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정경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글 : 박소정 작가  / 일러스트 : 셔터스톡 

“시간이 좀 되시면 저랑 결혼하시겠습니까?”

평범한 결혼 프러포즈답지는 않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 2017)의 세희(이민기)가 지호(정소민)에게 묻는 말이다. 장난기는 없다. 세희는 자기 일생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는 중이다.

비혼주의자인 세희는 평생의 반려자 대신 평생의 부동산을 마련했다. 집을 사면서 받은 은행 대출 이자를 계획대로 잘 갚기 위해서는 방 한 칸을 세입자에게 내주고 매달 30만 원의 월세를 받을 필요가 있다. 세희는 고양이를 잘 돌보고,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하는 세입자를 찾는다. 지호는 집이 필요하다. 작가의 꿈을 갖고 상경한 지호가 맘 편하게 한 몸 누일 공간은 서울에 없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매달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지호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절실하다. 지호는 고양이를 잘 돌보고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한다. 그래서 세희와 지호는 같이 살기로 한다. 서로가 이성인 것은 하우스메이트로서의 유일한 결점이지만, 서로에게 사랑에 빠질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 결혼 독촉에 시달리는 결혼 적령기의 두 남녀는 집주인–세입자 관계와 비혼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결혼 계약을 맺는다.

세희와 지호는 극 중에서 종종 속칭 ‘또라이’로 지칭되곤 한다. 또라이들이 만났기 때문에 이런 결혼이 가능한 걸까? 이들의 결혼은 비정상적이기만 한가?


결혼은 사랑의 완성?

우리는 결혼을 사랑의 종착지로 여기곤 한다. 많은 로맨스 영화는 남녀의 결혼식 장면으로 끝이 난다. 결혼은 ‘두 사람은 그 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낭만적 사랑의 결말이다.

그러나 ‘결혼=사랑의 완성’이라는 등식이 항상 참인 것은 아니다. 본디 결혼은 두 개인 또는 집안 간의 계약이 그 본질이다. 고구려 시대의 데릴사위제나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혼인이 노동력의 교환 및 보상 과정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날도 두 인간이 혼인을 성립시킴으로써 법적 테두리 내에서 특정한 관계로 인정받고 그에 따른 부수적 규정 및 약정을 이행하며 생활에 대한 연대 책임을 갖는 것이 ‘결혼한다’라는 것의 주요한 의미이다.

결혼이 아름답고 고귀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근대화를 통해 전통사회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가족이나 국가에 대한 소속을 넘어 더 개체화되고 주관주의적 문화를 가지며 이른바 ‘자유로운 개인’이 된다. 자유로운 개인들은 자신의 사적 영역을 확보하고 그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발전시켜나가는데, 이때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이 주요한 이상적 가치로 등장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낭만적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개인화되어, 더 넓은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준거점도 가지지 않는 어떤 개인적 서사 안에 타자를 삽입하는 이야기”. 즉, 낭만적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유일무이한 ‘개인의 서사’다. 이전까지 전통사회의 공동체적 삶에 묶여 있던 개인이 근대의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되면서, 로맨스는 개인의 삶에 한층 가까워진다. 중세시대의 기사계급과 귀부인의 사랑 이야기도, 종교의 숭고한 가치에 기반을 둔 사랑도 아니다. 로맨스는 개개인이 직접 써내려가는 삶의 서사가 된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만의 로맨스 서사를 통해 삶의 한 부분을 조직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 기든스는 실제로 ‘로맨스’라는 단어 자체가 ‘이야기를 한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낭만적 사랑과 소설은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낭만적 사랑은 도덕적인 로맨스 관념이다. 낭만적 사랑이란 종종 첫눈에 반하는 것과 같은 충동성을 함축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노골적인 열정은 배제된다. 성적이고 에로틱한 충동은 낭만적 사랑에 포함되지 않는다. 낭만적 사랑이 섹슈얼리티를 끌어안는 방식은 숭고해야만 한다. ‘유일한 상대를 향한 영원하고도 헌신적인 관계’를 약속할 때 섹슈얼리티가 낭만적 사랑 안에 허용될 수 있다.

이런 도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이 결혼이다. 결혼을 통해 낭만적 사랑은 가정의 영역을 형성한다. 남성은 일을 하고 여성은 가정을 돌보는 근대적 젠더 분업 체계를 바탕으로 가정은 사적이고 폐쇄적인 영역으로 영위된다. 이것이 바로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완결적인 서사다.


유동적인 사랑, 유동적인 결혼


문제는 우리가 더는 근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개인성은 더더욱 공고하게 자신의 테두리를 만들어 가고 있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 맺기, 개인과 사회의 관계 맺기 방식은 변하고 있다.

현대사회 삶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이상적 연애관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한다. 기든스는 이를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이라고 부른다. 합류란 함께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곳에서 흐르기 시작한 두 개의 지류와 같다. 두 개의 지류가 어느 합류점에서 만나 하나의 강물로 흘러가듯, 두 사람이 어떤 계기에 의해 만나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게 되는 것이 곧 사랑이다. 그러나 두 지류가 형성하고 있던 강물은 또다시 어떤 시점에서는 갈라져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합류적 사랑은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과거에 각기 달랐음을 인정하고, 현재의 순간에 유대하고 공유하며,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서는 열린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낭만적 사랑의 특성을 탈각한 대신 현대사회의 유동성을 수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낭만적 사랑이 견고한 바위에 비유할 수 있다면 합류적 사랑은 말 그대로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액체성을 지닌다. 실제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사회의 액체성에 주목하며,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특성을 ‘유동적인 사랑(liquid love)’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결혼도 유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랑해도 결혼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다. 결혼하더라도 ‘그 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서사는 보장되지 않는다. 결혼은 개인 간의 관계를 법적 제도 안으로 넣는 중요한 절차이지만, 그것이 사랑의 끝판왕은 절대 아니며 사랑 그 자체도 아니다.


아무나 결혼하지만, 누구나 결혼할 수는 없는 세상

한국에도 다양한 관계 맺기의 방식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결혼만이 사랑을 제도화하는 유일한 방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혼해야만 서로에 대한 법적인 대리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고 해도, 또는 동거하고 있다고 해도, 결혼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연인이 관계를 공고히 하는 방법으로서 자연스레 결혼을 택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자신의 사랑을 제도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공개결혼식에는 오물이 날아들었다. 두 사람은 그들만의 결혼식을 치르고 그들만의 결혼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결혼이란 국가의 제도 안에서 허용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관습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처럼 세입자와 결혼을 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사랑해도 결혼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제도화하지 못하는, 또는 제도화하지 않으려는 세상의 모든 사랑, 파이팅!

※ 이 콘텐츠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연애정경》(박소정 저)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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