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버려지는 화장품, 예술이 되다

화장품 그림 작가 김미승

글 : 최선희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 글씨 더 크게 보기
  • 글씨 더 작게 보기
취업 대신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한 김미승씨는 물감 대신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린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화장품은 그의 손을 통해 훌륭한 그림 재료로 변신한다. 화장품에 대한 관심을 미술과 연계한 그는 일종의 ‘리사이클링 아트(Recycling Art)’이자 ‘화장품 그림’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었다.
미술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미승씨는 유치원 교사의 꿈을 품고 아동미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교육과정이 미술보다는 보육이론이나 유치원생들을 위한 교구재를 만드는 데 집중돼 있어 학교 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집에 돌아오면 늘 그림을 그렸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고등학교 때 미술 시간에 아크릴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인물을 그리는 시간이었는데 아크릴 물감이 익숙지 않아서 원하는 색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매일 가지고 다니는 비비크림이 생각났어요. 손에 묻혀서 쓱쓱 발랐더니 피부색이 아주 그럴 듯하게 표현되더라고요. 대학 시절 내내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 고민하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첫 작품은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 가수의 초상이었다. 화장품 그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완성되자마자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순식간에 몇백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신기하다’ ‘예쁘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여기저기 퍼져 나가며 팔로어의 숫자도 그만큼 늘었다. 지금은 3000명이 넘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얻은 유명세 덕분에 재료값 부담도 덜었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피부에 맞지 않아서, 혹은 색이 마음에 안 들어 보관만 하고 있던 화장품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100가지에 가까운 색이 들어 있는 엄청나게 큰 아이섀도 팔레트를 보내준 분도 있다”며 웃었다.

“매일 쓰는 화장품은 무난한 색깔이 대부분이라 물감처럼 다양한 색을 구하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그 섀도 덕분에 다양한 색감 표현이 가능해졌어요. 화장품은 물감보다 색이 훨씬 예뻐요. 화장품에만 있는 반짝이는 글리터나 펄 같은 건 전통적인 그림 재료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환상적이고 오묘한 느낌이 나요. 조명을 비추면 더욱 아름답고요. 빛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색감이 달리 보이는 것도 화장품 그림만의 매력이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실제 화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이는 일반 도화지가 아닌 베이지색이 도는 크라프트지를 사용한다. 그 위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선만 보일 정도로 지운다. 피부색은 파운데이션, 비비크림으로 표현한다. 얼굴에 바르듯 손으로 톡톡 두드린다. 문지를 경우 종이가 들뜨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밝은색과 어두운색의 베이스를 적절히 섞는다. 실제 화장처럼 T존, 턱, 콧날 등에는 하이라이터와 섀이딩을 사용하고, 눈매도 또렷하게 보이도록 아이라이너를 그린다.

채색은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이용한다. 손이나 면봉으로 살살 문질러 발라주고, 색이 번졌다 싶으면 파운데이션을 덧바른다. 여자들이 틈틈이 화장을 고치는 것처럼 그의 그림도 여러 번 색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완성한다.

“화장품은 물감이나 색연필에 비해 밀도가 낮기 때문에 한두 번 발라서는 티도 안 나요. 무엇보다 섀도 가루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걸 자꾸 수정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죠. 다른 부분을 작업하는 동안 파운데이션의 지속력이 떨어져 색감이 옅어지면 또 색을 올려줘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한 작품 완성하는 데 보통 일주일 이상 걸리고, 경우에 따라 한 달씩 이어지기도 해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죠.”


힘든 작업이지만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


학교를 졸업한 지 3년, 화장품 그림에 빠져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지만 후회는 없다. 아직 그림으로 인한 수입이 거의 없어 최소한의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충당한다. 가끔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작품에 집중하고 싶어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다만 흔쾌히 화장품을 보내주는 소셜미디어상의 팬들을 위해 ‘초상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은 있다.

“한 명을 뽑는데 신청자가 650명이나 몰려서 난감했어요. 어쨌든 그림 받은 분이 너무 좋아해서 저도 뿌듯했죠. 한 번은 화장품 업체에서 협업 제안이 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고 싶다고 하는데, 제 그림은 한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화장하듯 쓱쓱 문지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못 했어요.”

최근에는 또 다른 화장품 업체에서 강의 요청을 받았다. 폐화장품의 재활용과 관련된 주제라 흔쾌히 ‘하겠다’고 답했다. 화장품 그림 작가로서, 버려지는 화장품과 화장품이 일으키는 환경오염은 그에게도 큰 관심사다. 실제로 그가 받는 화장품들을 보면 한두 번 사용한 새 것과 같은 상태의 제품이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은 채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화장을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공감할 거예요. 화장대를 열어보면 ‘쓰지 않지만 과감히 버리지도 못하는 화장품’ 몇 개씩은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화장품을 보내면서 ‘좋은 데 쓰게 돼 오히려 고맙다’고 해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분들의 응원까지 받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돼요.”

앞으로 회화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미승씨. 2년제 대학을 졸업해 현재 학점 이수 과정을 공부 중인 그는 “화장품 그림을 자원 재활용 예술의 한 분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 2017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