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윤리적 딜레마

“나는 훈련을 하는 1분 1초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말했죠. ‘포기하지 마.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앞으로 남은 평생은 챔피언으로 사는 거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1942~2016)가 한 말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로 유명한 그는 1981년 공식 은퇴할 때까지 통산 61전 56승 5패, 37KO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남긴 전 세계권투 헤비급 챔피언이다.
재능을 타고난 복서인 알리도 챔피언으로 살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복싱의 세계엔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는 그런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다.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을 받은 역작이다.

작품의 중심에 경륜의 복싱 트레이너인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있다. 그는 탁월한 ‘컷맨(cut man)’이기도 하다. 지혈 전문가를 일컫는 말로, 복싱에서는 출혈이 심하면 판정패를 당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수차례 나오듯 컷맨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랭키는 LA에서 낡은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매니저로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해 애써 키워놓은 선수가 다른 매니저를 찾아 떠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체육관은 프랭키의 오랜 친구 ‘스크랩 듀프리스’(모건 프리먼)가 관리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양말을 신고,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가난하다. 원래 프랭키가 컷맨이던 시절 돌보던 전직 복서이다. 지고 있는 경기에서 출혈이 심해 프랭키가 포기를 강권했으나 계속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눈에 흘러들어간 피 때문에 한쪽 시력을 잃었다. 프랭키는 평생 그때 일을 마음에 담고 산다.

체육관에는 미주리 시골 출신으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매기 피츠제럴드’(힐러리 스웽크)가 나와 프랭키에게 자신을 훈련시켜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프랭키는 “31세인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싱선수를 꿈꾸어서도 안 된다”며 면박을 주고, 심지어 “나는 여자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며 모욕에 가깝게 거절해버린다. 프랭키는 매기가 체육관에 나오는 것 자체가 불만스럽지만 그녀가 6개월치 회비를 선납해 놓았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매기는 손님이 남긴 스테이크를 챙겨와 집에서 허기를 채우는 가난한 복서 지망생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매기는 도저히 가족이라 부르기 힘든 식구들을 부양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보조금에만 기대 살며 딸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 없는 뚱보 엄마,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오빠, 집 사주니 가구 없다고 투정하는 미혼모 여동생 등 매기의 가족은 전형적인 ‘백인 쓰레기(white trash)’의 모습이다.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다”


평소 시를 즐겨 읽고 아일랜드어인 게일어 공부까지 하는 프랭키는 아내와 사별했고, 딸과는 결별 상태다. 딸에게 매주 편지를 보내지만 매번 답장을 받지 못하고 편지는 반송된다. 자신에 대한 자책감 탓인지 주말마다 교회를 찾는다.

권투가 유일한 희망인 매기의 열정에 두 손을 든 프랭키는 그녀의 트레이너가 되기로 한다.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Always protect yourself)”는 프랭키의 가르침 속에 훈련은 계속되고, 매기는 대부분의 경기를 첫 라운드 KO 행진을 하며 승승장구한다.

이러한 매기의 모습은 무하마드 알리의 다음과 같은 말과 똑떨어진다. “당신은 온 힘을 발휘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라야 한다. 당신은 기술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기술보다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프랭키는 매기에게 ‘모쿠슈라(Mo Cuishle)’라는 게일어 링네임(ring name, 프로권투나 프로레슬링 선수가 링에서 사용하는 별명)을 선사한다. 영화 내내 주요한 모티프로 제시되며 엔딩에서 매우 극적으로 표현되는 ‘모쿠슈라’의 뜻은 ‘나의 소중한 혈육’이다. 프랭키와 매기는 서로에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정을 일깨우며 아버지와 딸 같은 관계로 발전해 간다.

매기가 너무 강해 상대가 나서지 않으려 할 정도여서, 프랭키는 상대측 매니저에게 돈을 주어가면서 경기를 계속 붙여나간다. 배우 힐러리 스웽크는 마치 진짜 복서처럼 매기를 연기했다. 1999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감독 킴벌리 피어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별다른 후속타를 내지 못한 스웽크는 독하게 마음먹고 촬영에 임했다.

주 6일 매일 2시간 30분 복싱 연습과 2시간 30분 웨이트트레이닝을 3개월 동안 소화하며 순전히 근육으로만 7kg을 늘린 그는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에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역할이었다”고 회고했다. 심한 운동으로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출연이 무산될 것을 우려해 아픈 사실을 제작진에게 알리지 않고 약물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꿈, 복싱


영화에는 “펀치를 날리려면 뒤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너무 물러나면 맞출 수가 없다” 같은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다.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스크랩은 말한다. “복싱은 이상하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망막이 벗겨지고 고막이 터져도 계속 싸운다. 복싱이란 게 자신만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계속 한다. 모든 걸 거는 거다.”

