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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의 부흥을 꿈꾼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낸 소설가 손보미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는 교묘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젊은 작가들이 일으키는 한국소설의 부흥, 그 선두에 선 손보미 작가. 그는 3년 내리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백수거나 편의점 알바생이라는 푸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 폴로의 창시자 랄프 로렌이라니. 랄프 로렌 옷 같은 걸 소재로 삼으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앞 세대 소설가들과 달리 손보미 작가는 상큼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2009년에 《21세기 문학》 신인상과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손 작가는 2012년에 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들이 그 전해에 발표한 중단편을 심사해 6편은 젊은작가상을, 1편은 대상을 수여하는 제도다. 동아일보 당선 1년 만에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손 작가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시는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고 한다.

“좋은 소설가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주제의식 같은 것도, 무언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거든요. 지금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고민할 겨를이 없이 마감에 맞춰 소설을 쓰며 계속 달려왔고 이후 3년 내리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발간했고 그해 한국일보문학상, 이듬해 김준성문학상을 받았다.

손보미 작가 소설의 특징은 여성 화자를 찾기 힘들다는 점과 번역 문체, 독특한 소재로 요약할 수 있다. 등단 작품인 단편소설 〈담요〉만 화자가 여성일 뿐 대부분 남성이거나 3인칭 소설이다. 《디어 랄프 로렌》도 주인공이 남자다.

“제일 편한 건 3인칭이고 그다음이 1인칭인데 그것도 남자 화자가 편해요. 1인칭 여자 화자를 쓰면 저의 어떤 면이 투영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머릿속으로 상상한 사람을 쓸 때 남자 화자나 3인칭이 훨씬 더 편해요. 문체나 독특한 소재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독특한 걸 장점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 형식으로 쓰는 게 편할 뿐입니다.”


첫사랑에게서 받은 청첩장

소설에 자신을 투영하기 싫다고 했지만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면 어느 정도 작가의 체험이 들어 있지 않을까? 《디어 랄프 로렌》의 종수는 갑자기 연구실에서 해고된다. 짐을 싸는 과정에서 수년 전 수영이 보낸 청첩장을 발견한다. 고등학교 때 랄프 로렌 제품으로 온몸을 치장하던 수영이 시계를 만들지 않는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쓰자고 제안했던 것. 첫사랑이었던 수영의 청첩장을 들고 외곽의 허술한 아파트로 옮겨온 종수는 랄프 로렌이 왜 시계를 만들지 않았는지 찾아 나서기로 한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외국인을 만나 랄프 로렌을 추적하는 일,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가는 종수를 통해 독자는 많은 질문을 받는다. 복잡한 듯하지만 짝을 지어 한 단계씩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걸 즐길 수 있는 구성이다. 1980년생인 작가의 폭넓은 관심과 지식에 종종 탄성을 지르며 푹 빠지게 되는 소설이다.

손 작가는 소설의 무대인 뉴욕에 가본 적은 있지만 소설은 완벽한 허구라고 했다. 고등학생이던 막내 동생이 유행하던 랄프 로렌 코트를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는 모습을 보면서 랄프 로렌을 소재로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한때 유행했지만 지금은 거의 입지 않는, 뉴욕에 엄청난 매장이 있지만 예전의 영광을 누릴 수 없는 ‘쇠락한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다. 《디어 랄프 로렌》 속의 인물들도 대개 그런 처지다. 이 소재로 25세 때 쓰려다 실패했고, 결국 등단 이후 동일한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장편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호흡이 길어서 힘들었지요. 단편에서는 쓰지 않아도 되는 걸 장편에서는 써야 하고, 단편에서 써야 하는 걸 장편에서는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치면서 완성해나갔죠.”

랄프 로렌을 제외한 소설 속 인물은 모두 작가가 만들어냈고, 소설과 달리 랄프 로렌은 현재 살아 있으며 시계도 판매하고 있다. 1954년을 회상하는 것에서 소설을 시작하여 1930년대 나치의 유대인 박해까지 시공간을 확장하는 기발한 소재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야기 지어내는 걸 좋아했어요. 소설적인 건 아니고 황당무계한 얘기들이었죠. 미래나 우주,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얘기를 만들기도 했죠. 역사를 심도 있게 배운 세대이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를 좋아해서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아빠가 역사 얘기도 자주 해주셨어요.”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고 점수에 맞춰서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선택했다.

“1학년 때 우연히 문학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소설을 쓰게 됐어요. 소설가라면 특별한 이미지에다 일탈도 많이 해본 인물이어야 할 텐데 저는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에 한때 소설 쓰기를 중단했어요. 그래도 등단하기 전에 10여 편 정도 습작한 거 같습니다.”

대학 이후의 삶도 일탈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2011년에 신설된 젊은작가상에 거론되는 작가들은 대개 1980년 전후에 태어났다. 이념적이거나 지나치게 미학적이었던 이전 작가들과 달리 스토리 라인이 강화되어 재미있으면서 잘 읽히는 작품을 쓴다. 이에 대해 손 작가는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제가 99학번인데 그때 인터넷이 활성화되었어요.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를 다 볼 수 있고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세대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호회에 나가 스윙댄스를 추는 것 외에 딱히 취미가 없어 대개의 경우 방에서 미국 드라마나 책을 본다는 손 작가는 두치펑 감독의 홍콩 느와르와 미국 갱스터 영화, 레이먼드 챈들러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열심히 읽다가 논픽션도 읽고, 과학 팟캐스트를 보면서 공부하기도 한단다. 케이블의 음악방송과 뮤직비디오도 좋아하는 등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어떤 책이나 드라마를 보고 거기서 인상적인 게 있으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머릿속에 어떤 공간을 확보해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만들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1954년이라는 시대를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헤밍웨이, 메릴린 먼로, 그리고 랄프 로렌 때문에 《디어 랄프 로렌》 속의 다른 인물들도 모두 역사적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평행이론을 떠올리며 한껏 빨려 들어가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한 세상을 돌다 어찔어찔해져서 돌아 나오게 만드는 소설이다. 손 작가는 어떤 울림을 주고 싶었던 걸까.

“레이먼드 카버가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쓴다. 문학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일을 다른 세상에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제 소설을 읽고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종수를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을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돌아본다는 수준이 세계에 대한 통찰은 아니더라도 나도 이런 적 있어, 이런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다소 복잡한 구성을 편안한 문장으로 헤쳐 나가게 하는 손보미 작가의 《디어 랄프 로렌》을 만나면 한국소설에 매혹될 지도 모른다. 젊은 작가들이 일으키는 새로운 물결로 한국소설의 부흥을 기대해본다.
  •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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