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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정경

이별 중인 너에게

보여주는 연애

글 : 박소정 작가  / 일러스트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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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말갛게 웃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매일 가슴속이 간질거린다던 너였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쉬워. 가만히 있으면 감정이 다 알아서 하는 일인 걸.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는 일을 물에 풍덩 빠지는 것에 비유하고, 다른 누군가는 가랑비를 맞을 때처럼 조금씩 젖어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어느 쪽이든 사랑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자리에 와 있지 않니.

설사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도처에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듣고 배우게 돼. 드라마는 사랑에 빠지는 공식들을 보여주고, 예능이나 잡지에서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팁을 알려주고, 친구들은 ‘썸’ 타는 근황을 자세히도 들려주지. 그러니 사랑에 빠지는 일이 어렵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그런데 이별은 어쩜 이렇게 어려울까. 너는 왜 그 사람과의 이별에 이토록 길고 힘든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걸까. 왜 이별을 고하고도 이별하지 못한 걸까. 우리는 왜 이별하는 법을 모를까.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우리는 늘 이별에 서툴지


<청춘시대>를 보니? 웃음도 눈물도 많은 여자애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 드라마에 은재가 나와. 은재를 보며 너를 떠올렸어. 지난 시즌에서 수줍게 첫 연애를 시작하던 은재가 이번 시즌에서는 이별을 시작해. 은재가 왜 종열과 헤어졌는지는 잘 몰라. 종열의 마음이 무뎌졌고, 은재는 종열의 사랑이 끝나가는 것이 두렵고 자존심이 상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별을 선언해버린 듯해. 그 뒤 은재는 종열의 곁을 맴돌며 그의 눈치를 살피고 어쭙잖은 작전을 짜서 시선을 끌고 약간의 스토킹도 하지.

너도 그렇지 않았니? 무언가 화가 나고 어지럽고 자존심이 상하고, 그래서 헤어지긴 했고 헤어지는 게 옳았다고도 생각하는데 네 마음속에는 아직 사랑이 한 덩어리쯤 남아 있는 거야. 공허해진 마음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그 사랑을 버리지도, 상대에게 되돌려주지도 못하고 마치 뜨거운 조약돌을 손에 쥔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면서. 그러면서 너는 그 사람을 탓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무작정 괴롭히기도 하고.

넌 어쩌다 헤어지게 된 거야?

너희가 헤어진 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너희 같은 연인을 본 적이 있어. <연애의 온도>에서 동희와 영이 그래. 그 영화는 두 사람이 헤어진 직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그러다가 다시 연애를 하고, 또 헤어지고, 또 연애를…. 여튼 연애와 이별의 쳇바퀴에 갇힌 사람들 같아. 어찌어찌해서 동희와 영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시 우연히 만나. 그리고 이런 대화를 해.

영 : 야, 우리 로또나 살까.
동희 : 로또?
영 : 응 내가 사줄게 한 장씩 사자.
동희 : 내가 그거 맨날 사봤는데, 한 번도 안 되더라.
영 : 이번엔 될 수도 있어.
동희 : 그래 사자. 진짜 모르지, 이번엔 될는지도. 근데 우리 뭐 먹을까?
영 : 짜장면 먹을까? 그때 거기 갈까?
동희 : 거기 없어졌는데.
영 : 왜? 맛있었는데?
동희 : 몰라. 터가 안 좋았나봐.
영 : 뭐야. 그럼 우리 뭐 먹지?
동희 : 몰라. 뭐 또 맛있는 게 있겠지.

짜장면 집이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으며, 또 다른 맛있는 게 있을 것이고 로또도 될지 모른다며 무작정 기대하는 둘의 모습이 화면 밖으로 멀어져 가면서 영화는 끝이 나.

이 엔딩 신을 보며 나는 롤랑 바르트가 연인의 담론은 변증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달력과 같다고 한 말을 되새겨보게 돼. 연인은 둘의 상반된 성격이 정반합을 이루어 이상적 결합 상태에 도달하지도,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영원한 결합으로 나아가지도 않아. 대신 연인은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관계를 지속하곤 하지. 눈치 게임을 하는 거야. 누가 먼저 이별을 입 밖으로 꺼내는가를 놓고 마음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면서. 영원의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연인은 탈출구 없이 갈등만 반복하게 되고, 혹 탈출구가 이별이 되더라도 재회와 재결합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바르트의 말마따나 정반합이 없는 반복적 배열이 오늘날 우리의 연애니까.

너는 아주 옛날처럼 첫날밤에서야 배우자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고 장난스레 말한 적도 있었지. 연애의 규칙들은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취향과 감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존중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결혼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긴 연애는 부담이 되고, 그렇다고 동거를 선택하기도 어려운 요즘, 네가 한 말이 장난처럼만 들리지는 않네.


이별하는 법을 좀 배울 필요가 있어


나는 너희가 이별하는 방식이 서로를 너무 괴롭히는 방식이 아닌지 걱정돼. 지난밤에도 뉴스에서 이별을 인정하지 못한 남자가 여자를 죽이려고 한 사건을 보았고, 그저께 만난 친구는 비 내리는 새벽을 핑계 삼아 다른 사람과 이미 결혼까지 한 옛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어. 사람들이 연애보다도 강렬하고 긴 이별을 하는 사이 누군가는 상처받고 있어. 우리는 이런 이별을 좀 멈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무리 이별이 어려운 경험이라고 해도 말이야. 서로를 존중하며 연애하는 법을 익혀나가듯 이별하는 법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은재 이야기로 돌아갈게. 종열과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던 은재 말이야. 은재를 보며 우리도 믿었어. 왜냐하면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절대 헤어지지 않고, 헤어지더라도 그건 더 큰 사랑을 이룩하기 위한 찰나의 고난에 지나지 않으니까. 드라마가 만들어낸 사랑의 낭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별은 금기와도 같아. 우리도 자신의 사랑이 드라마 속의 사랑처럼 영원한 것이라고 믿곤 해. 그래서 사랑이 저물어가는 과정을 모른 채하다가 결국 막바지에 내몰려서야 금기를 깨뜨린 이를 벌하려고 서로를 물어뜯거나 구속하며 괴롭히나봐.

결국 은재는 종열로부터 단호한 거절의 말을 듣고서야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비를 잔뜩 맞은 채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실연을 앓아. 나는 이 장면이 좋았어. 은재가 마침내 이별을 한 것이. 그리하여 은재가 한 모든 일들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이별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보편적인 구질구질함이었다는 사실이 좋았어. 은재의 이별 방법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 그 드라마가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아니라 이별의 일상을 다루었다는 것이 좋았어. 우리는 은재를 보며 조금은 자신을 되돌아보았지.

네가 이번 이별을 잘 겪어내면 좋겠다. 뜨거운 조약돌을 끝내 놓치 않으려고 여기저기 다치기보다는 네가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면 좋겠어. 그렇게 할 때, 네가 그 사람과 다시 연애를 시작하든, 또 다른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든, 연애를 하지 않든, 너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이별에 건투를 빌어!

※ 이 콘텐츠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연애정경》(박소정 저)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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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굿   ( 2017-11-28 ) 찬성 : 1 반대 : 0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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