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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근미의 책세상

25세, 두 명의 조제, 각각의 사랑 방식

프랑수아즈 사강 《한 달 후, 일 년 후》,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복잡한 관계와 불편한 사랑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라고 하면 ‘문학 지망생들을 기죽게 만든 천재’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18세에 그녀가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몇 개월 만에 25만 권이나 판매되었다. 곧바로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천재 소녀라는 칭송 속에서 프랑스 문학비평대상이 주어졌다. 정작 사강은 “한 번도 내 작품들을 통해 평가받지 못했다. 사강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받았다”며 불만을 토했다. 작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을 정도였다. 물론 나중에는 작품으로 인정받아 2004년에 세상을 떠날 때는 안심했을 듯하다.

《한 달 후, 일 년 후》는 1957년에 발표된 사강의 세 번째 소설이다.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이나 두 번째 소설 《어떤 미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뒤늦게 원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만든 동명의 영화를 통해 《한 달 후, 일 년 후》가 주목받게 되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여주인공이 《한 달 후, 일 년 후》 속 여주인공 이름인 조제로 불리고 싶어 하는 대목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강도 조제라는 인물에 애착이 컸는지 1961년 희곡 〈신기한 구름〉에 그 이름을 다시 등장시켰다.

장편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의 주인공 조제가 매력적인 인물인가, 이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 듯하다. 사강이 22세에 발표한 이 소설의 스토리는 매우 파격적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열정이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만들어내는 이런 조그마한 구역들을 알고 있다’는 구절처럼 ‘조그마한 구역’에 국한된 일일지도 모르지만.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펼쳐진다.

소설 속에는 두 명의 매력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조제, 부유한 집안 태생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25세 여성이다. 연극배우 베아트리스는 이혼녀이다. 두 여성은 유부남을 사귀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부인과도 친밀하게 지낸다. 연하의 젊은 애인을 두고 있는 것, 그 젊은 애인들이 경제력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조제는 소설가 베르나르와 한때 연인관계였다가 연하의 의대생 자크에게로 마음이 옮겨갔다. 베르나르는 끊임없이 조제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고 조제는 그런 시도를 딱히 거절하지 않는다. 베르나르의 아내가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른 지방에 가 있는 베르나르를 찾아간 조제는 그와 며칠간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 사실에 절망한 자크가 집을 나가자 조제는 카페를 다 뒤져 그를 찾아내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젊은 애인 에두아르를 버리고 50세인 앙드레 졸리오를 선택한다. 졸리오의 지성과 실력이 필요하지만 ‘에두아르의 길고 굴곡이 있는 육체’를 그리워한다. 그런 베아트리스를 짝사랑하는 에두아르의 친척 알랭은 알코올중독에 이를 정도로 괴로워한다. 젊고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베르나르와 알랭보다 더 마음 아픈 사람은 그들의 아내들이다.

사랑은 주변 사람을 아프게 해도 될 만큼 뻔뻔하거나 숭고한 것일까? 사강은 ‘젊음이 맹목에 자리를 내줄 때, 행복감은 그 사람을 뒤흔들고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하며, 그 사람은 나중에 그 사실을 틀림없이 시인한다’라고 책 속에서 답하고 있다.

베르나르는 자신을 멀리하고 젊은 애인 자크를 바라보는 조제에게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탄식하는 베르나르에게 조제는 상냥한 목소리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라고 대답한다.


순백의 사랑, 행복은 죽음과 동의어


닿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 때문에 미쳐가는 사람들, 시간이 지난 뒤 몰려오는 회한 따위보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이들이 《한 달 후, 일 년 후》에 가득하다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사랑은 순수하고 정결하다. 다나베 세이코가 왜 조제라는 이름을 좋아했을까. 대체 조제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낀 것일까. 단편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속에 정확한 단서가 들어 있지 않다.

주인공 야마무라 구미코는 어느 날 갑자기 “나 말이야, 지금부터 내 이름, 조제로 할래”라고 말한다. 이유를 묻는 츠네오에게 “이유는 없어. 그냥 조제가 내게 꼭 어울리니까”라고 답한다. 시청에서 소설책을 자주 빌려 보는 구미코는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가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조제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 그 이름을 쓰기로 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츠네오에게 “앞으로 조제라고 안 부르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구미코도 《한 달 후, 일 년 후》의 조제와 동갑이다. 하반신 마비에 생활보호 대상자인 구미코는 남자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으며 파리를 종횡무진 누비는 조제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어두침침한 집안에서 휠체어에 앉아 빛나는 25세를 보내야 하는 구미코는 조제가 되어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구미코, 아니 조제로 이름을 바꾼 그녀는 콧대가 높고 성격이 까다롭다. 학교에 다닌 적은 없지만 활자나 텔레비전을 통해 얻은 지식이 만만찮다. 어느 날 곤경에 처한 조제를 근처에 사는 대학생 츠네오가 도와주고, 이후 두 사람은 친하게 지낸다. ‘매끈하고 하얀 피부와 자그맣게 정돈된 인형 같은 얼굴’ 외에 내세울 것 없으면서도 조제는 츠네오에게 늘 고압적이다. 단칸방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츠네오는 종종 들러 조제의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맛있게 먹곤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위성도시 시청에 취직이 된 츠네오가 오랜만에 조제의 집을 찾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조제는 어디론가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수소문 끝에 조제의 집을 찾은 츠네오. 조제가 할머니의 유골과 함께 쓸쓸히 사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는 츠네오를 조제는 괜히 쌀쌀맞게 대하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돌아가려는 츠네오에게 재차 “빨리 가. 빨리 가버려. 다시는 오지 마”라고 외치지만 조제는 끝내 “가지 마!”라며 안긴다.

둘의 사랑이 시작되고, 조제는 츠네오에게 호랑이를 보러 가자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라는 조제의 말은 최고의 사랑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둘은 지상에서 8m 아래에 있는 수족관으로도 놀러 간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지만 깊은 밤 눈을 뜬 조제는 달빛이 가득한 방안을 해저동굴 수족관 같다고 여기며 자신과 츠네오가 물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조제와 츠네오는 함께 살고, 조제는 츠네오에게 늘 깨끗한 옷을 입히고 맛있는 밥을 먹인다. 둘은 아껴 모은 돈으로 일 년에 한 번 여행도 떠난다.

조제는 두 사람을 물고기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라고 읊조린다. 조제는 츠네오가 언제 자기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며 만족해한다.

다나베 세이코는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라고 단정하면서 ‘조제는 츠네오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깍지 끼고, 몸을 맡기고, 인형처럼 가늘고 아름답고 힘없는 두 다리를 나란히 한 채 편안히 잠들어 있다’로 소설을 끝맺는다.

《한 달 후, 일 년 후》가 복잡한 관계와 불편한 사랑에 부대껴 가쁜 숨을 몰아쉰다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순백의 사랑으로 고고함과 처연함을 풍긴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두 명의 조제를 만나보라. 25세, 빛나는 청춘이 사랑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혹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매력적인 두 명의 조제를 통해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라.
  •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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