마침내 매기는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 나간다. 상대는 옛 동독 매춘부 출신으로, 팔꿈치로 얼굴을 가격하는 등 반칙을 밥 먹듯 하는 현 챔피언. 도전에 나선 매기는 혼전 끝에 경기에서 우세를 보이지만, 상대는 라운드가 끝나고 돌아서는 매기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칙을 범한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매기는 의자에 목을 부딪쳐 경추가 부러지고 목 아래가 마비되는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호흡조차 목에 뚫은 구멍으로 해야 한다.

매기의 가족은 문병 직전에도 매기가 보내준 돈으로 디즈니랜드에서 놀다가 오고, 뒤늦게 변호사와 함께 나타나서 그녀의 보상금을 노리기까지 한다. 매기는 이런 가족을 병실에서 내쫓는다.

프랭키는 극진하게 매기를 간호한다. 하지만 회복할 수 없는 마비 때문에 매기는 욕창으로 고통받고, 감염된 다리는 잘려나간다. 모든 희망을 상실한 매기는 프랭키에게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난 세상을 봤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내 이름을 외쳤지요. 잡지에도 내 이름이 나오고. 내가 이 모든 걸 꿈이나 꾸었겠어요? 난 저체중아로 태어났어요. 아빠는 내게 싸우면서 세상에 왔고, 싸우면서 떠날 거라고 말했어요. 그게 내가 원하는 거예요, 프랭키. 난 원하는 걸 다 얻었어요. 모두 다. 그들이 그걸 빼앗아가게 하지 말아줘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외치던 것을 더는 들을 수 없을 때까지 제발 날 여기 누워 있게 내버려 두지 말아줘요.”

당연히 프랭키가 거부하자, 매기는 스스로 혀를 끊어 자살 시도까지 한다. 매기의 절망적 모습에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 프랭키는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고뇌의 무게는?


프랭키: 그 아이는 죽고 싶어 하고 전 그 아이를 곁에 두고 싶습니다. 신부님, 그건 죄를 짓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녀를 살려두는 것 또한 그녀를 죽이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물러나 있으세요. 그녀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프랭키: 그 아이는 주님께 도와달라는 게 아니에요. 제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신부: 난 지난 23년간 당신이 거의 매번 미사에 참석하는 걸 지켜봤어요.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만한 죄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허나 그 죄가 무엇이었든 당신이 지금 하려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이고 천국과 지옥이고 다 떠나서, 그 일을 하면 당신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깊은 나락에 빠져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겁니다.

프랭키: 후회는 이미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윤리적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회적 도덕의 잣대만으로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고뇌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스크랩과도 이야기를 나눈 프랭키는 결국 매기의 병실을 찾아가 호흡기를 떼고 치사량의 아드레날린을 주사하여 그녀를 보내준다. 그리고 프랭키는 모습을 감춘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레몬파이는 중요한 모티프다. 프랭키는 매기와 함께 홈메이드 레몬파이를 먹고 나서 말한다. “이제는 죽어서 천국에 가도 여한이 없겠어.” 그리고 매기의 소원대로 목숨을 끊어준 프랭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레몬파이를 먹는다.

이처럼 결말의 안락사 처리 때문에 일부에서 비판이 있었다. 이스트우드는 “내가 44매그넘으로 사람을 날려버리는 영화를 찍었지만, 실제로 그러라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라는 간접적 답변으로 응수했다. 그녀의 죽음은 섣부른 자포자기가 아닌, 항상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녀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안락사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큰 연관이 있지 않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한 인간의 성장 드라마는 물론, 혈연을 뛰어넘는 유대와 존엄한 죽음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권투라는 소재를 통해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관계가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영화는 그것의 내용보다 그 내용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해 좋은 영화가 되기도 하고 나쁜 영화가 되기도 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단순하고 명료하고 강렬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지닌 고전적 작품이며 엄청난 감정적 충격을 일으킨다”면서 이 영화를 ‘올해의 최고작’으로 꼽은 바 있다.

원작이 있다. 실제 복싱 코치로 활약한 제리 보이드가 펴낸 《불타는 로프, 코너에서 펼쳐진 이야기》(Rope Burns: Stories from the Corner)라는 작품으로, 영화는 이 책에 담긴 단편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 제리 보이드 또한 영화의 매기처럼 평생을 힘들게 살았고, 자기 책이 성공적으로 영화화되는 것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다.
  •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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