진실을 캐묻는다.

캐피: 왜 명령이 둘입니까? 켄드릭 중위를 시켜 산티아고 이병을 건드리지 말라고 사병들에게 명령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산티아고를 전출시키려 했습니까?

제섭 대령: 대답을 원하는가?

캐피: 진실을 원합니다.

제섭 대령: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캐피: 당신이 코드 레드를 명령했습니까?

제섭 대령: 우리는 벽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그 벽을 지키는 건 총을 든 남자들이다. 누가 그 일을 하지? 자넨가? 나에게는 자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네. 자넨 죽은 산티아고를 위해 훌쩍거리고, 해군을 증오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사치야.

캐피: 당신이 코드 레드를 명령했습니까?

제섭 대령: 나는 내 일을 했….

캐피: (말을 자르며 몰아붙인다) 당신이 코드 레드를 명령했습니까?

제섭 대령: 빌어먹을, 그래, 내가 그랬다.


톰 크루즈와 잭 니컬슨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일품인 이 신에서는 특히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지휘관 역할을 한 잭 니컬슨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한다. 이 대목에서 톰 크루즈가 여러 차례 NG를 냈지만 리테이크가 들어갈 때마다 니컬슨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동일한 열기의 연기를 보여줘서 촬영 스태프들을 감탄시켰다고 한다.

출연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잭 니컬슨의 극 중 존재감은 〈어 퓨 굿 맨〉의 전체 흐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 제섭 대령의 인상적인 대사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You can’t handle the truth)”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꼽은 ‘최고의 100대 명대사’ 중 29위를 기록했다.

결국 제섭 대령은 켄드릭 중위와 함께 수감되고,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서 사건을 저지른 두 해병은 살인모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직무유기 혐의가 인정돼 불명예제대 선고를 받는다.


“해병의 제복만이 명예로운 것은 아니네”

막판 도슨 상병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애초 “적당히 타협하자”는 캐피 중위의 제안에 “불명예스러운 제대는 싫다”며 적대감에 경례 대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던 도슨은 영화 마지막에서 캐피에게 절도 있게 경례를 한다. 이때 캐피가 도슨에게 해준 말은 “해럴드, 해병의 제복만이 명예로운 것은 아니네(You don't need to wear a patch on your arm to have honor)”였다.

군인의 길과 명예심, 명령과 복종, 자존감 등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어 퓨 굿 맨〉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외면해도 진실한 소수의 사람들, 진정한 ‘A Few Good Men’에 의해 세상은 더 정의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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