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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배우와 함께 나이 드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요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

독립영화 〈더 테이블〉이 개봉 3주 만에 9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1000만’으로 영화의 성패를 가름하는 요즘, 이 숫자가 유의미한 이유는 감독이 자신의 전작 〈최악의 하루〉의 최종 스코어 8만 1187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하루〉를 보고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고 했던 이들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영화관을 나섰다. 김종관 감독은 또 한 번 자신의 영화를 뛰어넘었다.

사진제공 : 엣나인필름
김종관 감독은 큰맘 먹고 영화에 등장한 테이블을 샀다. 테이블은 지금도 그의 집에 있다. 영화를 만들 때의 마음과 공기를 잊고 싶지 않아서다. 〈더 테이블〉의 주인공은 정유미도, 정은채도, 한예리도, 임수정도 아니고 이 나무 탁자인지 모른다. 모든 에피소드에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할 뿐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사실 김종관 감독은 사람이 바라보는 사물만큼이나, 사물이 바라보는 사람에 관심이 많다.

이상한 일이다. 먼저 연락을 한 사람이 아니라, 받은 쪽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 표정은 초조하지만 볼은 붉게 상기돼 있다. 첫 번째 여자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자신의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네 번째 남자는 공연히 테이블 위에 올려진 꽃잎을 뜯으며 산란한 마음을 분지른다. 테이블은 그런 곳이다. 많은 이들이 다녀가지만, 테이블은 그대로다. 가만히 앉아 이들의 말과 한숨 소리를 듣고, 머뭇거림과 어긋남을 바라본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최악의 하루〉(2016) 등을 만든 김종관 감독은 이 정적인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을 담았다. 8월 24일 개봉한 영화 〈더 테이블〉이다.

네 편의 단편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하루 동안 한 테이블에 앉았던 여덟 명의 이야기를 담는다. ‘사소함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대로,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지나갈 평범한 풍경이 카메라가 자세히 바라보니 비범한 장면으로 바뀐다. 물론 여기에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테이블에 와 앉아준 배우들의 몫도 있다.

네 편의 이야기에는 동일하게 테이블과 여자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어깨까지 풀어 내린 머리카락의 결이나, 느슨하게 말아 올린 목선, 질끈 묶어 잔머리까지 없앤 실핀의 흔적과 자연스러운 웨이브 같지만 실은 굉장히 공들인 머리의 풍성함 등이 묻어난다. 평소 김종관 감독은 ‘뒷모습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데 그 관심이 묻어난다. 그중 정유미는 실제로 김종관 감독의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영화계에 입문해 지금은 영화계 대표 배우가 됐다. 정유미는 극중에서 톱스타가 된 전 여친 ‘유진’으로 등장한다. 현실과 연기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가 흥미롭다.


배우들이 찾아 들어간 자기만의 방


정유미 배우와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 한예리 배우와는 〈최악의 하루〉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습니다.

“정유미 배우의 경우에는 이 배우가 고유의 매력을 어떻게 간직하고 발전시키면서 더 노련하고 품위를 갖게 됐는지를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한예리 배우의 경우 전작에 이어 ‘은희’를 맡아주었습니다. 거짓을 모의하면서 진실함을 도모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는데, 무척 잘해주었습니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등 느낌 있고 내공 있는 배우들이 나란히 출연했습니다.

“영화는 작지만, 이들에게는 큰 모험이었을 겁니다. 캐스팅이 되고 나서 어깨가 무거웠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필모에서 이 작품이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어떤 배우들의 30대, 40대, 50대를 꾸준히 담았으면 좋겠다는 꿈도 갖고 있고요.”

포스터를 보니 임수정 배우에게는 ‘그리고’ 임수정이라고 썼더군요.

“에피소드의 순서로는 임수정 배우가 마지막이지만, 경력이나 분량으로는 마지막에 올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고’를 생각했습니다. 그 말이 주는 영화적인 맵시도 좋았고요.”

눈부신 배우들이 출연하긴 했지만, 여배우들만 보인 건 아닙니다. 특히 연우진 배우는 임수정 배우에게 밀리지 않는 멜로 중의 멜로를 보여주더군요.

“이미 유명한 배우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면모를 찾아내는 ‘재발견’의 영역이 있으면 저에게도 기쁜 일입니다. 실제로 이 배우를 보면서,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배우라는 걸 알았습니다.”


마음 가는 길과 사람 가는 길은 왜 다를까


정은채 배우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영화에서는 대사도 중요하지만, 행간을 읽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그 행간을 잘 읽는 배우입니다. 그래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한 배우이기도 하고요.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가 ‘자기만의 방’을 잘 찾아서 들어갔죠.”

그 ‘방’을 만든 건 감독의 몫이었겠죠. 이야기의 구성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마음 가는 길과 사람 가는 길이 왜 다를까”라는 혜경의 대사는 오래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평소 고전을 좋아합니다. 거기에 나오는 어리석은 인물들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 어리석음과 어긋남, 세상의 억압과 인물의 방어에 매력을 느낍니다. 아마 그 대사도 그런 고민 속에 나왔을 겁니다.”

대부분 거짓을 말하는 은희가, “제 어릴 적 별명은 거북이였어요. 느림보 거북이”라고 말할 때는 ‘이건 거짓말이 아니겠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닙니다.(웃음) 제가 무척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빠른 세상에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고요.”

〈최악의 하루〉에는 옛 연인과 지금 연인 그리고 앞으로 연인이 될지 모르는 남자를 하루에 만나는 은희가 등장한다.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이들을 하루에 만났음에도 그녀의 하루는 최악이 되고 마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 안에는 인간의 오욕칠정과 거짓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거짓 속에서도 반짝이는 한 줌의 진심이 담겨 있다. 〈최악의 하루〉와 〈더 테이블〉의 은희가 같은 인물일까를 생각하는 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두 인물이 같든, 다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흥미로웠다. 각 에피소드에는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진실의 언저리를 겉돌던 두 사람이 비로소 진실의 찰나를 나눌 때, 그것으로 충분한 장면이 있었다. 그 찰나를 위해서 우리는 연락을 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테이블에 앉고, 차를 시키는지도 모른다.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에 그 눈부신 배우들이, 눈 밝은 관객들이 앉고 싶었던 속내도 비슷할 것이고 말이다.

김종관 감독은 앞으로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은희로 대변되는 이들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도 말했다. 〈최악의 하루〉에 이은 〈더 테이블〉이 전해준 낭보는 감독의 소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이기도 했다.
  •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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