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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사랑

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③ 〈브루클린〉

동기 유발에 관한 이론 중에 ‘ERG이론’이라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클레이턴 알더퍼(Clayton Paul Alderfer)가 주장한 것으로 ‘Existence-Relatedness-Growth’의 머리글자를 따 ‘ERG’라고 이름 붙였다.

알더퍼는 인간의 핵심 욕구를 존재욕구(existence needs), 관계욕구(relatedness needs), 성장욕구(growth needs)의 3가지로 보았다. 존재욕구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생리적·물리적 욕구이고, 관계욕구는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성장욕구는 개인적 자아를 완성하고자 하는 내적 욕구를 말한다.

알더퍼의 성장욕구에 해당하는 것이 유명한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의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이다. 매슬로가 주장한 인간의 5단계 욕구 중 최고 단계의 욕구로,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사람이 가진 성장욕구나 자아실현 욕구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브루클린〉(Brooklyn, 감독 존 크롤리, 2015)이다. 배경은 1950년대 아일랜드와 미국 브루클린이다.


아일랜드의 어느 마을에서 식료품점 점원으로 일하는 에일리스(시얼샤 로넌)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에일리스는 이 점원 자리가 영 마뜩찮지만 일자리가 없어 그만둘 수가 없다. 식료품점이 드물어 거만한 주인은 손님 보기를 우습게 알고, 손님은 주인의 불친절한 응대에도 불평 한마디 못 한다.

에일리스의 친언니인 로즈(피오나 글라스콧)는 재능이 많은 에일리스가 더 나은 미래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에일리스가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가는 것을 주도한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브루클린에 있는 신부님(짐 브로드벤트)과 언니의 도움으로 에일리스는 미국의 브루클린으로 떠나게 된다.

브루클린은 ‘버러(borough)’라고 불리는 뉴욕시의 5개 자치구의 하나다. 나머지 넷은 맨해튼, 퀸스, 스태튼섬, 브롱크스 등이다. 브루클린은 롱아일랜드 서쪽 끝에 위치하며, 맨해튼과 이스트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뉴욕시의 5개 자치구 중에서 최대의 인구를 갖고 있으며, 주택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서쪽의 연안부에는 항만시설과 양조·조선·식품가공·기계 등의 공장이 많다. 영화에도 나오는 코니아일랜드는 남단에 있으며 휴양지로 유명하다.

에일리스는 미국행을 앞두고 친구 낸시와 댄스파티에 간다. 낸시는 신랑감으로 점찍은 마을 청년에게 춤 신청을 받지만 행색이 평범한 에일리스는 혼자 남겨진다. 이 부분에서 카메라는 에일리스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짐작이 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그녀의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브루클린 땅에서의 향수병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아일랜드 근대사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19세기의 아일랜드 역사는 1845년부터 1851년까지 지속된 ‘대기근’과 그 여파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였다. 전 유럽으로 번지고 있던 산업혁명의 물결은 이 지역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곡창지대 역할을 했으며, 인구의 70%인 농민은 대부분 자기 땅이 없는 소작농이거나 영세농이었다. 당시 소작농들은 생계를 위해 주로 감자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1845년에 감자 농사가 흉년이 들면서 대재앙이 일어났다. 감자마름병으로 알려진 감자역병균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1852년까지 계속된 기근으로 100만 명가량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100만 명 정도의 인구는 당시 ‘관선(棺船, coffin ship)’이라 불리던 낡은 배에 몸을 싣고 영국, 호주, 캐나다, 미국 등지로 떠났다. 이 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승선한 사람들의 약 5분의 1이 항해 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대기근 이후에도 아일랜드인들의 해외 이주는 계속 증가하여 19세기 중반 800만이었던 아일랜드의 인구는 1911년이 되자 440만 명으로 감소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아일랜드 사람들은 벌목, 철도 건설, 화강암 채석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에 따라 미국 노동인구에서 아일랜드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이렇게 미국의 밑바닥에서 일한 아일랜드인들의 모습은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에서 신부님을 따라 봉사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들 또한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에일리스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으로 가는 배 안에서 끔찍스러운 뱃멀미를 겪는다. 주인공이 장시간 배를 타는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전하면서, 브루클린에서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에일리스는 그 배에서 선배 이민자 여성을 만나 묻는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편지가 오는 데에 오래 걸리나요?” 그러자 그 여성은 “처음엔 오래 걸리다가 나중엔 금방 받게 돼요”라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고향에서 오는 편지만이 유일한 낙이라 오래 걸린다고 느끼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흥밋거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체감 시간에 대한 언급인 셈이다.

