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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조각,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가 이원우

“만 5세인 딸아이의 마음에는 불안이 없더라고요. 하루하루가 즐거운 아이들의 마음은 걱정이나 불안이 없고 깨끗한 상태라는 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딸아이가 거침없이 오려낸 색종이는 엘즈워스 켈리나 알렉산더 칼더 같은 대가들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형상에 버금가는 감동이 있었어요. 그것을 모티프로 삼아 작업했습니다.”
지난 7월 13일부터 8월 26일까지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린 이원우 작가 개인전 〈내일 날씨 어때〉에는 정말 어린아이가 오려낸 듯 단순한 형태의 네잎 클로버, 하트, 별 조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종이로 오려낸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얇은 강철로 만든 조각이었다. 이원우 작가는 “강철의 차갑고 무거운 느낌에서 벗어나 종이처럼 가볍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강철에 우레탄페인트를 발라 흰색 바탕을 만든 후 노란색, 파란색, 분홍색 등 밝은 색감의 아크릴물감을 칠한 작품은 흰 종이 위에 색칠한 듯 손맛이 느껴졌다. 〈춤추는 별(Dancing star)〉은 정말 별이 포크댄스라도 추는 듯 리드미컬한 모습이었다.

“사람 크기의 별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에요. 어린이 관람객은 바로 알아보고 그 품속으로 쏙 들어가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렇게 화사한 색감을 써본 적이 없어요. 훗날 제 작품 세계를 돌아보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밝고 경쾌해 보이지만 이 작품들의 주제는 불안이다. 〈내일 날씨 어때〉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 빗대 지은 제목이다.

개인전 〈내일 날씨 어때〉에 전시된 ‘Hidden cover’ 작품들.
“아이들이 태어나니 더없이 행복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저같이 불안정한 예술가뿐 아니라 탄탄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도 불안 가운데 살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어떻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작업하겠다고 마음먹고 생각해낸 게 ‘첫 번째 행운에 기댄다, 두 번째 춤을 춘다, 세 번째 거인이 된다, 네 번째 미래로 미리 가본다’였습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먼저 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행운에 기댄다’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 딸아이가 색종이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네잎 클로버와 하트, 별 같은 상징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이전에도 행운을 주제로 작업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행운을 비는 마음을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미신 정도로 여겼어요. ‘행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태도였죠.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저 역시 보이지 않는 기운에 기대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뻔하지만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상징들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Dancing Star〉
전시장 2층에는 거리를 걷는 그에게 동전이 날아오는 동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화면에서는 날아오는 동전을 손으로 잡는 장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뒤로 걸으면서 돈을 뿌리고 다녔어요. 동영상 필름을 거꾸로 돌리니 그렇게 보이는 거지요. 관람객들이 ‘어떻게 동전이 날아올까?’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동전을 줍는 게 행운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동영상에서는 행운을 잡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행운을 나눠주고 있었던 셈이지요. 2012년부터 5년 동안 주운 동전도 유리병에 담아 전시했습니다.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면서 동전을 찾게 되더라고요. 관람객도 그런 경험을 하도록 전시장 여기저기에 동전을 놓아두었습니다.”

개인전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에서 한 외국인이 ‘playfulness’를 찾고 싶다고 해 만든 작품.
8월 12일부터 23일까지는 서울 율곡로3길 아트선재센터에서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30대 중반 젊은 작가가 이름난 미술관과 화랑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열기란 극히 드문 일이다.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는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 중 ‘춤을 춘다’를 작업으로 풀어낸 전시입니다. 떨고 있는 털북숭이 등 제 자화상 같은 작품들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춤추고 있고, 한쪽에 만들어진 분실물 센터에서는 제가 직원이 되어 손님을 맞았습니다.”

손님이 찾고 싶은 분실물을 이야기하면 그가 즉석에서 조형물을 만들어 선물하는 퍼포먼스였다.

“관광지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를 떠올리며 만든 퍼포먼스입니다. 한때 자신의 일부였고 지금도 찾고 싶은 분실물은 일종의 초상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분실물을 매개로 관람객과 말을 트고 소통하면서 만드는 작품이죠.”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에서 ‘사랑과 체력’을 찾고 싶다는 사람을 위해 만든 작품.
그는 열흘 동안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하루에 30명 정도, 한 분당 10분 정도씩 시간을 들여 만들어 드렸습니다. 여섯 살부터 60대 어르신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철사, 합판 등 작업실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조형물을 만들었어요. 사랑이나 젊음, 열정, 초심을 찾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무 살 청년도 젊음을 찾고 싶다고 이야기해 이유를 물으니 ‘나이 들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50대 아저씨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아달라’고 해서 짠했습니다. 20대 청각장애 여성은 ‘소리를 찾고 싶다’고 했고, 잃어버린 ‘연애세포’를 찾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분실물을 진짜 찾아주지는 못하지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속상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작품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야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사람들 각자의 기억을 매개로 맞춤 작업을 하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가 사진으로 남긴 조형물들을 보니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는지 놀라웠다. “처음에는 의뢰받을 때마다 ‘어떻게 만들까?’ 진땀이 났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가 옳다’는 생각으로 금방금방 만들게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매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훈련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따지고 보면 10년만이 아니다. 지금의 딸아이처럼 그도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며 놀았다고 한다. 사학자인 아버지는 “평생 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즐거운 일을 하라”고 하셨고, 그는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과 ‘좋겠다 프로젝트’를 만들어 협업 작업을 하던 그는 2010년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 때부터 조각뿐 아니라 설치, 퍼포먼스, 영상, 회화 등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어요. 그런데 은연중 ‘너만의 매체, 재료를 찾아야지’라는 압박감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작가로 자리 잡으려면 자신만의 색깔을 빨리 부각시켜야 하거든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넓은 스펙트럼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다’라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재료와 표현방법을 선택하는 거지요. 제가 공부할 때 학장으로 계셨던 영국의 유명 작가 리처드 웬트워스는 ‘내 머리가 작업실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셨고, 그분의 유연한 태도에서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콜라 캔을 뚱뚱하게 부풀려 다이어트 세태를 풍자한 ‘fatcoke’.
그는 블랙유머로 현실을 환기하는 코미디언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코카콜라 캔을 뚱뚱하게 변형시키거나 은빛 철제 판에 다이어트(Diet) 콜라의 글씨체 그대로 커다랗게 쓴 작품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세태를 풍자했다. 한 젊은 여성이 그 글씨를 보고 ‘방금 피자를 먹고 왔는데 뭐야?’라면서 짜증을 냈는데, 사실은 그게 작가가 의도한 반응이었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강박적인 생각에 갇힌 우리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 감옥의 문 같은 철제문에 문구를 새겨 넣기도 했다. 키가 186cm에 달하는 헌칠한 모습으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패션모델로도 활동했던 그는 내년 초 패션디자이너, 사진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올해 10월부터 6개월간은 브루클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뉴욕에서 작업하면서 전시할 계획이다. 미국 생활은 처음이라 ‘그곳에서 또 어떤 자극을 받아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된다고 말한다.
  •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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