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소설가 이근미의 책세상

차분하고 격조 높은 톤으로 깊은 감동 안기는 묘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남아 있는 나날》 《우리가 고아였을 때》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일이 다가오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올해는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본과 브라질 사람들도 실망했을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파울루 코엘류의 수상이 유력하다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더니 노벨문학상이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다. 일본 사람들은 서운함이 반쯤 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미국 가수 밥 딜런에게 상을 안겨 올해 수상자에 더욱 관심이 쏠렸는데 가즈오 이시구로로 결정되자 “스웨덴 한림원이 정통으로 돌아갔다”는 평이 나왔다.

다소 낯선 듯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미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작가는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최초의 ‘문예창작학과’ 출신 수상자라는 점에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었다.

이시구로는 30여 년 동안 장편 7편, 단편집 1권을 출간했다.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감정의 거대한 힘이 담긴 소설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연결에서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감각 이면에 있는 심연을 드러냈다”고 올해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첫째 주,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쯤이면 출판사와 서점은 초비상이 걸린다. 올해 하루키나 코엘류가 수상했더라면 여러 출판사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 테지만 이시구로로 결정되면서 민음사가 쾌재를 불렀다.

현재 국내에 출간된 이시구로의 작품 8종 가운데 1종을 제외한 7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의 판매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시구로는 1982년에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데뷔하여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이 소설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를 보내지 마》는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 도서협회 알렉스상, 독일 코리네상 등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복제 인간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


일에 모든 걸 건 남자의 《남아 있는 나날》


7권의 장편소설 가운데 관심도가 높은 《남아 있는 나날》과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소개한다. 《남아 있는 나날》은 영화화된 데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읽은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현재가 아닌 20세기, 그중에서도 초반과 중반기를 작품의 무대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나날》의 시대 배경은 1956년 7월,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1930년부터 1958년까지이다.

수십 년 전 풍경을 그리는 작가의 필치는 시종 격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진지하기 그지없다. 자극적인 소재와 가벼운 글이 넘쳐나는 데다 장르소설이 각광받는 시대인지라 이시구로의 유장한 서술이 반갑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품격이 보장된다는 점과 마지막 부분에서 충격과 함께 상상 이상의 감동이 몰려온다는 점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자 특징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소설이 아주 재미있다. 점점 줄어드는 과자를 아껴 먹는 심정으로 읽게 될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나날》은 ‘주인님’을 보좌하며 저택과 하인들을 관리하는 신실한 ‘집사’의 직업정신을 통해 새삼 나의 일을 돌아보게 되는 내용이다. 스티븐스는 최고의 집사였던 아버지를 존경하며 아버지처럼 훌륭한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유럽 국제정세를 주무르는 달링턴 경이 최적의 환경에서 국제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는 손길은 장인정신 그 자체이다. 너무 충심을 다하느라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떠나가는 사랑을 붙잡을 틈도 내지 못한다. 그래도 평생을 바친 자기 일에 후회가 없었는데 달링턴 경이 국제정치꾼들에게 이용당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회의가 생긴다.

저택의 새로운 주인장 패러데이의 권유로 포드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떠나게 된 스티븐스, 오래전 떠나간 여인이 보낸 편지를 받고 여행길에 그녀를 만날 기대에 가슴이 조금씩 일렁인다. 달링턴 경을 보좌한 지난날에 대한 회한과 켄턴 양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는 어떻게 귀결될까. 책의 마지막 부분을 찬찬히 읽으면서 스티븐스의 마음이 되어보면 많은 울림이 있을 것이다.


충격적인 반전 《우리가 고아였을 때》


《우리가 고아였을 때》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어린 시절을 중국 상하이 외국인 공동구역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아편을 수입해 중국인들에게 파는 영국 기업의 직원인 데 반해 상하이 최고 미인인 엄마는 아편 반대 캠페인을 벌인다. 복잡한 함수관계를 알 리 없는 크리스토퍼는 멋진 집에서 밝고 화사한 엄마와 행복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실종되고, 믿고 따르던 삼촌은 복잡한 장터에서 그의 손을 놓아 버린다. 기억을 되살려 집으로 돌아오지만 엄마는 사라지고 없다.

열 살 때 영국으로 가서 이모와 함께 살게 된 고아 소년 크리스토퍼. 어릴 때 옆집의 아키라와 탐정놀이를 즐겨 했던 그는 어려운 사건을 줄줄이 해결하는 사설탐정으로 성장한다. 부모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해결할 각오를 불태우며 틈틈이 자료를 모은 그는 상하이로 갈 계획을 세운다.

크리스토퍼의 직업이 탐정인 만큼 부모를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마지막 부분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그를 유기했던 삼촌이 홀연히 나타나 ‘팩트 폭격’을 퍼붓자 경악하는 크리스토퍼, 절묘한 스토리를 직접 보면서 공분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려면 스포일러를 조심하며 지금 바로 책장을 넘기기 바란다. 1930년대의 어지러운 국제 정세와 함께 가족의 중요성,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격조 높은 어조로 차분히 진행되지만 ‘불확실한 기억’이라는 장치로 인해 묘한 분위기가 종종 연출된다. 그러다가 폭풍 같은 결말에 이르면 전율과 충격으로 한동안 아득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문학성은 높지만 읽는 재미를 느끼기 힘든 작품이 종종 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은근한 재미와 깊은 감동을 동시에 안긴다. 그의 작품은 문학성을 확고히 지키며 다양한 향취를 사방으로 퍼뜨린다.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듯 진지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묘하게 끌어당기는 그 매력에 흠뻑 취해보길 권한다. 품격을 보장하는 이시구로의 소설 속에 풍덩 빠져보시라.
  • 2017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