에일리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처녀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하숙집에 머물며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곳 관리자로부터 손님을 응대하고 친분을 쌓는 사교성을 키워야 한다는 요구를 받지만, 에일리스로선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직장 동료의 잡담을 유연하게 받아치지도 못하고, 아일랜드 억양을 두고 카페 점원이 던진 호의적 농담에도 몸이 굳어버린다. 그런 이유로 에일리스는 낯선 브루클린 땅에서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다. 고향에서 온 언니의 편지를 붙잡고 울음소리를 삼키며 눈물짓는다.

이를 눈치챈 신부님은 익명의 기부자에게 후원을 받아 에일리스가 야간대학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준다. 그녀는 낮에는 백화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회계학을 공부한다.


돌아온 고향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처럼 에일리스가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모습들이다. 가족과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한 발 한 발 개척해나가는 에일리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환경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고, 하루하루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애를 쓰는 그는 바로 자기 성장, 자아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에일리스는 신부님이 소개한 파티 자리에서 이탈리아계 배관공 토니(에모리 코헨)를 만나고, 이내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또한 토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점차 독립적이고 세련된 뉴요커로 변해간다.

그러나 언니 로즈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기실현의 욕구가 강한 언니 또한 답답한 아일랜드를 떠나고 싶어 했으나 홀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는 현실 때문에 동생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터였다.


에일리스는 장례도 치르고 혼자 있는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한 달가량 머물 계획이다. 그러나 남자친구 토니는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으로 다시 돌아올지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에일리스에게 청혼을 한다. 둘은 아무도 모르게 혼인 신고만 하고, 에일리스는 아일랜드로 간다.

어느새 뉴요커의 여러 모습을 따라 하게 된 에일리스는 화사한 색상의 옷과 튀는 선글라스, 수영복으로 고향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또 매력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짐 패럴(돔놀 글리슨)과 데이트도 한다. 토니가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매력의 소유자라면, 짐은 낭만적인 아일랜드 신사가 갖춰야 할 품위를 지녔다. 짐은 부모님이 물려준 큰 집을 소유하고 있고 이웃 사이에 평판이 좋아 일찍이 에일리스의 어머니가 점찍어 둔 사윗감이다.

에일리스는 언니가 일하던 곳에서 회계일을 봐주고, 그곳 사장에게서 아일랜드에 남아 계속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사이 스펠링에 약한 배관공 토니가 동생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계속 보내지만 에일리스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에일리스가 일했던 식료품점 주인이 어느 날 그녀를 따로 부르고, 미국 뉴욕에 사는 친척을 통해 그녀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자 에일리스는 “잊었네요,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를.(I'd forgotten what this town is like)”이라고 말한다.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에일리스는 그제야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구설에 오르는 이 작은 마을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자신의 터전은 이미 브루클린이 됐음을 말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에일리스의 감정 변화와 서서히 싹트는 로맨스를 섬세하게 그려낸 〈브루클린〉은 제69회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작품상, 각색상 등 3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주연 시얼샤 로넌은 〈어톤먼트〉(Atonement, 2007)로 아카데미 최연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다. 영화 〈브루클린〉을 통해 데뷔 이후 처음 성인 연기에 도전해 인상적인 명연기를 펼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한 ‘2009년 최고의 책’을 수상한 아일랜드 대표 작가 콤 토이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영화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 2002)로 유명한 작가 닉 혼비가 각본을 썼다.

〈브루클린〉을 연출한 존 크롤리는 아일랜드 출신 영화감독이며, 주연 시얼샤 로넌과 짐 패럴 역을 맡은 돔놀 글리슨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다.

감정 변화의 섬세한 연기가 일품인 이 영화는 삶의 근거지를 옮기며 자기 발전을 위해 고투를 벌여본 이에게 특히 짙은 여운을 남긴다.
  •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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