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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질주하던 삶에서 돌아서자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

웹툰 작가 서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형병원에 들어갔던 젊은이가 있다. 그는 이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100일 만에 그만뒀다. 그리고 그는 단순 밥벌이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방문자 수 200만 명, 페이스북 구독자 수 9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끄는 웹툰 작가가 됐다. 서밤(본명 이서현) 씨 이야기다.
서밤은 서늘한 여름밤의 줄인 말이다.
최근에는 단행본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도 펴냈다.
“서른 해 가까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내가 원하는 일인 줄 알고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형병원에 들어갔다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100일 만에 그만뒀다. 퇴사 이후 ‘이제 정말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 결심했지만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조금 뒤늦었을지언정 내가 좋아하는 게 무얼까 알아보려고 태블릿으로 그린 그림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발달장애인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서밤 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발달장애나 정신장애가 있어도 방치된다는 현실을 알게 된 후 ‘지역사회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누구나 부담 없는 비용으로 이용하게 하겠다’는 꿈을 세웠다. 하지만 병원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그의 꿈은 깨졌다.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문화를 좇아가려고 버티다 보면 싫어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변해버리고,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돌이켜 보니 그게 제가 모범생으로 달려온 마지막 종착지였어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이 사회에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전문직을 갖고 싶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퇴사하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신생아로 돌아간 듯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할지 막막했지요. 다른 친구들은 전문가의 길을 가는데 나 혼자 멈춰 있는 게 아닌지 때때로 무서울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에 있다는 느낌은 여러모로 떨렸다. 어두운 우주에 혼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 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면서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이렇게 전력 질주의 삶에서 돌아섰을 때 어떤 길이 펼쳐졌을까? 2년 만에 블로그 방문자 수 200만 명, 페이스북 구독자 수 9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서밤(서늘한 여름밤)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가 되었고, 최근에는 단행본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도 펴냈다.

8월에는 마음 맞는 상담자들과 함께 심리 상담센터 ‘에브리마인드’의 문을 연다. 만 28세인 그의 심리 웹툰은 젊은 층, 특히 20~30대 여성들이 좋아한다. 부모님과의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 우울증을 겪었던 일까지 내밀한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는 그의 웹툰을 보면서 ‘바로 내 이야기 같다’ ‘끙끙 앓던 문제를 시원하게 대변해준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상담을 받아야 할까요?’라며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심리 상담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처음 상담을 받는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상담선생님이 나를 이해해줄까?’ 불안해한다. 그는 그런 마음을 읽어주면서 상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왔다.

“어디에서 상담을 받아야 할지 묻는 사람들이 많아 여기저기에서 추천받은 상담센터와 정신과 목록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모르는 상담자를 소개하는 게 미덥지 않았습니다. 상담자의 가치관, 상담자와 상담받는 사람과의 세대 차가 문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블로그를 통해 만난 상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이라면 믿고 소개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함께 상담센터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상담자들 대부분이 30대여서 젊은 층의 고민에 좀 더 잘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담선생님들이 최대한 잘 상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획자이자 마케터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에브리마인드에는 개인 상담뿐 아니라 진로, 자존감, 대인관계 등 특정한 주제로 6~8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상담,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그는 개인 상담을 하지는 않지만 정식 개소에 앞서 6월부터 시작한 워크숍 진행을 맡고 있다. 자신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무엇은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은 포기할 수 없는지, 이 혼돈의 시기에 어떤 가치를 이정표로 삼아야 할지 스스로 찾아나가는 프로그램이다. MBTI 검사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강점을 알아가는 워크숍, 사귀고 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이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지, 만족스러운 관계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탐색하는 ‘커플 가치관 워크숍’, 엄마를 이해하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워크숍도 있다.

“결혼을 앞두고 엄마와 갈등하는 친구가 많아요. 독립하려면 선 긋기가 필요한데, 엄마를 엄마로만 볼 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저런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내게 준 영향 중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내 삶에서 내보낼지도 결단해야 하고요.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도 생깁니다.”


지난해 겨울 결혼한 그의 웹툰에는 남편도 종종 등장한다. 웹툰 속 남편은 그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주는 존재다. ‘네 오른쪽 눈은 반달처럼 예쁘고, 왼쪽 눈은 아몬드처럼 예뻐’라고 말해주는 남편 덕에 짝눈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서로 다른 예쁜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공격적인 게 아니라 자기주장이 명확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기가 센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남편 옆에 있으면서 사랑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듬뿍듬뿍 부어주는 사랑을 받으면서 나는 조금씩 자라는 중이다’라고 고백한다. 주말 인터뷰에 동행한 남편 역시 서밤 씨 덕분에 자신의 모습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내를 만나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넌 뭘 좋아해? 뭘 싫어해? 기분이 어때?’였습니다. 항상 제가 맡은 역할, 해야 할 일만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디에 가든 리더 역할을 맡고 뭐든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그런 생활이 갈수록 피곤해졌죠. 아내는 그런 제게 ‘네 마음을 따라서 살아도 괜찮아’라고 지지해줬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 치유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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